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리 닮은 윤석열 정부 ‘독립운동 색깔론’

이두리 기자 2023. 8. 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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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뉴라이트 기조 노골화” 분석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세워진 항일 독립전쟁 영웅 5명의 흉상.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경향신문 자료사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홍범도 장군의 육군사관학교 흉상 철거를 추진하며 ‘좌익 독립운동가 지우기’에 나섰다. 항일 독립운동에 이념적 색깔을 입히려는 움직임은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양상과 닮았다. 전문가들은 “홍범도를 시작으로 독립운동사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 움직임”이라고 비판한다.

국방부는 지난 26일 “육군사관학교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여러 논란이 있는 분을 육사에서 기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며 육사에 설치된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을 철거·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흉상 철거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육사는 대신 교내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올라 있는 백선엽 장군의 흉상 설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 이전 일제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백 장군은 6·25 전쟁 당시 공로로 인해 ‘반공 영웅’으로 불린다.

반공의 잣대로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우려는 움직임은 박근혜 정부 당시 추진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리와 닮았다. 이는 2018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발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보고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청와대는 “‘일제강점기 민족 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되었고 여러 주체가 참여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일제와 싸우면서 광복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서술한다’는 기존 역사교과서 편찬 기준은 해방이 독립운동만의 결과라는 오인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방은) 2차 세계대전의 결과, 특히 미국과 일본의 전쟁 결과”라는 수정 의견을 교육부에 전달했다. 독립운동의 주체적 성과보다는 일본 패전에 따른 수동적 결과로 광복을 설명하려는 의도다. 청와대는 또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 대결과 경쟁 그리고 그 필연적 귀결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며 반공의식 고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에는 좌익 독립운동의 역사를 교과서에서 삭제하려고 한 정황도 기재돼 있다. 국정교과서 편찬심의회는 2015년 전문위원의 “계급 해방 운동과 민족 운동의 차이점을 서술하고 계급 해방 운동의 문제점도 서술한다”는 수정제안을 수용해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의 문제점과 한계에 유의한다”는 수정안을 확정했다. 또한 “194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설명할 때는 한국독립당과 조선민족혁명당이 힘을 합쳐 광복을 준비했다는 데에 유의한다”는 기존 편찬기준에서 좌익 계통 독립운동 정당인 조선민족혁명당을 삭제했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는 27일 “현 정권에서 독립운동을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로 아주 좁게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독립운동사 전체를 지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공 정서를 자극해 독립운동가를 부정하고 친일 행위자를 정당화하려는 행위”라고 말했다. 신주백 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이 논리라면 국가 훈장을 받은 사회주의자들을 모두 부정해야 한다”면서 “윤석열 정부는 반공 기치로 독립운동사를 어떻게 재편할 예정인지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범도 장군은 1962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다.

전우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는 “이번에 육사에서 철거하는 흉상이 홍범도 장군 하나가 아니듯이 ‘공산주의가 묻었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독립운동사 자체의 비중을 축소시키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지워버리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전 전 교수는 “친일 인물을 우리 역사의 중심으로 내세우고 독립운동가를 주변화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미친 사람들로 폄하하려고 했던 2000년대 초반 뉴라이트의 기조가 다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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