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이 키운 阿 군부 독재… 지지자들 "푸틴" 연호 [뉴스 인사이드-‘사헬 쿠테타벨트’ 親러 가속]

유태영 2023. 8. 2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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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국 쿠데타벨트 4년 새 완성
세계 테러 희생자 43%가 사헬서 발생
군부 "치안 강화" 내걸고 잇단 쿠데타
'최후 보루' 니제르마저 지난 7월 군 장악
러 깃발 흔드는 사헬 반프랑스 시위대
프랑스 10년간 대테러전쟁, 반프랑스 정서만 키워
러 용병 바그너, 쿠데타 세력 '우군' 등장
군부 테러 진압 도와주고 자원 이권 챙겨
러의 아프리카 밀착, 경계하는 국제사회
'최빈국' 니제르, 우라늄 생산 세계 4위
서아프리카공동체 "무력 개입" 군부 경고
미국도 "안보 협력 중단" 엄포… 긴장 고조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서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압두라흐마네 티아니 대통령 경호실장이 최초의 민선 대통령 모하메드 바줌을 억류하고 정권을 잡자 외신들은 “사헬 지역 쿠데타벨트 도미노의 마지막 조각이 쓰러졌다”고 평가했다.

2020년 말리, 2021년 차드·기니·수단, 2022년 부르키나파소 권력을 군부가 장악한 데 이어 니제르마저 그 대열에 동참함에 따라 인도양에서 대서양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허리를 약 5600㎞ 길이로 가로지르는 지구상의 가장 긴 군부통치 구역이 형성된 것이다.

역내 불안정성이 심화하며 서방에 골칫거리를 안긴 한편 러시아에는 유리한 판이 깔렸다는 평가다.
한 남성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군복을 입은 어린이를 목마태우고 서방의 제재 반대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쿠데타 세력인 조국수호국민회의(CNSP) 지지세력인 이들은 니제르 국기와 러시아 국기 등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니아메=로이터연합뉴스
◆테러 집단의 놀이터

아랍어로 ‘가장자리’라는 뜻의 사헬은 사하라사막과 중부 아프리카 초원지대 사이 스텝지대를 말한다. 사막보다는 기후 조건이 낫고 목축도 가능하지만, 빈곤이 심하고 출산율은 높아 젊은이들의 불만이 팽배한 지역이다. 다양한 인종·종교가 뒤섞여 대립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이곳은 보코하람, 이슬람국가(IS) 서아프리카지부,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과 무슬림 지지그룹’(JNIM)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기승을 부린다. 국제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테러리즘 인덱스’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테러 희생자 6701명 중 43%가 사헬 지역에서 발생했다. 2007년에는 비중이 1%밖에 안 됐던 곳이 이제는 전 세계 테러 폭력의 진원지가 된 것이다.

이는 이 지역 잇단 쿠데타의 공통적 배경이 됐다. 테러 집단과 싸우는 과정에서 군부 위상은 자연히 높아졌고, 민선 정부는 테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군부는 치안 강화를 내세워 쿠데타를 정당화했다.

국립외교원 김동석 교수는 세계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사헬 각국 쿠데타의 기저 요인은 비슷하지만 나라마다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치 지도층의 부패, 높은 실업률 같은 개별적인 쿠데타 촉발 요인이 있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특히 “니제르의 바줌 대통령은 서방 지원을 받아 군사작전을 벌이는 한편 유화책으로 테러 집단을 포섭하는 종합적 접근법을 취했고, 이것이 최근 효과를 보기 시작해 니제르는 다른 나라보다 테러 피해가 적은 편”이라며 “오히려 이 탓에 영향력 약화를 우려한 군부와의 알력 등 내부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바줌 대통령이 아랍계 소수민족 출신이어서 권력 기반이 약한 점, 이웃 군부 정권이 아프리카연합(AU)이나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로부터 별다른 제재·타격을 받지 못하고 생명을 유지함에 따라 발생한 ‘전염 효과’도 쿠데타 발발 요인으로 꼽힌다.

ECOWAS는 이번에야말로 무력 개입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으나, 니제르 군부는 이웃 군정의 엄호 아래 ‘3년 내 민정 복귀’ 약속만 내놓으며 버티고 있다.

◆팽배해진 반프랑스 정서

사헬 쿠데타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반(反)프랑스 정서다. 상당수가 프랑스 식민지 출신인 사헬 지역 나라는 테러 집단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말리 정부의 요청으로 2013년 군병력을 처음 파견한 프랑스는 사헬 지역 5개국에 총 5100명을 투입해 2022년까지 ‘바르칸 작전’(Operation Barkhane)에 나섰다. 현대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드는 해외작전으로 알려졌지만 테러 위협은 종식되지 않았다. 사헬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프랑스 정도 되는 군대가 도대체 왜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가’, ‘혹시 (자원 이권 등)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과 불만이 팽배해졌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니제르는 세계 4위 우라늄 생산국이고, 원자력발전 의존도가 70%로 높은 프랑스 원전용 우라늄 15%를 충당한다.
니제르 쿠데타 직후 수도 니아메에서는 군부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프랑스 대사관을 습격해 출입문에 불이 붙었다.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1월31일 말리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다. 당시 말리 군정은 쿠데타 후 프랑스와의 관계가 험악해지자 자국 주재 프랑스 대사를 추방했는데, 며칠 뒤 반프랑스 시위대가 이를 축하하는 집회를 하면서 러시아 깃발을 흔들고 프랑스 국기를 불태웠다.

◆러시아에 열린 기회

러시아가 쿠데타의 배후라는 증거는 없지만 서방, 특히 프랑스의 대안 세력으로 자리매김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말리 쿠데타 세력은 프랑스가 물러간 자리에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불러들였다. 테러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쿠데타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바그너 용병은 이밖에 수단, 부르키나파소에서도 공개적으로 활동하며 경호·군사 훈련, 치안 유지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현지 광산 채굴권 등 각종 이권을 챙겼다.
지난 23일 사망한 민간용병기업 바그네르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21일(현지시각)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카메라를 향해 말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기온은 50도, 모든 것이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라며 "바그너 용병기업은 모든 대륙에서 러시아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고 아프리카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라고 말해 그가 당시 아프리카에 있음을 암시했다. 텔레그램 비디오 캡처 사진.
23일 사망한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니제르 쿠데타를 축하하며 니제르에도 자신의 전사를 보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는 21일 아프리카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에서 “바그너는 모든 대륙에서 러시아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고 아프리카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며 “(우리는) 아프리카 주민에겐 정의와 행복을 (가져다주고) IS나 알카에다 및 다른 도적들의 삶을 악몽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안보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폴라한미 아이나 연구원은 아랍 매체 알자지라 기고에서 “사헬 지역에서 프랑스가 일으킨 많은 실수의 가장 큰 수혜자는 러시아”라고 했다.

러시아가 그간 아프리카에 공을 들여온 점도 대중의 환영을 받는 이유로 분석된다. 소련 시절 반서방 성향 정권에 군사 원조를 제공하며 아프리카 국가들과 연을 맺었던 러시아는 2014년 크름반도 강제 병합 후 서방 제재가 본격화하자 아프리카로 다시 눈을 돌려 군사 협력, 자원 외교를 강화했다. 프리고진이 자금을 댄 인터넷연구기관(IRA)이 아프리카에서도 가짜뉴스를 살포하며 반서방 정서를 부추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1국가 1표’ 원리가 작동하는 국제기구에서는 아프리카 54개국이 강력한 블록이 되는 만큼 이들을 끌어안으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유엔총회 결의안 투표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26개국이 기권·반대·불참을 통해 러시아에 동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다만 “말리에서는 바그너 용병이 유입된 후 민간인 사망자가 급증했고, 부르키나파소에서는 테러 집단의 공격 범위가 수도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그너그룹의 민간인 학살·약탈 의혹, 군부와 개인적 연줄이 많은 프리고진의 사망 등은 쿠데타 세력의 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다.
지난 7일 모하메드 바줌 니제르 대통령을 축출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인사 중 한 명이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군부 지지 세력 수천 명이 모여 헌정 질서 회복을 요구하는 주변 국가들의 압력에 맞설 것을 촉구했다. AP연합뉴스
◆고민 커진 서방

서방에는 악몽이다. 특히 ‘최후의 보루’인 니제르마저 러시아 영향력 아래로 넘어간다면 뼈아프다는 평가다.

바줌 대통령은 2021년 니제르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돼 국가의 체질을 민주주의적으로 개선하는 데 열성을 기울였고 서방은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NYT는 니제르가 미 국방부 아프리카 전략의 주춧돌이었다고 했다. 니제르에는 최소 1100명의 미군이 주둔 중이며, 니아메와 아가데즈에 각각 1억1000만달러(약 1455억원)를 들여 드론 기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쿠데타는 지금까지 미국이 기울여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바줌이 복귀하지 않으면 재정 지원과 안보 협력을 중단하겠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김 교수는 “쿠데타 정권이 테러 집단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테러리스트들이 나이지리아, 가나, 토고 등 아프리카 서부 해안 쪽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럴 경우 기니만에서 석유를 운송하는 한국 상선에 대한 위협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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