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과학, 소리치지 말고 증명하라
당대의 과학이 후대에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맹신
20세기 환경운동의 바이블로 불리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1962년에 출판됐다. DDT를 비롯한 살충제의 위험을 경고한 이 책으로 인해 DDT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강해졌다. 환경단체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1971년이 돼서야 미국 환경보호청이 공식적인 조사에 나섰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1971~1972년 DDT 청문회를 열고 9000쪽이 넘는 증언을 청취했다. 학계의 연구와 청문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환경보호청 청문위원 에드먼드 스위니는 1972년 4월 25일 연방관보에 113쪽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DDT는 필수적인 용도로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DDT의 유해성이 다른 살충제와 비교하면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금지해서는 안된다고 보고서는 결론 내렸다. 1972년 당시의 '과학'은 DDT를 금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6주 후 미국 환경보호청은 '환경에 대한 위험을 구성하는 요인'을 근거로 DDT 사용 금지 결정을 내렸다. 금지 결정을 내린 이유로 '인간과 생태계에 알려지지 않은, 정량화할 수 없는 위험'을 들었다. 미국 정부는 당대 주류 '과학'의 입장과는 다른 '정치적인 결단'을 한 것이다. 그 이후의 과학은 1972년 당시의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인 결단'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과학은 절대적이거나 영원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이고, 패러다임은 '어떤 주어진 과학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 테크닉 등을 망라하는 총체적인 집합'을 의미한다.
지난 한 달간 과학계는 물론 주식시장까지 뜨겁게 달궜던 상온 초전도체 논란을 보면 패러다임으로서 과학이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 수 있다.
상온 초전도체 현상을 확인했다고 주장하는 퀀텀에너지연구소가 'LK-99'라는 물질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시료 제조 방법을 포함해 관련 데이터까지 동료 과학자들에게 공개했다. 과학계에서는 공식·비공식적으로 검증에 나섰다. 퀀텀에너지연구소가 공개한 시료 제조 방법과 데이터를 갖고 '재현'을 해보는 것이다. 일부 연구소별로 '검증'을 통해 LK-99가 상온 초전도체가 아니라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고 네이처지 같은 권위 있는 과학저널도 검증 관련 보도를 통해 상온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것에 무게를 싣고 있다. 최종 결론은 초전도학회에서 진행하는 공식적인 검증을 통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과학계의 '재현'이라는 검증을 통과해야 과학으로 인정된다. 과학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과학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서로를 향해 소리치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과학은 결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과학사를 되돌아보면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다. 인류가 낳은 최고의 천재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마저도 자기 세계에 갇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를 둘러싸고 '과학'이라는 용어가 넘쳐나고 있다. 오염수 방류가 해양 생태계에 유해하지 않다는 '과학적 검증'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가 결정을 내린 만큼 이것을 반대하는 행위는 '비과학적'일 뿐 아니라 '괴담'이라고 비판한다.
일본 정부가 제시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금 시점의 바닷물 속 오염물질의 농도가 기준치 이하로 낮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과학적 사실이다. 그렇다고 방류가 30년간 지속되더라도 생태계나 우리 바다에 미치는 악영향이 없다고 '과학'이라는 말을 걸고 결코 단언할 수는 없다. 30년 후의 과학이 오늘의 '과학적 결정'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알 수 없다.
오염수 방류로 당장 수산물을 먹을 수 없게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 비과학적인 괴담이고 선동이다. 그렇다고 환경과 먹거리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들까지 '비과학'으로 몰 수는 없다. 그런 마음들까지 헤아려 소리치지 말고 앞장서서 입증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다.
[김기철 콘텐츠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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