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할게요” 물러서지 않던 정찬성, 옥타곤 떠난다···홀러웨이전 KO패배 뒤 은퇴 선언
“그만할게요.”
정찬성(36)은 케이지 위에 글러브를 벗어놓고는, 그곳을 향해 큰절을 했다. 정찬성이 16년에 걸친 ‘파이터’로서 커리어를 마감했다.
정찬성은 27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홀러웨이 vs 코리안 좀비’ 메인이벤트 페더급 1위 맥스 홀러웨이(31·미국)와 경기에서 3라운드 시작 23초 만에 KO로 패배했다.
지난해 4월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호주)와 페더급 타이틀매치에서 완패한 뒤 은퇴 의사를 밝혔다가, “한 번 싸워보고 싶었던 선수”라는 챔피언 홀러웨이의 뜻에 정찬성은 다시 케이지에 올랐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사실상 홀러웨이의 우위를 예상한 가운데 정찬성은 1라운드 초반 정확한 펀치를 안면에 적중시키면서 상대 중심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정찬성은 2라운드 초반 홀러웨이에게 묵직한 안면 공격을 허용한 뒤 목을 잡혀 초크 위기를 맞았다.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이후 경기력은 크게 떨어졌다. 그렇지만 정찬성는 눈에 띄게 느려진 발과 펀치에도 뒷걸음치지 않았다. 파이터로서 상대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리안 좀비’라는 별명처럼 상대를 향해 전진하며 주먹을 던지다가 결정적인 한방을 허용하고 말았다.
KO 충격에서 회복한 정찬성은 케이지 위 인터뷰에서 “그만할게요”라며 은퇴 선언을 했다. “내가 그만하는 이유는 (나는) 챔피언이 목표인 사람이다. 홀러웨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회 없이 준비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 그는 “3등, 4등, 5등 하려고 격투기한 거 아니었다. 챔피언이 되려고 했는데, 톱랭커를 이기지 못하니 냉정하게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글러브를 내려놓고는 감정이 북받치며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통산 17승8패 (UFC 7승5패) 로 커리어를 마감한 정찬성은 UFC 무대에서 화끈한 경기력으로 실력과 재미를 모두 잡은 한국 파이터로 기억된다. 이날 경기장을 채운 관중들도 정찬성의 트레이드마크 등장곡인 ‘더 크랜배리스(The Cranberries)’의 ‘좀비(Zombie)’를 떼창으로 부르며 정찬성의 등장을 반겼다. 은퇴 발표 이후 퇴장할 때도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좀비’를 합창했다.
정찬성은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UFC에서 타이틀전까지 치렀다. 2013년에는 조제 알도(브라질), 작년에는 볼카노프스키를 상대로 챔피언에 도전했으나, 모두 졌다.
KO승 직후 정찬성을 직접 부축하기도 했던 승자 홀러웨이는 “정찬성은 전설이고 불가사의한 선수다. (KO 순간) 내 펀치가 먼저 들어간 게 운이 좋았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경기 뒤 전 UFC 페더급·라이트급 챔피언인 코너 맥그리거(아일랜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코리안 좀비는 정말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줬다”고 적었고, UFC 라이트급 스타로 정찬성에 한 번 패한 바 있는 더스틴 포이리에(미국도 “좀비는 언제나처럼 좀비였다”며 경의를 표했다. 이밖에 UFC 헤비급 챔피언 존 존스(미국), 전 UFC 플라이급·밴텀급 챔피언 헬리 세후도(미국), 전 UFC 플라이급 챔피언 드미트리우스 존슨 (미국) 등 동료 선수들도 존경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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