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란도, 해병대, 잼버리…재계 팔방미인 떠났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별세

재계 6위 쌍용그룹 총수, 월남전 참전 해병대, 평창동계올림픽의 숨은 공로자, 코란도의 아버지, 국회의원, 고성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장…. 재계의 팔방미인으로 활약하며 한국 사회 곳곳에 족적을 남긴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지난 26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그는 2세 경영인이다. 1975년 부친인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30세 나이에 쌍용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김 전 회장은 해병대 출신 젊은 총수답게 공격적으로 그룹을 키웠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쌍용양회를 기반으로 쌍용중공업과 쌍용정유, 쌍용건설, 쌍용정공 등을 설립했다. 효성증권을 인수해 쌍용투자증권으로 키웠다.

미국 유학 시절 레이싱 학교에 다녔고, 포르쉐 한정판 슈퍼카 모델인 '포르쉐 959'의 국내 유일 소유주였을 정도로 자동차에 관심이 컸던 그는 1986년 동아자동차를 인수하며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다. 이후 사명을 쌍용자동차로 바꿨다. 1995년 쌍용그룹 총자산은 10조원을 돌파했고, 재계 순위는 6위까지 올랐다. 1996년에는 대구 달성군 선거구에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한미경제협의회 부회장,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회장 등을 지낼 정도로 재계에서도 인정받았다.

축배는 여기까지였다. 문제는 쌍용차에서 시작됐다. 쌍용차는 코란도와 무쏘 등이 인기를 끌었으나 현대차·대우·기아 등에 밀리며 시장 점유율이 하락했다. 여기에 19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1998년 쌍용차가 대우자동차로 넘어가게 됐다. 쌍용차 매각 후에도 수조 원대 부채는 쌍용그룹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쌍용그룹은 제지·정유·증권 등 계열사를 매각했으며 그룹은 해체됐다.

경영인으로서는 실패했지만, 그의 유산은 곳곳에 남아 있다. 김 전 회장은 회장 취임 전인 1973년 고원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며 강원도 평창 발왕산 기슭에 스키장을 짓기 시작했다. 2년 후 완공된 용평리조트는 국내 최초의 현대식 스키장이다. 한국 동계스포츠의 토대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장남인 김지용 국민학원 이사장은 평창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을 맡았으며, 올림픽 개막 10일 전에는 용평리조트를 동계스포츠의 요람으로 일궈낸 김 전 회장의 공적을 기리는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김 전 회장은 1982년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에 선출됐고 1990년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 부의장을 맡았다.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에서는 대회장으로 성공적 대회 개최에 기여했다.

고인은 해병대와도 인연이 깊다. 그는 해병대 223기다. 당시 재벌가로서는 드물게 해병대에 자원 입대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아들, 손자도 해병대다. 장남 김지용 이사장은 해병대 백령도 부대에서 근무했으며, 김 이사장의 아들도 해병대를 나왔다. 국민대는 지난해 3월 우수 해병인력 양성을 위한 협력의향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몽규 HDC 회장, 윤윤수 휠라 회장 등이 와서 조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 등은 조화를 보냈다.

유가족은 부인 박문순 씨, 아들 김지용(국민학원 이사장)·김지명(JJ푸드시스템 대표)·김지태 씨(태아산업(주) 부사장)가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다.

[정승환 재계·ESG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