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권력자의 '뜻'에는 시효가 있다
국회의원의 최대 목표는 무엇인가. 정책의 실현, 여론의 반영, 갈등의 조정.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짜 최대 목표는 당선이다. 총선에서 다시 뽑혀야 정책을 실현하든 갈등을 조정하든 할 수 있다. 때론 당선 자체가 목적으로 보이는 인사도 있다.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는 사람들이 쳐다라도 보지만 낙선한 정치인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농담인 듯 진담인 듯한 말이 떠도는 곳이 정치판이다.
당선되려면 절차가 있다. 우선 당의 공천을 받아야 한다. 여전히 당 이름을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있는 총선에서 당의 공천은 의원에겐 생명줄이다. 그래서 공천에 유리하다는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비례대표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에 나서기 위해 더 거친 경쟁을 해야 한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이미 같은 당 현역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건상 불리하다. 그러니 확률이 높지 않다. 최근 총선에서 비례대표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옮겨가 재선에 성공한 비율은 겨우 10% 안팎이다.
지역구 의원에게는 '물갈이'만큼 공포를 불러오는 것도 없다. 당에선 '평가'를 내세워 상당수를 갈아치운다. 이때 온갖 잡음이 쏟아지고 소송전까지 벌어진다. 게다가 우여곡절 끝에 공천을 받아도 본선이 기다리고 있다. 현 21대 국회에서 초선 의원 비율은 50%다. 총선을 치르면 일단 지역구 의원 절반은 갈린다는 소리다.
그러니 당선 확률이 높은 '텃밭' 지역구가 선호될 수밖에 없다. 이곳에 자리 잡은 현역 의원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이고, 이 '텃밭' 지역구에 진입하려는 비례대표 혹은 정치 신인은 사활을 건다.
'시스템 공천'이란 걸 당마다 갖고 있다. 객관적으로 공천을 한다는 목적에서 만든 거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 인지도 등 이런저런 이유가 가미되면서 '뜻'이 반영되곤 한다. 여전히 여당의 경우엔 대통령 혹은 여당 실세의 의중이 반영된다고 믿는 사람이, 야당에서는 당대표와 당 주류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러니 총선을 앞두고선 현역 의원이든 정치 신인이든 그 뜻을 잘 읽고 따를 수밖에 없다. 눈에 들기 경쟁이 벌어진다. 대통령과 실세, 당대표와 주류에 대한 공세엔 무조건적인 '실드'와 더욱 거센 반격을 가한다. 여야 격돌이 점점 거칠어지고, 정치인의 표현 수위가 높아지는 건 이런 배경이 있다. 여기서 의원의 자율성을 논하는 것은 한가한 소리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총선 전과 후가 달라진다. 그 '뜻'을 받들던 정치인들이 총선에서 당선이 되고 난 뒤엔 하나둘 그 '뜻'과는 다른 목소리를 낸다. 일단 당선이 됐고 다음번 총선이 오기 전에 대통령은 바뀔 것이고 자연히 실세도 사라진다. 조만간 당대표도 임기가 끝나고 주류가 교체된다. 무조건 '실드'가 아니라 건건이 판단하고 총선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주장을 한다. 갑자기 자율성이 커진다. 그러면서 '차기'가 누구인지에 촉각을 세운다. 차기 대선주자 혹은 차기 당대표 말이다.
다음 총선 전에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실세 정치인, 대선주자 반열을 유지하지 못하는 당대표로서는 허무한 상황이 펼쳐진다. 총선 뒤의 의원은 총선 전의 의원이 아니다. 그 '뜻'에는 시효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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