윤석열 정권의 초현실적 무능 [아침햇발]
[아침햇발]
손원제 | 논설위원
윤석열 정권 ‘무능의 삼각형’이 완성 단계다. 쌩쌩하던 선박과 항공기가 갑자기 사라진다는 버뮤다 삼각지대만큼이나 등골 서늘하다. 우리 공동체가 광복 이후 쌓아온 성취와 진보가 일거에 무력화되고 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건 구시대의 낡고 추레한 침전물들이다.
경제·민생 추락은 무능의 삼각형의 밑변을 이룬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인한 게 2021년이다. 1964년 기구 창설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사례다. 그 2년 만에 한국 경제는 활력을 잃고 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에서 지난해 13위로 떨어졌고, 올해 경제성장률(국제통화기금 추정 1.4%)은 정치 위기와 국제 경제 위기, 코로나 위기를 겪던 때를 빼면 역대 최저 수준이 될 모양이다.
민생은 이미 위기다. 만원 한 장으론 밖에서 점심 먹기 힘들 정도가 됐다. 교통비, 전기료, 가스비도 치솟았다. 에어컨 틀기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올해 2분기 가구 실질소득은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3.9% 줄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최대 감소다. 정부는 코로나 지원금이 사라진 기저효과 탓이 크다며 별일 아니라는 투다. 쪼그라든 소득과 폭등한 물가만큼 깊어진 취약계층의 고통은 안 보이나 보다. 온갖 부자 감세로 위축된 재정 탓에 벼랑 끝 민생에 쓸 돈부터 줄이고 보자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잼버리 파행이 드러낸 행정 무능, ‘전 정권 탓’과 ‘반국가 세력’ 몰이가 낳은 정치 무능은 삼각형의 두 윗변에 해당한다. 잼버리 사태는 두번의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시킨 나라의 국격과 국민 자부심에 큰 생채기를 냈다. 문제는 불과 5년 전 평창 올림픽을 세계인의 축제로 만들어냈던 국가적 역량이 어쩌다 이 정도로 처참하게 붕괴했느냐이다. 그사이에 달라진 건 대통령과 정권이 교체됐다는 사실 말고는 없다.
윤 대통령은 잼버리 개막식에서 김건희 여사와 함께 스카우트 대원들의 ‘장문례’를 받는 영예를 누렸다. 그러나 폼만 쟀을 뿐, 실제 행사 준비와 진행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번이라도 대통령실에서 관련 부처와 전북도 등을 모아 폭염 대책 등을 강구한 적이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평창 올림픽 땐 청와대가 직접 태스크포스를 꾸려 현장 체험까지 하면서 혹한 대책을 세웠다. 대통령이 무관심하니 관련 부처가 빠릿빠릿 돌아갈 리 없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장관은 ‘현장에 머물라’는 국무총리의 뒤늦은 지시도 무시하고 18㎞ 떨어진 국립공원공단 변산반도생태탐방원의 에어컨 빵빵한 숙소에 머물렀다. 일반 국민의 인터넷 예약을 모두 막고 공짜로 탐방원을 독점 사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기가 찬 건 이번에도 지휘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사과도 문책도 나 몰라라다. 총리·장관들은 ‘유종의 미’ ‘위기 대응 역량’ 운운하며 피할 구멍만 찾고 있다. 여당은 오로지 전 정권 탓, 전북도 탓으로 몰아가면서, 장관을 불러 따질 국회 상임위는 계속 무산시키고 있다. 무능에 이은 무책임의 향연이다.
국민 반발과 원성은 야권 탓, 편가르기로 덮고 가려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날 민주화·인권·진보 세력에 ‘공산 전체주의’ 딱지를 붙였다.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그러나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번이다. 에이스리서치·국민리서치그룹의 최근 여론조사에선 잼버리 파행 책임이 윤석열 정부(54.4%)와 여성가족부(6.7%)에 있다는 응답이 60%를 넘었다.
삼각형의 꼭짓점은 외교·안보 무능이 찍었다.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결과는 중국·러시아와 척지고 일본에 찰싹 달라붙는 윤석열표 가치 외교의 결정판이었다. 윤 대통령은 “매우 특별한 회의”였다고 자화자찬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얻은 게 많은 미·일과 달리, 한국은 얻은 건 없으면서 미-중 충돌 최전선에 서는 위험만 떠안게 됐다는 냉정한 평가가 잇따른다. 중·러를 북한 쪽으로 떠밀어 북핵 문제를 더 꼬이게 할 수도 있다. 실제 북-러 군사협력 강화로, 북핵 고도화 위험성은 더 커진 셈이 됐다. 외교에선 국익이 지상 가치다. 이를 외면한 채 원리주의 가치를 앞세운 정권의 행태는 ‘숭명 사대’ 도그마에 빠졌던 조선조 후기를 방불케 한다.
무능 수위와 퇴행 속도 공히 초현실적이다. 지켜보는 국민들의 ‘슬픔의 삼각형’(스트레스나 노화로 깊게 팬 미간 주름)도 빠르게 짙어지고 있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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