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렸다. 상주의 특산물인 쌀·곶감·명주가 모두 하얀색을 띠는 데서 유래했다. 그중 하나인 명주는 누에고치의 실을 뽑아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두두두두득 톡톡 두두두두득 톡톡.’ 마치 매서운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상주시 함창읍 길쌈 농가에서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다. 이곳 길쌈 농가에선 베틀로 실을 엮는 작업도 한창이다.
‘탁탁’ ‘타다닥탁’.
낡은 베틀에 앉아 빗소리에 장단을 맞추듯 베를 짜고 있는 이는 허씨비단직물 잠실 주인 허호 대표다. 작업장 한쪽 대야엔 뜨거운 물에 불린 새하얀 누에고치가 가득했다. 명주 장인 허씨가 소형 빗자루 모양의 도구인 ‘실비’로 휘젓자 거미줄 같은 실이 줄줄 뽑혀 나왔다. 이렇게 뽑힌 실을 베틀을 이용해 가로세로로 엮어 명주를 만든다. 가로로 짠 실은 씨실, 세로로 짠 실은 날실이라고 부른다. 엮인 실들을 햇볕에 건조해 완성된 명주 원단은 한복과 스카프, 배냇저고리, 수의(壽衣) 등의 재료로 쓰인다. 이곳에서는 나무 베틀을 사용하고, 씨실에 물을 먹여 명주의 조직을 견고하게 만드는 전통 제조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5대째 명주 제작 가업을 잇고 있는 허씨는 물을 먹인 씨실이 날실과 만나면 한층 자연스럽게 결합하기 때문에 함창명주는 다른 옷감보다 질감이 부드럽고 내구성도 좋다며 세상이 변해도 전통 제조 방식을 유지하는 이유라고 했다. 이렇게 생산된 ‘함창명주’는 전국으로 유통되며 우리나라 전통 명주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집에 직기(織機) 몇 대를 들여놓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손을 빌려서 명주를 대량으로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집집이 직기 한두 대에 의존하고 있을 뿐 규모를 키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허씨가 처음으로 함창명주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거래처가 안정되고 주문이 늘어났다. 공장을 24시간 가동하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허씨는 공장을 운영하면서 실을 감는 기계와 명주를 짜는 기계를 끊임없이 개량했다.
한편으로는 수의 일색인 명주를 일반적인 옷감으로 판매처를 넓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오랜 연구 끝에 쌍고치와 천연염색에 주목하게 됐다.
“보라색은 빨간색과 파란색의 혼합인데, 염료를 혼합하여 미리 짜 놓은 명주에 물들여 보고, 실에 염색하여 날줄은 빨간색, 씨줄은 파란색으로 하여 명주를 짜보고 하니 보라색은 보라색인데 각각 색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더군요.”
허씨는 독특한 문양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다. 명주를 감물에 담가 색을 들일 때도 접거나 구겨서 우연에 따른 세상에서 하나뿐인 모양을 만든다. 건조 과정에서도 햇볕이나 처마 밑에서 말리는 식으로 광도를 조절해 서로 다른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다. 색의 농담과 염료의 증발 성질을 조화시켜 의도하는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그 결과 현재 특허 9개와 실용신안 2개를 보유하고 있다. 전국 공모전에 명주작품을 출품해 수상도 무려 20여 회나 했다. 허씨와 같은 연구와 실험정신을 가진 명주 농가들이 함창명주의 명성을 새롭게 드높이고 있다.
명주에서는 다른 천으로는 흉내를 낼 수 없는 색감이 표현되고 그 자체로 고귀한 느낌을 준다. 허씨는 명주에 천연염료의 다양한 색과 문양을 표현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모시·삼베 등 자연 섬유 중에서도 명주가 으뜸이죠. 우리의 전통 옷감인 명주는 끝없이 새롭게 재탄생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