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관광 웃지만 물가는 복병… 日 ‘슈퍼엔저 랠리’ 언제까지 [세계는 지금]

강구열 2023. 8. 2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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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통화정책 주목
日, 디플레 탈출 위해 경기부양 팔 걷어
금리 올리는 美와 반대로 ‘돈풀기’ 계속
日, 2분기 GDP 1.5% 늘고 증시 활황
수출 실적 개선… 관광 산업도 살아나
물가는 계속 올라 11개월째 3%대 상승
달러 환율 145엔 넘어… 당국 개입 촉각
#1. 지난 1일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4∼6월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3.7% 늘어난 1조1209억엔(약 10조31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한 분기 기준으로 영업이익이 1조엔을 넘어선 것은 일본 기업 중에서 도요타가 처음이었다. 같은 날 닛케이225지수(닛케이 평균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304.36포인트(0.92%) 오른 3만3476.58로 장을 마감했다. 도요타 등 수출관련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2. 민간 시장조사회사 데이코쿠데이터뱅크가 195개 주요 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달 1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가격을 올렸거나 인상을 예정하고 있는 식품, 식료품의 수는 3만5000여 품목에 달한다. ‘가격 상승 러시’라 불렸던 지난해 2만5000여 품목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가격 상승의 정점을 10월로 예상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 경제의 호재와 악재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 두 가지 장면에는 ‘역대급’으로 불리는 엔저(엔화가치 하락)가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엔저로 인해 수입물가가 오르면서 일본 국내물가가 상승해 소비자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도쿄 신주쿠의 한 마트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2019년 8월 1달러에 100엔대이던 달러·엔 환율은 3년이 지난 지금 140엔대로 형성된 상황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기조 아래 돈을 푸는 정책을 고수하는 일본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 온 미국이 대비되며 엔을 팔고 달러를 사는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엔저로 인한 경기부양 효과와 물가상승이란 장애물을 동시에 직면하고 있는 일본의 대응에 이목이 쏠린다.

◆엔저 향유 日…기업실적 개선·관광 활기

지난 17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달러·엔 환율은 1달러당 146.56엔(1343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9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자 올해 들어 최고치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관측이 퍼지면서 양국 간 금리차 확대를 예상해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흐름이 나타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어김없이 나왔다. 지난달 12일 달러당 138.40엔을 기록하며 140엔 아래로 내려간 상황이 한동안 이어지자 지난해부터 계속된 엔저 흐름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던 것을 무색하게 하는 상황이다. NHK방송은 외환시장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를 당분간 계속할 것이란 전망이 강해 일본, 미국의 금리차가 축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엔을 팔려는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길어지는 엔저에 도요타 같은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실적 개선이 뚜렷하다. 해외시장에서 일본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아졌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요타, 미쓰비시전기 등 주요 수출 기업이 “올해 환율을 달러당 137엔(1261원)으로 상정해 연간 계획을 잡았다”며 “예상 환율과 실제 환율 차이에 따른 추가 이익을 계산하면 2분기 영업이익은 3600억엔(3조3000억원)의 추가 이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가도 상승세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7.1% 상승하여 주요국 증시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닛케이225지수(7월 기준)는 올해 1월 2만5717로 최저치를 찍은 후 상승 흐름을 이어가 지난달에는 3만3753까지 치고 올라갔다. 경기가 절정이던 1989년 12월 사상 최고치인 3만8915까지 바라보게 됐다.
엔저 효과를 톡톡히 보는 또 다른 분야가 관광업이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은 1071만명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코로나19) 이전 2019년 같은 기간의 64.4%까지 회복했다. 코로나19 방역대책을 크게 완화한 데에 더해 엔저로 순풍을 맞았다. 아사히신문은 “엔저로 인해 동남아시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관광객이 코로나19 이전을 상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최근 자국민의 일본 단체관광 제한을 풀면서 관광업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올해 2분기(4∼6월) 일본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1.5% 증가하며 지난해 4분기부터 플러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2분기 수출은 전 분기보다 3.2% 늘었고 수입은 4.3% 줄었다. NHK는 “반도체 부족 문제가 누그러들면서 자동차 수출이 늘었고 통계상 수출로 잡히는 외국인 여행자의 일본 여행도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보다 뛰어넘는 가격 인상 러시

역대급 엔저를 염려하는 시선의 핵심은 물가다.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물가가 올라서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전국평균 1ℓ당 휘발유 가격이 전주보다 3.6엔 오른 181.9엔(1667원)이다. 역대 최고치였던 2008년 8월의 185.1엔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가격이 상승하자 일본 정부가 가격 억제를 위해 지난해 도입했던 보조금 제도를 단계적으로 줄이기 시작한 것에 더해 엔저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해석된다.
도쿄 일본은행 본점 앞을 한 보행자가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주요 100개사를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올해 안에 제품 가격을 올리거나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한 곳이 57개사라고 보도했다. 이들 중 20개사는 가격 상승 이유로 ‘엔저진행·수입비용 상승’을 꼽았다.

미즈노 아키토 미즈노 사장은 아사히에 “엔저가 지금 이상으로 진행되면 원자재 조달의 비용이 늘어 해외에 공장을 가진 기업의 수익도 악화되고 개인소비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전쟁에 따른 국제 에너지,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엔저 영향으로 지난해 초부터 오르기 시작해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목표치를 내건 2%를 웃돌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3% 이상의 상승률이 11개월째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28일 발표한 물가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9%에서 2.5%로 올렸다.
아사히는 “올해 봄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기업이 계속 나왔지만 물가 영향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5월까지 14개월 연속 전년을 밑돌았다”며 “엔저나 원재료 가격 상승세가 강해 임금인상 효과가 사라질 것으로 보는 경영자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장기화된 엔저에 저금리 기조 변화올까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금리, 통화팽창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도다.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목표 아래 금리를 올려 시중의 돈을 거둬들이는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와는 다르다. 이런 차이는 이자가 높은 달러를 사고, 낮은 엔을 파는 자금 흐름을 형성해 지속적인 엔저가 이어지고 있다.

관심은 일본 정부, 일본은행이 역대급 엔저를 언제까지 용인하고, 저금리 정책을 이어갈지에 쏠린다.

일본 정부, 일본은행은 지난해 9월 1달러당 환율이 145엔대에 들어서자 24년 만에 시장에 개입했다. 10월에도 두 차례 같은 조치를 취하며 환율방어에 나섰다. 정확한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세 번의 개입을 통해 9조엔(83조원) 이상을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달러·엔 환율이 다시 145엔을 넘어서면서 당국의 개입이 다시 이뤄질지 주목을 끌고 있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은 “과도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을 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일본은행은 장기 국채금리를 상한선(0.5%)을 넘는 1%까지 용인한다고 결정했다. 이는 저금리 금융완화 정책이 바뀔 것이란 신호로 해석돼 당일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매수세가 이어져 한때 138엔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당국의 실제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이 낮고, 일본은행의 결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시장 개입 가능성을 낮게 보는 건 지난해에 비해 올해 환율의 단기간 변동폭이 그다지 크지 않고, 기업실적이 개선되면서 엔저로 인한 부담감이 완화되었다는 점 등이 근거다. 장기금리의 사실상 인상에 대해서도 일본은행은 금융완화 정책 포기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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