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식 연구 탈피해야···부처 R&D 자율권은 늘려줄 것"

고광본 선임기자 2023. 8. 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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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주영창 과기정통부 과기혁신본부장]
누적된 비효율 없애는 과정···예산 삭감에만 초점 아쉬워
해외서 복귀시 정착비 5억 등 30~40대 연구자 전폭지원
국제 공동연구 예산 3배 확대···첨단바이오 등 우선투자
R&D 혁신 뒤 예산 다시 늘 것···과기인 사기진작 힘쓸터
주영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혁신본부장이 27일 서울 광화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연구개발(R&D) 패러다임의 대전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서울경제]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감축만 강조돼 아쉬운데 과학기술계가 오퍼레이션(운영)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고통이 있겠지만 차제에 패러다임 대전환을 통해 비효율을 걷어내고 R&D다운 R&D로 전환해야 합니다. 정부 R&D를 가두리처럼 운영할 게 아니라 힘들지만 글로벌하게 바꿔나가야죠.”

주영창(58·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27일 서울 광화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3년 만의 정부 R&D 예산 감축과 관련해 “국가전략기술 등 선도·글로벌 R&D와 인재 양성을 위한 예산은 늘리고 시스템의 과감한 혁신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R&D 예산을 늘리는 것만이 선(善)이라고 볼 수 있는지 곰곰이 되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미국 MIT 재료공학 박사 출신인 주 본부장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미 AMD 시니어 엔지니어를 거쳐 현재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있다.

그는 “정부출연연구원·대학·중소기업이 세금인 R&D 예산을 종잣돈 삼아 혁신을 일으키게 해야 한다”며 “해외 유수 연구자와 기관이 정부 R&D 과제에 참여하면 퍼스트무브 연구가 늘어나며 기술·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가 R&D 분야를 카르텔의 하나로 지목해 과학기술계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R&D 전체를 카르텔로 여기는 게 아니라 임팩트(파급효과) 있는 R&D 체제로 전환하라는 주문으로 이해한다. 일부에서는 임자가 정해져 있는 R&D 기획, 나눠주기식 R&D 등 그릇된 행태도 여전하지 않나.

-한 세기 만에 R&D 예산이 감축된다. 올해 31조 778억 원에서 내년에 27조 원 안팎으로 삭감될 예정인데.

△기득권과 칸막이를 없애고, 선도·공동 R&D를 늘리고, 인재 양성을 하자는 것이다. 전(前) 정부에서 현안을 이유로 대폭 늘렸거나 뿌려주기식·관행적으로 이뤄져온 사업은 과감히 구조 조정했다. 중소·벤처 스타트업 중에는 브로커를 통해 과제를 따는 좀비기업도 있지 않나. 고위험 연구와 첨단 창업 지원을 늘려야 한다. 특히 12대 전략기술에는 올해보다 6.2% 늘린 5조 원을 투자할 것이다. 이 중 첨단바이오, 인공지능(AI), 사이버 보안, 양자, 반도체, 2차전지, 우주 등 7대 분야는 대폭 확대한다. 특히 신진 과학자에 대한 투자를 크게 강화한다. 글로벌 R&D 예산의 경우 패러다임 대전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해 5075억 원에서 내년 1조 7961억 원까지 늘릴 것이다.(과기정통부는 여러 부처의 R&D 예산을 심의·조정하는 주요 R&D를 내년 21조 5000억 원으로 13.9% 줄여 기획재정부에 냈다. 기재부는 고등교육, 인문사회 연구 지원 등의 일반 R&D 예산을 포함해 이번 주 총 R&D 예산안을 발표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R&D 예산이 10조 원가량 늘어난 게 주로 소재·부품·장비(소부장)와 감염병, 기초연구 분야가 늘어서 아닌가.

△맞다. 그렇지만 급속한 예산 증가 과정에서 낭비 요인이 있었다.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 소부장은 단기 공급망 해결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기술과 글로벌 공급망 선점을 위한 도전 연구, 핵심 전략 품목 육성으로 전환할 것이다. 감염병도 단기 대응보다 체계적인 사업 재편에 무게를 뒀다.

-기초연구 예산은 보텀업 방식의 연구자 공모·주도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그렇다. 다만 전 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는 1조 2661억 원이던 기초연구 예산이 올해까지 2배 이상 급증하는 과정에서 뿌려주기식도 있었다. 생애 기본 연구 같은 보편적 지원 유형을 과감히 줄이려는 게 이 때문이다. 전체 기초연구 예산은 올해보다 6.2%(1607억 원) 감소한 2조 4278억 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세계적 연구를 수행 중인 리더 연구와 선도연구센터의 경우 글로벌 R&D와 전략기술 분야 투자를 크게 강화한다. 특히 국내에서 박사를 한 뒤 국내외 유수 연구실에서 포닥(박사후연구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을 갑절로 늘릴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등 세계적 연구실에 포닥으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해외에 있다가 국내 학계로 돌아와 정착하는 젊은 연구자는 아이디어가 반짝반짝하지만 정작 시설·장비를 갖추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갈수록 혁신성이 떨어진다. 내년에는 이런 연구자에게 최대 5억 원씩 정착비를 지원하고 연구비 지원도 크게 늘릴 것이다. 창의·도전적인 30~40대 연구자가 마음껏 연구할 수 있게 뒷받침할 것이다.

-이공계 교수들의 연구 장비가 사장되는데 일본처럼 재활용 방안은 없나.

△혁신 아이디어에는 새로운 장비가 필요하다.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일본의 연구는 아주 뛰어나거나 혁신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일부에서는 갈라파고스 연구라고 할 정도다.

-미국은 과제 수주가 정말 힘들지만 연구자에게 자율성을 철저히 부여한다.

△그렇다. 반면 우리는 과제 따는 게 상대적으로 쉽지만 종료까지 목표대로 연구해야 하는 등 자율성이 부족하다.

-인도의 무인 우주선이 며칠 전 달 남극 착륙에 성공했는데 예산이 불과 900억 원가량밖에 안 들었다. 왜 이리 효율성이 좋은가.

△인도우주연구기구(ISRO)는 1만 7000여 명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과도 맞먹는데 인건비가 싸고 수학이나 소프트웨어도 잘한다. 2014년 화성 탐사 궤도선을 띄울 때도 2000억여 원밖에 들지 않았다. 우리도 2032년 달 착륙을 목표하는데 우주 투자를 효율화해야 한다. 우리가 반도체를 잘하니까 양자를 잘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처럼 우리 과학기술이 전체적으로 시너지를 내야 한다.

-R&D 비효율 극복 방안은.

△현재 1200개 사업, 7만 5000개의 과제가 있는데 나눠주기식으로 너무 세분화돼 있다. 그동안 각 부처의 R&D 사업을 평가할 때 10%는 미흡을 주라고 했으나 2.9%밖에 안 줬다. 그만큼 평가가 부실했다. 앞으로 의무적으로 20% 사업은 미흡 판정을 내린 뒤 절약한 돈은 해당 부처가 지향하는 방향에 맞춰 자율적으로 쓰라고 할 계획이다. 연구 인프라 구축의 경우 순수 R&D에 대한 예비타당성 검토는 간소화하고 도전·혁신적인 R&D는 예타 면제도 할 것이다. 또한 17개 부처마다 하나씩 있는 연구 관리 기관끼리 데이터 공유가 잘 안 된다. 연구자가 똑같은 아이디어를 여기저기 낼 수 있고 중소기업들도 비슷한 과제를 다수 지원받을 수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면 과제 선정의 신뢰성, 연구비 집행의 투명성, 평가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

-국제 협력 R&D 예산 비중이 3배나 늘어나는 점이 확 눈에 띈다.

△R&D에 국경이나 칸막이가 있어서 되겠나. 국제 공동 연구가 연구자 단위에서 소규모·단발성으로 추진돼 잘 안 됐다. 국제 공동 연구 비중을 올해 1.6%에서 내년 6.5%가량으로 과감히 높일 방침이다. 첨단바이오·양자·반도체 등에 우선 투자할 것이다. 보스턴 바이오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미국·유럽연합(EU) 등에 협력 거점을 구축해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 반도체·AI·우주 등 전략기술 분야를 비롯한 인재 양성에 올해보다 14.5% 늘어난 7515억 원을 배정한 것도 글로벌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국 국립보건원(NIH) 관계자 등을 만나보면 한국에서는 양해각서(MOU)만 맺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칫 예산 낭비가 빚어질 수도 있는데.

△국제 공동 연구 과제를 위해 연구자에게 지원되는 예산이 소액이어서 그랬다. 실탄이 부족했다. 이제는 보스턴 바이오 프로젝트라든지 글로벌 공동 연구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우리도 연구자들의 해외 네트워크가 적지 않다. 전략기술에서 미국은 우리보다 10배 이상의 연구비를 쓴다. 가두리식으로 나 홀로 연구, 갈라파고스 연구를 하면 우리만 뒤처질 우려가 있다. 외국 연구자가 우리 과제 책임자가 될 수 있게 국제 협력 로드맵도 만들고 있다. 우리도 해외에서 연구 과제를 따올 수 있어야 한다.

-출연연 연구 예산 감축으로 연구자들이 외부 과제 수주에 내몰리는 연구과제수주시스템(PBS) 문제가 악화될 수도 있다.

△출연연이 정부의 출연금을 통한 R&D 사업을 통해 전략기술 확보에 더 기여해야 한다. 기관 간 칸막이로 인해 국가 핵심 임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번에 출연연 연구 통합 재원 1000억 원을 신규로 마련해 기관·연구팀이 협력해 지원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전체 전략기술 예산을 늘려 출연연이 그만큼 과제를 수주할 수 있는 여건도 됐다. 이것을 PBS 악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출연연의 내년 인건비는 8376억 원으로 동결 수준이다. 일부 충격이 있겠으나 이제는 혁신 R&D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양자·수소에 이어 반도체 등 12대 전략기술 협력 로드맵을 연내에 순차적으로 발표할 것이다.

-올 상반기 국세만 40조 원 가까이 감소했다. 고통 분담을 호소하면서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높여야 하지 않나.

△지금의 예산 감축은 비효율을 줄이기 위한 것이고 중장기적으로는 다시 늘어날 것이다. 기술 패권 시대에 과학기술인의 사기 진작이 너무 중요하다. 자긍심을 잃지 않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애쓰겠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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