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유레카] 완벽주의 모범생, 번아웃 워킹맘이라면…여성ADHD의 ‘또 다른 얼굴’
여성ADHD-투명소녀에서 번아웃여인으로ㅣ로타 보그 스코글런드 지음ㅣ241쪽ㅣ1만5000원
먼 미래를 위해 눈 앞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는 뇌(腦) 속 작동 기제에 대한 유명한 연구가 있다. 만 4살짜리 아이들 앞에 마시멜로를 식탁 위에 두고, 15분만 기다리면 1개를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뇌 안의 특정 부위는 ‘먹으라’고 충동질하고 다른 특정 부위는 ‘참으라’고 제어하며 승강이를 벌인다.
“저건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거잖아”라는 보상계의 탐욕을 향해 전두엽이 “지금은 안돼”라고 억제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 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이 연구는 15분을 참고 마시멜로를 2개 받아낸 아이들이 전두엽이 발달했고, 그 덕분에 수학능력시험(SAT)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사회적 성공을 이뤘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같은 뇌 연구가 발달하면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라는 새로운 질환이 등장했다. ADHD는 마시멜로를 2개 받아낸 아이와는 정반대의 상태에게 나타나는 질환이다. 전두엽이 통제를 못하니 에너지가 넘치고, 감정과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느낀다. 성적을 잘 받으려면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교실을 휘젓고 다니는 남학생이 ADHD 전형이다.
그런데 교실을 돌아다니는 것에 흥미가 없는 ADHD 여학생은 어떻게 진단해야 할까. 한국형 ADHD을 연구해 온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반건호 교수가 스웨덴 웁살라대 정신의학과 로타 보그 스코글런드 교수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여성 ADHD, 투명소녀에서 번아웃여인으로’를 출간했다. 이 책은 여성과 남성의 ADHD가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수업을 방해하는 ADHD 남학생은 심각한 장애로 보고 적극 치료를 받지만,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여학생은 오히려 ‘노력하는 모범생’으로 인식된다. 부모와 선생님의 통제를 받은 어린 시절이야 상관없지만, 자기가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하는 성인이 되면 어려움을 겪는다.
ADHD가 있으면 지능지수(IQ)가 낮을 것이란 통념은 사실이 아니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지능이 높을수록 ADHD를 늦게 발견한다. 나아가 일부 ADHD는 ‘완벽주의’ 성향을 보인다. 자신의 주의력 결핍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조직적이고 융통성 없이 모든 일에 공을 들인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번아웃’이 된다. 이 책의 스웨덴 제목은 ‘ADHD: 모범생에서 지친 여자로(ADHD: Från duktig flicka till utbränd kvinna)’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ADHD가 있는 사람은 경솔하고 충동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릴 때 흡연, 음주, 마약을 더 많이 하고, 자라면 심한 우울증을 경험한다. 여성은 흡연, 음주보다는 ‘성관계’ 에 문제가 생긴다. 저자 연구에 따르면 ADHD가 있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미혼모가 될 확률이 6배나 높았다.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는데, 귀찮아서 피임을 하지 않는다.
책에 나오는 생생한 사례들을 보면 ‘내 일인가’ 싶어 덜컥 겁이 난다. 저자는 지능 높은 ADHD 환자를 소개하면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바보며, 핸드백 속이 지저분한 소녀”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세상에 핸드백을 완벽하게 깔끔하게 정리해서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멀티 태스킹’이 미덕인 사회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도 힘들다.
결론은 심플하다. ADHD는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렇게 같은 ADHD라도 남녀 차이를 인정하고 접근하자는 것이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매달 월경을 하는 여성들은 ADHD가 있건 없건 요동치는 여성 호르몬으로 감정 기복을 겪는다. 저자는 피임약으로 여성 ADHD를 조절할 수 있다는 가설을 소개하면서도 깊은 설명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여성 호르몬은 산부인과가 전문이기 때문이라고 밀어 놓는다. 정신건강의학과와 산부인과가 협력한 여성호르몬과 ADHD 연구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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