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 큰소리 내지마"… 반일 광풍에 중일관계 급랭
◆ 후쿠시마 오염수 후폭풍 ◆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이후 중·일 관계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일본 정부는 서둘러 오염수 주변 바닷물 검사 결과를 발표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중국 내 반일감정은 더 거세지는 형국이다. 일본 외교당국은 중국 내 일본인에게 "일본어를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는 주의령을 내렸다.
실제 중국 내에서는 일본 정부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한 2012년 이후 반일정서가 가장 높은 수위로 치솟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중국 국민 사이에서 일본 안 가기, 일본 제품 안 쓰기 운동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27일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일본산 화장품·육아용품·식료품 리스트가 빠르게 확산됐다. 한 중국 네티즌은 "일본산 화장품은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일본산 화장품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제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관영매체도 이 같은 소비자 움직임을 잇달아 보도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 글로벌타임스는 "일본산 식품과 화장품은 당분간 사지 않기로 했다. 대안으로 중국 국산 제품이나 유럽 제품을 찾아보려고 한다"는 한 시민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다.
직격탄을 맞은 중국 내 일식당도 "일본산 수산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일본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베이징의 한 일식당은 '저희 가게는 푸젠성에서 가져오는 중국산 수산물을 사용합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입구에 내걸기도 했다.
일본 단체여행 예약을 취소하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고 현지 매체가 전했다.
후쿠시마현 등에 중국 국가번호인 '86'으로 시작하는 항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교도통신은 "후쿠시마현 시청과 음식점 등에 중국에서 발신된 것으로 보이는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왔다"고 전했다. 전화를 받으면 일본어·중국어·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녹음된 음성이 나왔으며, 오염수 방류에 항의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중국 정부도 자국 내 반일정서를 고려해 일본 여권 고위급 인사의 방중을 사실상 거절했다. NHK에 따르면 일본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가 28일로 예정됐던 중국 방문을 전격 연기했다. 야마구치 대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할 친서를 들고 4년 만에 중국을 찾을 계획이었으나 중국 측이 "현재 직면한 중·일 관계 상황을 보면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는 의견을 공명당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 소재 일본 대사관과 영사관은 자국민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지난 26일 주중 일본대사관은 24일 오염수 방류가 시작됐음을 언급하고 "일본인이 문제에 휘말린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다음 날에도 자국민을 대상으로 "외출할 때는 일본어를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신중한 언동에 유의해 달라"고 밝혔다. 주중 일본대사관은 만일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이날 개최할 예정이었던 일본인 피아니스트 행사까지 취소했다.
주홍콩 일본총영사관도 24~25일 치안 정보를 확인하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상세한 안내문을 게시했다.
한편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 일본 수산 업계는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방류 이후 매출이 감소할 수 있는 수산 업계 종사자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한 상태다. 향후 중국에 수산물 수입 전면 금지 조치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고 어민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중국과 홍콩은 일본 수산 업계의 1·2위 수출 시장이다. 지난해 기준 두 나라에 대한 수출액은 각각 871억엔(약 7890억원), 755억엔(약 6840억원)을 기록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이후 중국 내에서는 자국 수산물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중신경위에 따르면 일본의 오염수 방류 이후 온라인 쇼핑몰 핀둬둬에서 중국산 바다 생선과 해삼, 민물고기, 게 등 각종 수산물 판매가 100% 이상 증가했다. 조기 등 바다 생선 판매는 148% 증가했고, 새우류와 해삼 제품 판매는 각각 130%, 118% 늘었으며 털게 등 민물 게는 무려 730%의 판매 증가율을 보였다.
중국 내 일본산 수산물의 자리를 러시아가 대체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로이터는 26일(현지시간) "일본 오염수 방류를 계기로 러시아가 중국에 대한 수산물 수출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 정부가 6년5개월 만에 자국민의 한국 단체관광을 허용하면서 국내 면세 업계에 화색이 돌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지난 26일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청년여행사를 통해 한국행 첫 패키지 단체관광객을 유치했다고 27일 밝혔다. 중국인 단체관광객 31명은 한중수교 31주년을 기념해 수교 31주년 당일인 지난 24일 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26일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을 연이어 방문했다.
[베이징 손일선 특파원 / 서울 한재범 기사 / 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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