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스푸스 신화에서 영감받아 ‘존속 살해’ 다룬 연극 ‘테베랜드’

이강은 2023. 8. 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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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한 병도 못 가져오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 "걸레 같은 새끼".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 이런 폭언을 들으며 학대와 폭행을 당한 청년 '마르틴'은 어느날 아버지가 또 그러자 끔찍하게 죽인 뒤 자수한다.

S는 마르틴 사건을 바탕으로 존속 살해와 관련한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연극이 완성된 후 마르틴과 S는 아쉬운 작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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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한 병도 못 가져오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 “걸레 같은 새끼”.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 이런 폭언을 들으며 학대와 폭행을 당한 청년 ‘마르틴’은 어느날 아버지가 또 그러자 끔찍하게 죽인 뒤 자수한다. 사랑했던 어머니도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일찍 세상을 떠난 터라 혼자가 된 마르틴은 무기수로 교도소에 갇힌다. 짧은 운동 시간에 혼자 농구하는 게 유일한 낙인 그에게 법무·교정 당국의 취재 허락을 받은 극작가 ‘S’가 찾아온다. S는 마르틴 사건을 바탕으로 존속 살해와 관련한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무적이던 둘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온기가 형성된다. 마르틴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S가 면회오는 날만 기다리고, S는 마르틴이 살아온 얘기를 들을수록 ‘오죽했으면 아버지를 죽였을까’ 연민하게 된다. S가 만들 연극에서 마르틴 역을 맡는 배우 ‘페데리코’가 S를 향해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점차 인질범에게 심리적으로 동조하는 현상)’ 같다”고 할 정도다. 그렇게 연극이 완성된 후 마르틴과 S는 아쉬운 작별을 한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 중인 연극 ‘테베랜드’는 등장인물이 3명이지만 2인극이다. 마르틴 역 배우가 그대로 페데리코를 연기한다. 극은 S가 교도소 철창 안 농구 코트를 재현한 무대에서 마르틴, 페데리코와 번갈아 대화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맞춰 철창은 교도소가 됐다가 연극 연습 무대가 되기도 한다.
2인극 ‘테베랜드’의 한 장면. 쇼노트 제공
‘테베랜드’는 우루과이 출신 유명 극작가 세르히오 블랑코가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영감받아 2013년 초연한 작품으로 영국·미국·이탈리아·스페인 등 16개국 무대에서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제목도 아무 것도 모른 채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살았던 ‘테베’에서 따왔다. 결국 테베는 누구나 가족을 비롯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안·결핍·상처·증오 등으로 얼룩진 내면이 있음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극 중 S는 말한다. “본질적으로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약간은 막연하게 느껴지는 테베를 지니고 있어요. 조금 혼란스럽고 어두컴컴한 곳. 일종의 불가해한 영역 같은 거랄까. 아닌가요?” S는 이석준·정희태·길은성이, 마르틴과 페데리코는 이주승·손우현·정택운이 번갈아 연기한다. 쉬는 시간 포함해 170분에 달하는 연극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관객 몰입도가 높다. 9월24일까지 공연.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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