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쌍방폭행과 기소유예

2023. 8. 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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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가해자를 때리면
쌍방폭행으로 기소유예 처분
정당방위 요건이 까다로운탓
법정에서 다뤄 판례축적해야

젊은 가장이 아내와 어린 자녀를 차에 태우고 나들이에 나섰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길을 지나는데, 서너 명의 남자가 길을 막고 걷고 있었다. 젊은 가장은 비켜 달라고 경적을 울렸다. 남자들은 차 앞을 가로막고 젊은 가장과 가족들을 위협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다칠까 걱정된 가장은 차에서 내려 말리는데 주먹이 날아왔다. 남자들에게 맞으면서 가장도 맞서 싸웠다. 다행히 경찰이 출동해 싸움이 끝났지만, 가장은 크게 다쳤다. 남자들은 경찰에서 조사받게 되자 자기들도 맞아 다쳤다며 진단서를 제출했다. 가장도 상해죄로 입건되었다. 검사는 남자들은 기소하고 가장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을 하였다.

기소유예란 범죄를 저지른 것은 인정되지만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어 기소하지 않고 용서해준다는 검사의 처분이다. 서로 싸우는 쌍방폭행의 경우 싸움을 도발했거나 심하게 폭력을 행사한 쪽은 기소하고 맞서 싸운 상대방은 기소유예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가장은 억울했다. 가족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청년들의 폭행에 맞서 싸운 것이 왜 죄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은 소송 대상이 아니라며 받아주지 않는다. 권리가 침해됐는데 법원에서 구제받지 못하면 갈 수 있는 곳은 헌법재판소밖에 없다.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도 공권력의 행사다. 검사의 처분으로 애꿎은 시민이 범죄자라는 공적 확인을 받았다면 기본권이 침해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기소유예 처분이 적법한지 다투는 헌법소원을 접수하여 심사한다.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때 젊은 가장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심리하게 되었다.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젊은 가장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 남자들의 폭력에 대응한 것은 정당방위라고 판단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였다. 이 사건 이후에도 쌍방폭행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입건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한 사건이 몇 건 더 헌법소원 사건으로 접수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이 경우 기소유예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결정하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여러 차례 나가자 쌍방폭행에서 피해자를 입건하여 기소유예 처분한 사건이 더는 접수되지 않았다.

최근 흉악범죄가 자주 일어나면서 법원이 정당방위를 잘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자기나 다른 사람의 법익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가 정당방위다. 그런데 법정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으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요건이 필요하다. 과잉방위가 인정돼서는 안 되지만, 실생활에서 법원이 요구하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수준의 방위 행위만 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신이나 가족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협을 받는 긴박한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하면서 합리적 수준의 반격만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방위 행위가 정당한지 일률적으로 기준을 정할 수도 없다. 법원은 구체적 사건에서 상황을 정밀하게 재구성해 정당방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범죄 피해자가 자신을 방어하다 가해자를 다치게 한 경우 폭넓게 정당방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반항하다가 폭행죄 등으로 입건돼도 정식재판에 부쳐지는 사례는 드물다. 그러다 보니 정당방위에 관한 법원의 판례도 많지 않다. 기소유예 처분은 검사의 처분으로 행정처분이다. 그런데 법원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고 있어 헌법소원을 통해 그 당부가 가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심리는 제한적이다. 헌법재판소는 변론 절차 없이 수사기록만 보고 판단한다. 기소유예 처분의 적법 여부는 법원에서 엄밀한 증거조사를 거쳐 가려지는 것이 옳다. 이렇게 되면 정당방위의 기준이 되는 판례의 축적도 기대할 수 있다.

[강일원 변호사·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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