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 포비아’가 한 달 이상 못 갈 것이라 보는 이유 [노원명 에세이]
내일 죽는다면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바라는 게 없을 것이므로. 바라는 게 없으면 두려울 게 없고 두렵지 않으면 자유롭다. 카잔차키스는 생전에 자기 묘비명을 그렇게 지었다.
인간은 죽음이 아니라 삶 앞에서 이기적이고 비굴하고 나약해지고 악의 유혹에 취약하다. 그 태도는 전 인류 공통이다. 다만 문화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다. 절대종교가 지배하는 문화권에서는 죽음과 삶의 경계선이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진다. 그들은 교회에 갈 때 마다, 기도를 올릴 때 마다 신과 마주한다. 그것은 죽음의 절대성과 사후 세계의 평화를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이 문화권에선 절대적 도덕, 절대적 과학에 대한 믿음이 동시에 발달한다.
한국은 지배적인 종교가 없는 나라다. 모든 종교에 열려있는 듯하지만 그 관대함은 개방성보다는 무심함에 더 가까워 보인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현생(現生) 절대우위의 사생관을 갖고 살아간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가치관이다. 우연과 우연의 연속으로 주어진 삶, 이승에서 가능한 여러 행운을 만끽하고 불운을 멀리한다면 좋은 삶이다. 종교도 수복(壽福) 기능에 특화되는 경향이 있다. 무속이 산업을 이루고 몇몇 보편 종교들도 한국에 들어오면 기복적 성향을 띈다. 절대적 도덕 대신 상호 이해에 기반한 보상적 도덕관(덕을 쌓으면 복 받는다는 식)이 발달했다. 절대적 원칙이 없으므로 과학이 내면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시끄럽고 진전이 없는 논란을 지켜보면서 절대종교가 없으면 절대과학도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방류에 길길이 뛰는 핵심세력들은 반일감정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반일 선동에 취약하며 그 못지않게 미신에도 취약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방류수에 대해 ‘찝찝하다’는 느낌을 표출한다. 그 찝찝하다는 게 실은 한국적인 감성이다.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왠지 거리껴지는 감정을 한국인은 당당하게 말하고 기꺼이 행동의 준칙으로 삼는다.
가령 중국 저장성 치산 원전이 2020년에 방출한 삼중수소가 후쿠시마 제1 원전이 연간 방류할 삼중수소의 6.5배에 달한다는 점, 영국 해협에 방출되는 프랑스 라아그 재처리 시설의 삼중수소량이 후쿠시마의 450배에 달한다는 확인된 팩트가 언론에 보도되어도 한국인의 찝찝함에는 별 영향을 못 미친다. 동일본 대지진때 수많은 방사성물질이, 수만 배 더 많은 농도로 유출되었음에도 바다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정도였으며 그 이후 우리는 생선회도, 탕도 잘 먹어왔다. 그랬던 사람들이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삼중수소를 제외한 모든 방사성물질을 제거한 방류수에 찝찝함을 느끼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모순을 못 느낀다. 과학이야 어쩌거나 말거나 찝찝한 것은 찝찝한 것이다.
후쿠시마 방류수가 우리보다 먼저 닿는 미국에서 방류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EU는 방류에 임하여 오히려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에 대한 수입 규제를 12년 만에 해제했다. 이들은 절대종교와 절대과학이 뿌리내린 문화권이다. 반면 중국은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전면 수입금지를 통보했다. 중국의 결정에는 한국의 반(反) 방류 세력에 명분을 줌으로써 한일 관계를 이간시키려는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중국이 언제부터 미국·EU보다 자국민 건강에 신경 쓰는 나라였나. 이런 돌출된 결정을 모순을 안 느끼고 할 수 있는 것이 중국의 문화적 토양이다. 그들 역시 절대종교와 절대과학과는 담을 쌓았다.
한국인으로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경험칙이 있다. 한국인들은 쉽게 속지만 그게 생활에 도움이 안되면 하루아침에 뒤돌아서 버린다. 광우병 파동이나, 일제 보이콧 운동이 다 그랬다. 한국은 미국 쇠고기를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이고 유니클로를 국민 일상복으로 입는 나라다. 한 달이 못 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남해산 생굴과 멍게를 찾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게 한국인들의 현생 중심 세계관에 부합한다. 삶은 유동하는 것, 그 안에 절대적인 원칙은 없다(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족을 붙인다. 나는 어떤 종류의 교회에도 소속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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