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넘어 삶을 보듬다…데뷔 60년 손숙의 '토카타'[강진아의 이 공연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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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일들을 어제처럼 여기고, 오래된 사람들을 떠올리다가 잠이 듭니다. 저를 감싸고 있는 오래된 것들을 어루만지죠. 그러나 이상하죠. 오래된 몸은 익숙해지지 않네요. 잠들기 전에 스위치를 내리듯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어요."
연기 인생 60주년을 기념해 올린 연극 '토카타'에서 배우 손숙이 가장 와닿은 대사로 꼽은 대목이다.
사람들 간 접촉이 단절됐던 코로나19 시기에 영감을 받은 작품은 '촉감'을 축으로 삼아 고독을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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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오래된 일들을 어제처럼 여기고, 오래된 사람들을 떠올리다가 잠이 듭니다. 저를 감싸고 있는 오래된 것들을 어루만지죠. 그러나 이상하죠. 오래된 몸은 익숙해지지 않네요. 잠들기 전에 스위치를 내리듯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어요."
공허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읊조린다. 곁을 지키던 늙은 개를 떠나보낸 후 홀로 남겨진 집, 늙은 여자는 집안의 오래된 가구와 물건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어루만지며 이내 고독함에 젖어든다.
연기 인생 60주년을 기념해 올린 연극 '토카타'에서 배우 손숙이 가장 와닿은 대사로 꼽은 대목이다.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다'는 말에 공감했다는 여든 살의 노배우. 뜨겁게 사랑하고 아이를 길러 품에서 떠나보내고 이제는 혼자가 된 극 중 늙은 여자는 그 자신과도 같다. 그 얼굴에 손숙 자신을 투영하며 삶의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찬란함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극은 늙은 여자 그리고 중년 남자의 독백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시를 읊는 듯한 대사는 90분 내내 살아 움직인다. 피아노 선율에 맞춰 나풀나풀 객석에 내려앉는 대사는 잔잔한 호수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관객의 마음에 스며든다. 지나간 세월과 현재의 처지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섬세한 표현력은 눈앞에 그림을 그려낸다.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여인은 누런빛으로 말라버린 잔디 위에서 자신의 빛나던 옛 시절을 떠올린다. 자신을 쓰다듬어 주던 남편의 뜨거운 손길, 자신이 쓰다듬던 강아지의 따뜻한 온기를 말할 때면 미소를 띠고 눈빛을 반짝인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들어 버린 그의 곁엔 쓸쓸함만이 맴돌고 있다.
한 곳에 가만히 앉아있는 남자는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인공호흡장치를 달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태다. 그는 자신이 어루만졌던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떠올린다.
두 인물이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건 '접촉'이다. 작품의 제목도 '접촉하다', '손대다'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했다. 사람들 간 접촉이 단절됐던 코로나19 시기에 영감을 받은 작품은 '촉감'을 축으로 삼아 고독을 풀어낸다.
극본을 쓴 배삼식 작가는 간담회에서 "코로나 때 혼자 걷던 산책길에 각자 상념에 젖은 이들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에서 이 작품이 시작됐다"며 "관객들이 배우들의 말과 움직임을 통해 떠오르는 상념 속에 스스로 조용히 산책하기를 바라며 썼다"고 말했다.
작품은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지만, 슬픔과 허탈함만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인생을 겪어온 갖가지 감정을 담아내면서도 외로움을 넘어 또다시 걸어간다. 다시 산책을 나온 여인은 길고양이와 누에고치를 보며 스스로를 보듬으며 날갯짓하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다. 세대를 떠나 자신의 어린 시절 또는 지금, 이후 나이 든 때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스쳐 가며 공감을 자아낸다.
1963년 연극에 첫발을 뗀 손숙은 수많은 작품을 거쳤지만, 기존 작품이 아닌 새로운 창작극을 이번 공연으로 선택했다. 그에게 설레는 첫 무대와 같은 마음으로 돌려놨다는 이번 작품에선 데뷔 이후 처음으로 상반신 노출도 했다.
막과 막 사이엔 춤추는 사람이 등장한다. 각각 4분여간 이어지는 몸의 시간은 침묵 속에 늙은 여인과 중년 남자의 독백을 가만히 곱씹을 수 있는 쉼표 같은 역할을 한다. 남자 역에는 배우 김수현, 춤추는 사람 역에는 정영두가 출연한다. 연출은 원로 연출가 손진책이 맡았다.
공연은 오는 9월10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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