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판사 출신도 전문성 인정 안돼"···'베를린의 이태원' 노이쾰른 실업률, 전국의 2배

글·사진(베를린)=박효정 기자 2023. 8. 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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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부팅 코리아, 이민이 핵심 KEY]
<2> '위기를 기회로' 독일의 변신 - 이민 선진국의 그늘
160여개국서 온 이민자 밀집 지역
교육수준 낮아 가구 27% 빈곤위험
크로이츠베르크선 마약 등 범죄노출
고학력자도 내국인보다 취업 어려워
생활비·세금 등 부담에 獨 떠나기도
2일 베를린 노이쾰른구의 헤르만플라츠역 앞 노점상에서 히잡을 쓴 여성이 과일을 사고 있다. 사진(베를린)=박효정 기자
[서울경제]

이달 2일 과일과 채소, 신발과 각종 잡화를 파는 노점상이 늘어서 있는 베를린 노이쾰른구의 헤르만플라츠역 앞.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들이 체리 한 봉지를 들고 상인과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얼굴만 내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무슬림 의상 ‘차도르’를 입은 여성도 흔했다. 이곳에는 유럽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시 앤드 칩스’ 가게의 메뉴판이 아랍어로 적혀 있고 모퉁이를 돌아 대로를 벗어나면 튀르키예 음식점과 식료품점이 즐비한 거리가 또 나온다. 이 때문에 튀르키예 3대 도시는 ‘이스탄불, 앙카라, 그리고 베를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독일 분단 시절 서베를린은 동독 영토에 둘러싸인 ‘육지의 섬’으로 서독인들의 기피 지역이었다. 그런 서베를린에서도 베를린장벽 가까이에 있던 노이쾰른구는 사실상 ‘세상의 끝’으로 인식됐고 저렴한 거주비 덕에 튀르키예인을 비롯한 이민자들이 몰렸다.

하지만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뒤 노이쾰른구는 문화적 다양성을 갖춘 베를린 중심부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현재 노이쾰른구에 거주하는 이민자들의 출신국은 160개가 넘는다.

2일 베를린 노이쾰른구의 헤르만플라츠역 근처 갤러리아백화점 앞에서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사진(베를린)=박효정 기자

이국적인 분위기 이면에는 어둠도 존재한다. 노이쾰른구와 인접해 마찬가지로 이민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크로이츠베르크구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3만 5500건의 범죄가 발생한다. 특히 유흥가인 코트부서토어 지역은 마약상이 많고 절도, 폭행, 마약 관련 범죄가 빈번해 경찰이 누구든 의심스러우면 임의로 수색할 수 있는 ‘우범지대’다. 독일에 20년 이상 거주한 한인 관계자는 “독일 젊은이들이야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기지만 치안을 중시하는 중장년층 이상은 이곳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이민자와 내국인 간 경제적 불평등과 무관하지 않다. 독일 전국 평균 실업률이 5% 미만인 반면 노이쾰른구의 실업률은 12%가 넘는다. 노이쾰른구 전체 가구의 26.8%가 ‘빈곤 위험’에 처해 있다는 통계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베를린에서 이민 가정 출신의 실업률이 9%로 독일 내국인의 실업률(4%)보다 높다며 낮은 교육 수준을 그 배경으로 꼽았다. 베를린 이민 가정 출신의 저학력 비중은 24.8%로 독일 내국인(8.3%)의 약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2일 독일 베를린 미테구 베딩 지역의 일자리센터 앞에서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베를린)=박효정 기자

하지만 독일에서는 고학력 이민자조차도 내국인보다 취업하기 어렵다는 게 OECD의 분석이다. △국경 간 호환되지 않는 학위 △독일어 능력 부족 △시민권 미소지 등이 고학력 이민자라도 취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난민 단체 회장인 미트라 하시미 씨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판사들조차 독일로 망명하면 전문성을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멘토링 프로그램을 열어 이들의 구직 활동과 빠른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은 저임금 노동 인력 외에 전문 기술을 보유한 이민자를 유치하려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지만 정작 이들은 몇 년 뒤 독일을 떠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 응용경제연구소(IAW)가 독일을 떠난 1885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이들은 대부분 거주 허가가 만료된 뒤 출국을 선택했다. 비자 문제 외에도 적절한 일을 찾을 수 없거나 가족을 데려올 수 없다는 점, 높은 생활비, 세금 및 사회보험 등이 문제가 됐다. 비유럽 국가 출신 전문 인력의 3분의 2는 직장 내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독일 베를린 소재 비영리 연구 단체 ‘마이너’ 소속의 사회과학자 폴 베커 씨는 “이민을 선택한 고급 인력이 독일에 남도록 하는 것은 노동 정책을 훨씬 뛰어넘는 복잡한 문제”라며 “그들이 가족을 데려왔을 때 아파트를 쉽게 구할 수 있는지, 좋은 학교나 유치원을 찾을 수 있는지, 언어를 배울 기회가 제공되는지, 노동시장에서 필요한 도움을 받아 얼마나 빨리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등 수많은 나사를 조여 바람직한 사회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베를린)=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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