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꺼내지 않은 ‘그 단어’…박근혜는 “경제발전 중추”라며 치켜세웠다 [대통령의 연설]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2023. 8. 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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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해체 위기까지 내몰렸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60년 전 창설당시의 명칭인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재출범합니다. 국정농단 사태로 전경련을 탈퇴했던 4대그룹(삼성·SK·현대차·LG)도 일부 계열사가 회원사로 합류하는 방식으로 한경협에 복귀하며 과거의 위상을 되찾는 모습인데요.

윤석열 대통령이 한경협의 부활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현 정부차원에서 많은 역할이 있었으리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업인 출신이 아닌 인물이 전경련 회장을 맡는 일이 극히 드문데, 윤 대통령의 대선캠프와 인수위원회에서 활약했던 김병준 교수가 지난 반년여간 전경련의 회장 직무대행을 맡아왔던 덕분이죠.

한경협의 부활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어려운 시기를 맞은 한국경제가 다시 한 번 대기업의 힘으로 도약할 수 있길 기대하는 동시에, 한경협의 역사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던 정경유착의 폐해가 되살아나지 않길 바라고 있을듯 합니다.

대통령의 연설 이번 회차에서는 전경련을 언급한 역대 대통령의 연설기록을 되짚어보려 합니다. 워낙 상징성이 큰 단체인 탓에 역대 대통령들도 이같은 상징성과 어떤 궁합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연설이 많이 갈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출범 후 20년 넘게 연설문에 등장 못해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주도해 단체를 설립하던 1961년 당시의 명칭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경제인협회였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직후 군부 내에서는 탈세를 저지른 대기업 대표들을 본보기로 총살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기업인에 대한 반감이 심했는데요. 박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죄를 묻지 않는 대신 공장을 건립해 속히 부정축재를 속죄하고, 경제단체를 만들어 국가재건에 기업인들이 앞장 서달라 요구했습니다. 이후 박 전 대통령과 기업계가 경제발전에 어떤 호흡을 보여줬는지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듯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제1회전국경제인대회참석연설1(1973)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박 전 대통령의 연설기록이나 이후 전두환𑁦노태우 전 대통령 연설기록에서도 한경협이나 전경련(1968년 개칭)이 직접 언급된 사례를 찾기가 힘듭니다. 정확한 이유는 이제와서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당시까지만해도 정경유착이 심하던 시절이니 대통령 연설에 전면으로 등장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추정됩니다. 이후 대통령들이 “나는 전경련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 것을 보면 아예 근거없는 추측은 아닙니다.
국가경제 부흥의 상징됐지만...이명박 “당선 직후 전경련 갔다고 ‘친기업,친부자’ 취급”
이후 대통령들의 연설에서는 관계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상대로 명실상부 민간 경제계를 대표하는 단체로서의 위상이 잘 드러납니다.

IMF 외환위기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출이 호조를 보여 금년 말에는 200억 달러 내지 250억 달러 흑자를 낼 수 있습니다”라며 정부관측을 내놓은 뒤 “더 이상 낼 수 있다고도 합니다. 전경련 분들은 500억 달러를 낸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나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라며 재계 관측을 병렬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에 이어지는 재계 통폐합 과정을 이끈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1999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경련이 자율적으로 협의해서 기업을 서로 교환하는 빅딜을 한 것입니다. 정부는 단 한건에 대해서도 어느 기업은 무슨 종목을 주고, 또 다른 기업은 무슨 종목을 주고 하는 식으로 개입한 일은 없습니다”라 강조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기업 정서가 있다는 세간의 인식을 뒤집기 위해 전경련을 활용한 연설이 있습니다. 2004년 시사매거진 2580 특별대담을 통해 “제가 취임하고 난 뒤에 그동안 전경련 행사 있을 때마다 가서 격려해주고 기업하기 좋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따로 초청도 하고 여러 차례 그런 일 있었지 않습니까, 거기에 끼지 못하는 국민이 봐서는 너무 대기업 총수들만 깍듯이 챙기는 것 아니냐고 섭섭해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반기업 정서를 정부가 만든다고 하면 그건 매우 불공평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전경련 신춘포럼 강연(2004)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반대의 상황이었죠. 그는 2009년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너무 대기업만 챙긴다는 시각에 대해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제일 먼저 대기업 집단인 전국경제인연합회 20명의 기업 총수들을 만나러 갔습니다”라며 “만나서 제가 이야기한 것은 ‘여러분이 역대 대통령 선거에 돈을 다 대줬을 텐데 이번에야말로 100만 원도 안 대줬으니까 여러분은 떳떳하게 나하고 만날 수 있지 않느냐. 그 대신 여러분은 좀 어려울 때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 이 부탁을 강하게 했습니다”라고 항변했습니다.
박근혜 “중소, 벤처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기업 생태계 만들어달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는 전경련의 신축 회관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준공식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전경련이 미래 대한민국의 ‘창조’역량을 끌어올리면서 함께 땀 흘리는‘협동’의 중심에 서서 ‘번영’의 미래를 이끌어 가길 바라면서, 전경련 신축 회관 준공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라며 기념연설을 마무리하는데요.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회관에 선물했던 휘호인 ‘창조, 협동, 번영’을 활용한 문장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연설에서 국가경제에 기여한 전경련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유독 중소기업과 상생을 강조한 점이 인상 깊은데요. 이런 정책기조는 박 전 대통령을 당선시킨 1등공신이기도 했죠. 취임 후 실천됐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좀 엇갈립니다.

다만 이 연설에서만큼은 시대에 맞춰 아버지와는 조금 다른 경제전략을 갖고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국정농단 사태로 박 전 대통령과 전경련의 관계가 언급조차 불편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한경협 출범을 통해 이제는 건강한 의미에서 되짚어보는 일은 가능해지길 기대합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전경련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대표적인 곳이었습니다”라며 “투명한 기업 경영과 공정한 거래관행을 확립하고, 대기업이 보유한 풍부한 자원과 경험을 중소․벤처기업의 아이디어와 창의적으로 융합해서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주기 바랍니다”라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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