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연속 저성과자' 징계 받자…소송 건 현대차 직원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저성과자 교육프로그램 4차례 갔지만
개선 불가...결국 '정직·감봉' 징계
현대차 상대로 "징계무효" 소송
법원 "공정한 평가 거쳤다면 적법" 일축
최근 기업들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에 관심
하지만 퇴출목적 활용하면 '역소송' 위험
"직장 금쪽이 관리, 잘못하면 '역풍'"
9년 연속 저성과자로 선정된 근로자에게 정직이나 감봉 등의 징계 처분을 내린 것은 적법하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최근 법원이 이같이 심각한 저성과자에 대해 교육 프로그램을 거친 후 징계를 내리는 것은 적법하다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저성과를 이유로 섣부르게 인사조치 했다간 기업에 되레 부메랑이 될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8민사부는 지난 10일 현대차 연구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징계 무효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9년 연속 하위 2%...'정직·감봉' 징계 4차례에도 '적반하장'
A씨는 2003년 현대차에 디젤엔진 등을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입사 직후 4년간 C등급을 받는 등 저조한 성과를 보이다가 2012년 최초로 저성과자 역량향상 프로그램(PIP) 대상자로 선정됐다. 현대차가 2009년부터 시행해 온 '역량향상 프로그램(PIP)'은 인사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간부 사원을 대상으로 업무수행 능력 향상을 유도하는 개선 프로그램이다.
구체적으로 간부사원 1만 2000명 중 최근 3년간 하위 1~2%에 속하면 PIP 대상자로 선정하고 역량 향상 교육을 실시한다. 교육 이후 현업으로 보내 1차 평가를 하고 근무 태도가 개선됐다면 복귀시키고, 여전히 근태나 업무수행 능력이 부족한 경우 2차 교육을 실시했다. 여기서도 내부 기준 점수에 미달한 경우 면담을 거쳐 '역량 개선 노력''업무 성과'를 파악한 후, 징계위에 회부해 감봉, 정직 등의 징계를 내리는 방식이다.
A는 2차례 역량 향상 교육에서 개선되지 않자 결국 2013년 '근무성적 및 근무태도 불량'을 이유로 첫 감봉 징계 처분받았다. 하지만 A의 업무 태도는 개선되지 않았다. 2013년에 받은 2차례 교육에서도 '근태 불량'으로 정직 1개월을 받았고, 2014년에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부서를 변경해줬지만, 또다시 PIP 대상자로 선정됐다. 2015년에도 같은 이유로 또다시 정직 3개월을, 2016년에도 정직 1개월을 받게 됐다. 4차례 징계를 내릴 때까지 4차례 PIP와 1회의 직무전환 배치를 실시한 것이다.
A는 결국 자신에 대한 징계가 위법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A는 "징계와 정직으로 임금 감액을 당하거나 임금을 지급받지 못했다"며 "진급이 누락되는 등 징계 없이 승진됐다면 인상됐을 급여 상당의 손해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근로자에 대한 인사 평가는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 상당한 재량이 있고, 본질상 '정성적' 요소가 포함돼 있다고 해도 이를 자의적이거나 권한 남용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며 "현대차가 행한 인사평가나 PIP 대상자 선정 이후 이뤄진 교육, 평가, 징계위원회 회부까지 과정이 인사재량권을 벗어나거나 공정성, 객관성을 결여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PIP와 직무전환으로 개선의 기회를 충분히 줬음에도 A의 직무역량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을 넘어 회사가 부여하는 직무를 수행하기에 실질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보이고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됐다"고 꼬집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PIP가 상당히 엄격한 요건 하에서 대상자를 선정하고, 교육과 현업평가를 병행해 실질적인 역량향상 교육으로 진행된 점에서 회사의 합리적인 인사재량권 행사로 인정된 판결"이라며 "PIP가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요건에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금쪽이' 증가에...기업들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 관심 급증
최근 기업들의 PIP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이 심각한 저성과자에 대한 PIP제도 운용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이런 현상이 더 도드라지고 있다. 지난 2023년 1월엔 대법원이 SK하이닉스의 '저성과자 성과향상 프로그램'에 대해 그 적법성을 인정하는 판결(2022다281194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 법제가 저성과를 이유로 한 해고나 징계에 상당히 경직돼 있기 때문에 '악성 저성과자'에 시달린 기업 입장에서는 혹하는 상황이다. 서울 소재의 한 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는 "최근 자사에 적용할 수 있는 PIP를 문의하는 기업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잘못 설계된 PIP는 기업에 되레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특히 실질적으로 저성과자 업무능력 향상이 아니라 '퇴출 프로그램'으로 설계·운영되는 PIP는 문제가 제기될 경우 되레 기업에 손해배상 등의 책임, 노동 당국의 개선명령, 노사 관계 악화, 기업 평판 손실이라는 최악의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저성과자에게 업무와 상관 없는 봉사활동 등 교육을 시키는 것만으로도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이번 판결과 달리 PIP에 네번이나 선정된 간부 사원이라고 해도 해고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도 있다(2020누37439).
대법원은 PIP가 적법하기 위해선 △공정하고 객관적 평가 △근무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정도를 넘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함 △추후 낮은 개선 가능성 등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 누가 봐도 저성과자이고, 개선 가능성이 없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징계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중요한 관건은 '저성과자'임을 입증할 수 있는 인사평가 기준의 '객관성'·'공정성'이다. '공정성'에 대해 법원은 △인사평가 기준 공개 △체계적인 이의제기 절차 △1인이 아닌 복수의 인사평가권자 △최하위 평가자가 반드시 나오는 구조가 아닐 것(예: 절대 평가 식) 등 복잡한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
한 HR컨설팅 전문가는 "PIP를 의뢰하는 기업들은 PIP를 퇴출 목적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거나 당장 저성과자에 대한 징계나 압박이 가능한지 문의하는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개선가능성이 없는 저성과자로 인정 받으려면 수년에 거친 데이터 등 객관적 증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 프로그램에 업무 향상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없는지, 평가 항목이 저성과자 역량 평가 목적에 부합하는지 등을 점검해야 퇴출 프로그램이란 오해를 피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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