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잡초에 대한 신화와 뉴노멀
"이제는 그간의 도전을 멈추는 것이 좋겠다."
얼마 전 지난 몇 년간 열정적으로 사업을 끌어온 한 창업자에게 건넨 말이다. 꿈의 크기와 달리 이 회사의 매출은 지지부진했고, 실적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했다. 보유 자금마저 바닥이 보인다. 개인 대출까지 받아서 회사를 유지하겠다는 창업자를 마주하며 더 버티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몇몇 포트폴리오 기업은 문을 닫았고, 또 다른 몇 곳들과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인정받아온 기업가치보다 더 낮은 밸류를 감수하고서라도 현금을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는 조언도 뉴노멀이 되었다.
안타까운 상황을 많이 목격하고 있는 요즘, 특히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스타트업들이 스러져간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소풍벤처스에서 투자한 초기 스타트업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간 힘겹게 사업을 이어왔으나 시장이 얼어붙은 지금, 이제는 실험을 멈추는 것이 현명하게 여겨지는 상황이 많다. 알토란처럼 키워온 사업을 멈추라니 창업가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제넘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창업가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질 순 없을까.
투자자로서 이런 상황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빠른 성장과 혁신을 보여주는 기업들이 꾸준히 있기 때문이다. 그간의 투자 전략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투자금이 회수되는 엑시트 사례들도 발생하고 있기에 안도의 한숨은 쉬고 있다.
하지만 이내 그대로 한숨으로 이어진다. 한쪽에서는 문을 닫고 한쪽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장을 마주하는 익숙한 풍경이 생경하게 다가온다. 그 정도가 심각하다는 생각과 함께 또 언제는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도 생각한다.
우리가 마주치고 또 투자한 창업자들은 대부분 창업이 처음인 사람들이다. 창업은 성공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뿌리내리기 어려운 환경과 그 뿌리마저도 잘려버리는 환경에서 창업 성공의 확률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처음하는 사람보다야 한번 실패해보고 재도전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확률이 높지 않을까.
우리의 창업생태계를 보며, 혁신 창업가들을 잡초처럼 대해온 것은 아닌지 다시 돌아본다. 롤모델이 되는 창업가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굴의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왔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 안의 무수한 실패와 좌절, 도움과 지원은 리더십과 결과 아래 쉽게 묻히고 만다. 그렇게 우리가 갖는 창업의 신화는 어떤 조건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잡초처럼, 싹을 틔울 수 없는 환경에서도 싹을 틔워야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결말은 알고 보니 잡초가 아니라 들꽃이었다는, 아니 거목이었다는 것으로 끝이 난다. 투자자들의 신화 역시 다르지 않다. 남들은 잡초라 여긴 그 들꽃 혹은 거목을 떡잎부터 알아보았다는 것은 언제나 회자되는 이야기다.
이 신화들이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강력한 스토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신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창업자를 발굴하고 길러내는 시스템만큼이나 지금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는, 혹은 실패로부터 다시 도전하려는 창업자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재도전, 리스타트, 재창업 등 무엇으로 부르든 말이다. 그것은 뉴노멀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태풍이 사상 처음으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종단했다. 태풍을 맞이할 준비를 철저히 했음에도 그 영향은 달랐다. 피해가 극심한 곳도, 태풍의 영향을 전혀 느껴지 못했다는 지역도 있다. 태풍같은 시장 상황을 마주하며 망연자실한 창업자들이 많다. 그 결과를 온전히 창업가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 일, 실패한 창업가들이 실패로부터 충분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일, 이런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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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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