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비문이 말을 건다 “우리가 진정 해방됐는가?”
(시사저널=심정택 칼럼니스트)
이예식(E-Sik Lee) 작가는 8월1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항하는 배편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사할린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후, 이틀을 머무른 후에 배를 탈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인천 간 직항편이 3년여 전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끊겼고, 지금은 비정기 노선만 운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22일 역순으로 사할린에 돌아갔다.
1949년 러시아 사할린주 마카롭시에서 태어난 이예식은 1960년대 중반부터 소련제 카메라로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1973년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사할린주 언론계에 입문했다. 사할린 유일의 한인 신문사인 새고려신문에 들어간 1989년부터 그는 사할린 1세 동포들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찍어왔다.
2000년 초부터 이 사진들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을 본 현지인들은 대체로 "같은 러시아 사람으로서 공감한다"는 평가를 내놨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일본 사진작가인 가타야마 미치오(片山通夫)의 초대로 일본에서도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 가타야마 자신도 사할린 한인들을 사진으로 남겨 서울, 도쿄, 파리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예식은 2014년 지구촌동포연대(KIN·대표 최상구), 김지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현 갤러리인덱스 대표)와 인연을 맺고 2016년 사진집 《귀환》을 출간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부산에서 초대전도 열었다.
사할린 강제동원과 학살의 기록
사진전은 주로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된 후 돌아오지 못한 한인동포와 후손들의 삶을 담았다. 사할린 동포들의 영주 귀국 장면, 일본 총영사관 앞 배상 요구 시위, 징용 간 남편을 50여 년 만에 만난 여인의 미소, 유즈노사할린스크 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아낙네, 장구 장단에 춤을 추는 사람들의 풍경 등이다.
년대 초 구소련이 붕괴하고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화폐개혁 등으로 한인들의 고난이 극심했을 때의 생활상도 담았다. 구소련 붕괴는 일제강점기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 지역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뼈아픈 역사를 되살아나게 했다.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고려인을 배척해 고려인은 연해주로 재이주하기 시작했다. 1937년 부모 또는 조부모가 왔던 6000㎞를 거슬러 다시 연해주로 향했다. 한인 2세 이예식은 이때 한국말을 다시 배웠다. 한국 정부의 북방정책으로 러시아에서는 한류가 생겨나고, 한인들의 위상도 올라갈 때였다.
일본은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기초한 국민징용령(1939년 7월)에 의해 국민에게는 전쟁 수행을 위해 국가에 대한 노동 의무가 부과됐다. 당시 강제동원 된 조선인은 15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연행지 중 하나가 사할린의 일본식 지명인 가라후토(樺太)다. 1944년경 사할린에는 약 6만 명의 조선인이 탄광이나 군사시설 등에서 강제노동으로 혹사당했다. 패전 직전 약 2만 명의 조선인이 홋카이도 등의 탄광으로 이동했으나, 전후 사할린에는 여전히 4만3000명의 조선인이 남게 됐다. 종전 후 일본인은 거의 전원이 철수했으나, 조선인에게는 철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일본은 패망 직후 사할린 한인을 대거 학살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즈호와 가미시스카 사건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사건 발생 75년이 지나 학살 사건 심문조서와 재판 기록물 등의 문건들이 기밀 해제됐고, 사할린 한인회 등이 이를 입수하면서 만행이 알려지게 됐다. 미즈호 마을의 학살 희생자가 정부 조사 결과인 27명보다 많아 최소 35명이 넘는다는 증거들도 확인됐다. 가미시스카 학살 사건은 국경 인근에서 피난길에 올랐던 조선인 등 18명을 가미시스카(옛 레오니도보) 파출소에서 일본 경찰들이 총살하고 불까지 지른 사건이다. 이예식의 작품에는 이후 상황들도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윤리적으로 부당한 것들이 미학적으로는 찬란하게 빛날 때가 있다. 피카소가 위대할 수 있는 것은 《게르니카》와 《한국에서의 학살》 같은 전쟁과 이념, 인간의 광기에 묻혀버렸을 제노사이드(genocide)를 강렬한 구도와 무감각할 정도의 색채로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포토저널리즘 또한 마찬가지다. 진실을 밝힐 때에만 사진은 찬란하게 빛난다.
8월21일 끝난 이예식 개인전 《사할린,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기획한 사진가이자 갤러리스트 김지연은 "이예식의 사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김지연은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 이미지는 계속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작품이 가진 그 힘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우리에게 꽂힌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는 사진 속에서 꿈틀대며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고 사할린 1세와 2세를 주로 찍은 이예식의 작품을 평가한다.
사할린에 살았던 한민족 디아스포라(이산) 1세대들의 귀환은 종전 44년이 지난 1989년부터다. 2016년 현재 4000여 명의 1세가 영주 귀국을 했고, 그들의 자녀 3만여 명이 사할린에 살고 있다. 이예식은 사할린 한인 2세이며 동시에 러시아 국민일 수밖에 없는 내부자의 시선(from the native's point of view)으로 사할린 1, 2세들을 기록했다.
한인의 귀환은 1994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영주 귀국 시범사업의 일환이었다. 50여 년이나 지난 늦은 귀향길에 4189명이 영주 귀국 길에 올랐고, 으로 되돌아가거나 사망한 이들을 빼면 약 3000명이 춘천, 인천, 안산 등 24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에서 여름을 보내거나 2세들이 진출한 모스크바 등을 오갔으나, 3년여 전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이러한 왕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지구촌 동포연대' 최상구 대표는 말한다.
사할린 한인 역사에 대한 체계적 연구 필요
사할린 한인 문제는, 식민지 정책과 강제동원의 전시 체제를 이끌어온 일본 제국주의의 문제이고, 학살 사건 등 전쟁범죄에 대한 문제다. 그러나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드러낼 문헌들과 증언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아직도 미진한 상태다. '지구촌 동포연대'는 영주 귀국 사업의 개선과 사할린 현지 동포에 대한 지원,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조사하고 기념하는 사업의 추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2020년) 제정을 주도했고, 영주 귀국 대상 확대 등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예식은 사할린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인 8월21일, 영주 귀국 후 코로나19로 돌아가셔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인천 바다에 뿌려야 했던 아버지를 뵈러 갔다. 이예식의 시대를 증언하는 방대한 작품들은 일부만 공개됐고, 여전히 흑백필름으로 남아 디지털로의 전환을 기다리고 있다. 이예식의 작품은 이 작가의 한국 에이전트인 인덱스이미지샵(www.indexshop.co.kr)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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