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이 나일론을 만든다고?…과학자들이 이토록 매달리는 진짜 이유는 [교과서로 과학뉴스 읽기]

원호섭 기자(wonc@mk.co.kr) 2023. 8. 2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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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사공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이 있습니다. 나일론의 원료가 되는 화학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미생물을 개발한 건데요, 넓은 의미에서 이러한 연구를 대사공학이라고 부릅니다. 작은 미생물을 요리 만지고, 조리 만지면서 인류가 원하는,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물질을 만들도록 ‘엔지니어링’하는 것을 뜻합니다.

대사공학, 과연 어떤 학문일까요. 과학 교과서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상엽 교수팀은 지난 2013년 대장균을 이용해 석유를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당시 관련 논문은 네이처 표지로 선정됐다. <사진=네이처>
포도당 먹은 미생물, 나일론 재료를 배출
이상엽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미생물은 ‘발레로락탐’이라는 ‘단량체’를 만들어 냅니다. 단량체라는 것은 고분자를 만드는 재료라고 보시면 돼요. 고분자, 라는 용어가 또 어려울 듯합니다. 분자들이 서로 연결된 것이라 보면 될 것 같아요. 발레로락탐을 서로 연결하면 ‘나일론-5’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일론-5는 어망이나 텐트는 물론 의류 등에도 활용이 돼요. 즉 나일론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미생물이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연구진이 이러한 미생물을 만든 이유는 발레로락탐을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 오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발레로락탐은 석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유해 폐기물이 만들어집니다.

연구진은 세균의 일종인 ‘코리네박테리움’에 발레로락탐을 생산할 수 있는 대사회로를 구축합니다. 포도당을 넣으면 미생물이 이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발레로락탐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조종한 것입니다.

이 기술은 DNA를 붙이거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개체를 만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미생물이 가지고 있는 대사회로가 있을 텐데요, 아, 대사회로란 쉽게 이야기해 생물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밥을 먹었을 때, 밥알이 잘게 부서지면서 위로 넘어가고, 탄수화물이 소화되고, 불필요한 물질은 소변, 대변으로 체외로 배출되는 일련의 과정 역시 대사회로의 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미생물의 대사회로를 설계한 뒤에, 이 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디자인한 뒤 실제 생물에 넣어주는 거죠.

즉 미생물이 포도당을 섭취하면, 대사 과정을 거쳐 ‘발레로락탐’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내도록 조작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벌써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DNA 조작해 인류에게 유용한 미생물을
첨단 기술이지만 대사공학의 원리는 중학교 3학년 과학 교과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생장과 생식’ 파트에서 염색체와 유전자가 등장하는데요, 대를 이어 전달되는 유전정보는 염색체에 담겨있습니다. 염색체는 세포의 핵 속에 존재하는데 세포가 분열할 때가 되면 막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염색체가 DNA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DNA 중에서 유전정보가 담긴 부분을 ‘유전자’라고 합니다. DNA 염기는 이전 유전자 가위를 설명했을 때 볼 수 있는 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입니다.

과학자들은 생각합니다. A라는 유전자가 있으면 포도당을 잘게 분해할 수 있어. 그리고 B라는 유전자가 있으면 이 포도당을 다른 물질로 전환할 수 있어. 라고 말이죠. 이런 몇 단계를 거치면 포도당이 발레로락탐이 되는 마법이 일어납니다. 물론 이는 쉽게 설명한 겁니다. 그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정말 많은 ‘노력’과 함께 ‘삽질’도 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전혀 새로운 생물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합성생물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연구 분야인데요(대사공학과 비슷합니다), A, G, C, T외에 새로운 염기를 만든 뒤 이를 기존의 염기와 연결해 지구상에는 없던 미생물을 태어나게 한 사례도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방식을 활용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미생물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상엽 KAIST 교수
이러한 기술들이 조금씩 쌓이고 쌓여 나간다면 신약 개발, 환경오염이 적은 플라스틱 생산 등 정말 유용한 곳에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요즘 이처럼 유용한 과학기술을 소개하기가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상온 초전도체’가 발견됐다는 말에 관련 주도 아닌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고, 양자얽힘에서 ‘태극 문양’이 발견됐다는 초자연적인 이야기(연구자들이 인위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가 떠다니더니 ‘맥신’이라는 신소재에 이어 ‘상온 양자컴퓨터’ 구현이 가까워졌다는 말에 관련 주가 들썩입니다.

LK-99의 경우는 ‘논문’이 나온 것도 아니고 저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그들의 주장이 맞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는 학자들의 지적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매국노’라거나 ‘카르텔’ ‘기존 학자들’이라는 말로 마치 이들을 ‘재야의 고수를 시기하는 기성세대’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많은 과학 성과의 기초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은 과학 교과서를 뒤져보는 일입니다.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는 지금 이슈가 되는 모든 연구 성과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원리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과학 관련 기사를 접했을 때 이해가 안 갈 때 마다 교과서를 펼치는 이유입니다.

교과서를 열심히 뒤졌지만 나오지 않는 얘기를 이제야 찾았습니다. 과학적 성과는 한순간에 ‘뻥’ 하면서 터지지 않습니다. ‘신소재’가 발견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상용화에 다다르기까지는 정말 큰 노력과 시간, 투자가 뒤따릅니다. 그래핀이 발견되고 10년이 지났지만 이제야 조금씩 상용화와 관련된 제품이 나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캐나다 오타와대 연구진이 포착한 양자얽힘. 연구진이 인위적으로 태극 문양에 양자얽힘을 구현 <사진=네이처 포토닉스>
새로운 발견의 검증은 폐쇄적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출판 전 논문을 따라 하면 된다고 하더니, 이제는 특허에 제조 방법이 나와 있으니 논문의 방식대로 재현하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한글로 특허를 써 외국인 과학자의 접근을 막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떠돕니다. 검증되지 않았는데 홈페이지에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홍보하고, 국내 대기업 다수와 협력한다고 거짓말을 한 저자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습니다.

혹독한 동료 평가를 거친 수많은 연구 성과가 쌓이고 쌓이면서 단단한 이론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상용화로 연결됩니다.

23일(현지시각) 학술지 ‘네이처’에는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놀라운 성과가 실립니다. 뇌졸중과 루게릭병에 걸려 말을 하지 못하는 환자의 뇌에 칩을 이식, 그들의 생각을 언어로 바꾸는 데 성공한 연구입니다. 물론 비슷한 연구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이번 논문은 오류를 줄이고, 언어 전환 속도를 보다 빠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성과죠. 이 정도면 관련 주가 들썩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구진은 “아직 이룬 것이 아니다” “증명되지 않았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네이처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일반화 가능성을 많은 사람에게 지나치게 약속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라는 발언을 담습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과 견주었을 때 여러모로 시사하는 게 많은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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