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김희선·이서진 드라마도 삐걱…시장붕괴 위기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한국 드라마 시장이 붕괴 위기에 처했다. 톱스타 주연 작품도 줄줄이 촬영을 중단, 제작 무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상파는 위기를 맞은 지 오래고, 케이블채널 tvN 등을 거느린 CJ ENM과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 등도 제작 편수를 대폭 줄였다. 시장에 자금이 돌지 않아 발을 동동 굴리는 제작사들이 적지 않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김희선 주연 '가스라이팅'은 촬영이 중단됐다. 올해 4월 캐스팅을 발표하고, 하반기 방송 예정이라고 알렸다. 편성이 되지 않은 채 사전 제작했지만, 연내 전파는 타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 관계자는 "5회 가량 촬영 후 중단된 지 꽤 됐다"며 "1~2회밖에 촬영 안 한 배우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 드라마는 심리상담가 '노영원'(김희선)이 추리작가인 시어머니 '홍사강'(이혜영)과 행복한 가정을 위협하는 사건을 마주한 뒤 공조하는 이야기다. 영화 '나를 찾아줘'(2019) 김승우 감독이 크리에이터와 연출을 맡았다. 웹드라마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2021) 남지연 작가가 썼다. 김 감독은 첫 드라마 연출인 만큼, 직접 극본을 고치는 등 애착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선 측은 재정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제작사가 jpx스튜디오에서 레드나인픽쳐스로 바뀌었다며 "영화 '달짝지근해: 7510' 홍보 일정으로 인해 바로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다. 조만간 촬영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방송사도 정해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서진 주연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역시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스태프 등 대부분이 해산한 상태"라며 "제작사 넘버쓰리픽쳐스 자금 상황이 좋지 않다. '스피릿 핑거스'와 비슷한 시기 촬영이 들어가 타격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 드라마는 대학에 가고 싶은 47세 조폭 '김득팔'(이서진)이 열아홉 고등학생 '송이헌'(윤찬영) 몸에 빙의해 가해자를 응징하고,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친구와 우정을 쌓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동명 웹소설이 원작이다. 이서진은 촬영 분량이 많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내과 박원장'(2022) 대머리 의사에 이어 조폭 연기 변신에 기대가 쏠렸지만,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넘버쓰리픽쳐스는 "제작이 무산된 것은 아니"라며 "공개 플랫폼 관련 OTT 업체와 협의 중"이라고 했다.
스피릿 핑거스는 촬영이 중단됐다가 최근 재개했다. 또 다시 중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여고생이 이상한 그림 모임에 들어가 나만의 색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동명 웹툰이 원작이며, '미생'(2014) 정윤정 작가가 크리에이터를 맡았다. 박지후를 비롯해 조준영, 그룹 '골든차일드' 최보민, 박유나가 주연으로 나섰다. CJ ENM 계열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 지원했지만, 발을 빼면서 피해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스튜디오드래곤은 횡령 사건으로 김영규 공동대표가 사임하는 등 내부 사정이 좋지 않은 상태다.
한예리의 결혼 후 복귀작도 무산될 위기다. 최근 '더 센스'는 제작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만에 깨어난 악령을 상대하는 신영카톨릭고 학생 4명과 수상한 선생님의 방과 후 테마 활동 이야기다. 한예리와 그룹 '위아이' 김요한, 신시아 등이 합류했다. 하이지음스튜디오·하이그라운드가 공동 제작했으며, '구경이'(2021) 이정흠 PD가 연출을 맡았다. OTT 시리즈로 준비했고, 올해 초 하이그라운드가 주요 라인업으로 소개했다. 물론 하이그라운드는 제작 무산은 사실이 아니라며 "극본 수정 작업이 길어진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국내 드라마 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촬영을 마쳤지만, 편성을 잡지 못한 작품도 100여 편에 달했다. 넷플릭스 등 OTT 등장으로 K-콘텐츠 인기가 높아지면서 거품이 일었고,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위험 부담도 커졌다. 요즘 드라마 제작비는 수백억 원이 넘는 만큼, 흥행 실패 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KBS는 막대한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 OTT와 경쟁에서 밀렸을 뿐 아니라 수신·전기료 분리 징수로 인한 피해도 막심하다. 지난해 순수신료는 약 6200억원이었는데, 분리 징수 시 1000억원대 급감이 예상되고 있다. KBS 1TV만 유지하고, 2TV는 사라진다는 소문이 도는 이유다.
CJ ENM은 1분기(1~3월·영업손실 503억원)에 이어 2분기(4~6월)도 304억원 적자를 냈다. KT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이후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ENA 재론칭과 함께 3년간 총 5000억원을 투입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강화한다고 밝혔지만, 투자를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디즈니코리아는 6월 콘텐츠팀을 해산했다. 한 관계자는 "디즈니코리아 내부에서도 횡령 문제가 있었다"면서 "신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도 중단했다"고 귀띔했다.
제작사 관계자는 "내년 국내 드라마 시장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KBS는 미니시리즈를 편성하지 않고, 타 방송사도 대폭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대비 50% 이상 제작·편성이 축소되는 셈이다. 배우들의 출연료도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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