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도 넘지 못한 ‘한국형 SF’ 잔혹사···문제는 이야기다
손익분기점 1/10에도 못 미친 성적
SF는 한국 영화계에서 유독 부진한 장르
‘참신한 이야기’의 부재가 흥행 실패의 원인
제작비 280억원을 들인 SF 영화 <더 문>이 동원 관객 ‘51만명’이라는 씁쓸한 성적표와 함께 사실상 퇴장했다. ‘쌍천만’ 김용화 감독이 야심차게 내놓은 <더 문>은 국내에서 유독 부진한 SF 장르 영화의 새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됐지만 한국 영화계는 또 한 번 실패의 경험을 누적하게 됐다.
27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25일차인 전날까지 극장에서 <더 문>을 본 관객은51만390명에 불과하다. 손익분기점(600만명)의 10분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올 여름 개봉한 텐트폴 영화 4편 중에서도 <비공식작전>(100만명)에 이은 꼴찌다. 텐트폴 영화란 각 투자배급사에서 내놓는 영화들 가운데 지지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대작들을 의미한다.
SF는 한국 영화계가 지난 수 년간 꾸준히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대표적인 장르다. 지난해 여름 개봉한 SF 블록버스터 <외계+인> 1부는 <타짜>,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손익분기점(730만명)의 1/5 수준인 153만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이에 앞선 2021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과 극장 동시 개봉을 한 공유·박보검 주연의 <서복> 역시 동원 관객 38만명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인 시기에 OTT와 극장에 동시에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적은 숫자다. 올 초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정이>와 <택배기사>는 공개 초기 플랫폼 글로벌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작품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작품은 한국 최초의 SF 영화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승리호>(2021) 정도다. 이 영화는 우주의 모습을 화려하게 구현해 한국 영화계의 기술력을 보여줬다는 칭찬과 함께 익숙한 설정과 이야기라는 지적도 받았다.
한국 관객은 SF를 싫어해?
한국은 오랜 시간 SF 장르 영화의 불모지처럼 여겨졌다. 김용화 감독은 이달 초 <더 문>의 관객과의 대화(GV)에서 “한국에서 SF시장이 열악하기 때문에 ‘벽을 깨보자’ 하고 시도해봤는데 그것에 비해 아직 한국 관객 분들께서 한국 영화의 SF를 대하시는 거리감이 있다”고 말했다. <더 문>의 부진한 흥행이 SF에 대한 국내 관객의 선호가 낮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한국 SF 영화의 실패가 누적되면서 애초에 관객들의 선택지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강 평론가는 “<승리호>가 한국형 SF 영화로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이후 또다른 성과물을 기대하며 팔로업 해온 관객들이 있지만, 이후 줄줄이 실망을 했고 그 결과로 <더 문>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인 개봉 첫 주부터 저조한 예매율을 기록한 데에도 이런 피로감이 작용했다고 강 평론가는 봤다. 코로나19 이후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관객의 경향이 짙어진 상황에서 부진한 초반 성적은 관객몰이에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한국 관객이 SF 장르를 덮어놓고 보지 않는다는 분석에는 반례가 많다. 각각 2013년과 2014년 개봉한 <그래비티>(329만명), <인터스텔라>(700만명) 모두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SF영화다. 2015년에는 <마션>이 480만명 관객을 모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엔데믹 이후인 올 봄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 3>가 420만명을 동원했다.
2020년대 들어 문학계에서 분 ‘SF 붐’ 역시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 작가를 비롯해 천선란 등 젊은 SF 작가들의 작품은 전례없는 사랑을 받으며 독자와의 거리를 줄여나가고 있다.
“참신한 이야기와 질문이 성공의 열쇠”
전문가들은 한국 SF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놓쳤다고 입을 모은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관객들이 극장에 갈 때 중요한 것은 ‘SF 영화냐 아니냐’가 아닌 ‘흥미롭고 새로운 이야기가 있느냐 없느냐’”라며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라면 관객을 끌어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우주비행사의 지구 귀환 작전을 다룬 <더 문>은 화성에 고립된 우주대원의 구출기를 그린 <마션>과 유사하다. 전형적이거나 그럴듯한 설정 만으로 신중해진 관객을 극장에 불러들일 수 없다고도 했다.
강유정 평론가는 한국 SF영화들이 컴퓨터 그래픽(CG) 등 기술적 성취에 힘을 쏟은 나머지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그는 “뛰어난 비주얼을 위해 영화의 기본기를 희생한 작품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강 평론가는 SF의 핵심은 ‘질문 던지기’에 있다며 한국 SF영화의 지향점도 여기 있다고 강조했다. 전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블랙홀을 통해 시간의 역설을 말했듯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SF는 뛰어난 비주얼을 보여주는 오락영화로 여겨지곤 하지만, 참신한 질문을 던지는 철학 영화에 가깝다”며 “시각적 자극 위주의 오락영화로 만들거나 닳고 단 질문을 반복한다면 좋은 SF영화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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