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개발사업 93%에 “동의”…환경영향평가 뭐하러 한 거야

주영재 기자 2023. 8. 2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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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가 발주해 입맛대로 결과 도출
제도 도입 30년 만에 취지 무색해져
환경부, ‘적극행정’이라며 평가 축소도

[주간경향]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된 후 사라진 줄 알았던 흰발농게가 2021년 5월 무렵 다시 발견됐다.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에서였다. 흰발농게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데 수컷의 집게다리 한쪽이 흰색으로 다른 한쪽에 비해 꽤 크다. 그 흰발이 탐방 행사에 나선 한 시민의 신발에 걸렸다. 수라갯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에 당시 상황이 담겨 있다.

<수라>의 황윤 감독은 “정말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갯벌이 마르면서 살아 있을 거라 전혀 생각을 못 했으니까요. 며칠 뒤 다시 가서 암컷과 수컷을 다 찍어서 증거자료로 제출했는데, 어이없게도 전략환경영향평가 본안에서 한 개체만 발견됐다고 적혀 있더군요. 저희가 눈으로 본 게 수만 개체인데. 수라갯벌에 40종 이상의 법정보호종이 발견됐는데도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공항건설을 강행하는 상황입니다. 법정보호종은 국가가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지정한 건데 이럴 거면 법정보호종은 왜 지정하며, 환경영향평가는 왜 하는 거죠?”

백원국 국토교통부 제2차관이 8월 17일 가덕도 신공항 건설사업 예정지를 방문해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환경단체 “법정보호종 누락 빈번”

환경영향평가가 올해로 시행 30년을 맞았다. 1993년 6월 제정된 환경영향평가법 제1조는 이 제도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 또는 사업을 수립·시행할 때에 해당 계획과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측·평가하고 환경보전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해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건강하고 쾌적한 국민생활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환경영향평가의 종류는 세 가지다. 기본계획, 상위계획 단계에서 진행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는 해당 계획의 적정성과 입지의 타당성을 검토해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저감방안을 마련하는 ‘환경영향평가’가 있다. 환경보전이 필요한 지역이나 난개발이 우려돼 계획적 개발이 필요한 지역에서 개발사업을 시행할 때 입지의 타당성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환경보전방안을 마련하는 ‘소규모환경영향평가’도 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제대로 된 조사와 평가, 예측이 필요한데 조사는 부실하고, 환경부는 환경보전보다 개발사업의 편의를 더 중시한다. 우원식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환경부 환경영향평가 협의 결과, 모두 3만8000여건 중 부동의는 전체의 1.2%인 457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93%인 3만5000여건은 동의로 결론났다.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환경영향평가가 형식적 절차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에서 ‘개발사업의 면죄부’가 됐다는 지적이다.

환경단체는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법정보호종을 누락하는 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번하다고 말한다. 제주 비자림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도 그렇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대천교차로~금백조 입구까지 2.94㎞ 구간을 왕복 4차선으로 확장하기 위해 2차선 도로 옆 삼나무들이 베어졌다. 2015년 제출된 이 사업의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에는 법정보호종이 한 종도 언급되지 않았다. 환경부는 조건부 동의했다. 하지만 2019년 시민·전문가들이 조사에 나서자 없다던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다수 발견됐다. 새매, 두견이, 긴꼬리딱새 등 법정보호종 조류 16종과 함께 멸종위기 곤충 2급인 애기뿔소똥구리가 공사구간에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으름난초 같은 멸종위기 식물도 발견됐다.

제주 제2공항의 경우 항공 수요가 과도하게 예측됐고, 조류 충돌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환경부도 2019년 국토부가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 본안에 대해 수요예측 타당성, 공항 규모 적정성을 보완하라며 두 번이나 반려했다. 반려 사유가 보완되지도 않았는데 환경부는 지난 3월 조건부 동의 결정을 내렸다. 전문검토기관의 부정적 검토의견은 공개하지 않았다.

새만금 신공항의 18배 가까운 사업비(14조2637억원)가 투입되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도 비슷한 상황이다. 경제성이 부족하고, 조류 충돌 가능성으로 입지가 적합하지 않음에도 2021년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키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다. 가덕도 산을 깎아 평평하게 만든 후 그 흙으로 깊이 40m의 바다를 메워 활주로를 만드는 사업이다. 2030년 부산 엑스포 개최 시점에 맞추기 위해 공기를 당초보다 6년이나 줄여 2029년 개항하기로 했다.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는 생태자연 1등급 지역이고,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과 맞닿아 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2등급인 삵과 솔개, 수달, 표범장지뱀이 살고 있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100년 이상 보존된 동백군락지도 가덕도에 있다. 인근에는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된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와 습지보호구역이 있다. 바다 역시 해양생태도 1등급인 지역으로 잘피, 산호, 상괭이가 서식한다. 자연 훼손이 막대할 텐데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이 제시한 저감방안은 모니터링, 살수차 운행, 저소음·저진동 공법, 오탁방지막 설치 등에 그친다. 지형변화·경관변화를 최소화하겠다는데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 박중록 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은 최근 녹색연합과의 인터뷰가 실린 자료집에서 “아직 결정나지도 않은 엑스포를 명분으로 내세울 뿐, 결국 토건회사에 이권을 챙겨주는 사업을 위한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제주 비자림로에 사는 긴꼬리딱새. 비자림로 시민모임 제공
제주 비자림로에 사는 애기뿔소똥구리. 비자림로 시민모임 제공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상황

환경영향평가가 편법으로 진행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던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영양 AWP 풍력발전소 등의 사업이 윤석열 정부 이후 재추진되고 있다.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부동의했던 흑산도 공항건설도 공항부지를 국립공원에서 빼버리는 방식으로 부활했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한 조사대행 업체가 부산 대저대교 건설 등에서 99건의 거짓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환경영향평가의 신뢰성을 높이려면 평가서의 거짓·부실 작성을 막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선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맡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임성희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장은 “현재는 원인자 부담이라는 명목에서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하고 있는데, 업체가 환경영향을 평가할 능력이 없어서 업체에 대행하고, 업체가 조사를 완료하면 사업자가 비용을 지급한다. 조사대행업체는 자연히 발주처인 사업자 입맛에 맞게 조사 결과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업자 입장에서 개발하려는 곳의 생태적 가치가 높지 않고, 사업으로 인한 환경영향이 낮다고 나와야 저감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도 그런 방향으로 작성된다. 비자림로처럼 법정보호종이 통째 누락되기도 한다. 조사대행업체가 사업자에 종속된 구조이고, 조사의 전문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풍토이다 보니 이 분야를 키우는 대학도, 전공하려는 이도 찾기 어렵다. 조사업체의 역량이 낮아지고, 소수 업체가 많은 업무를 맡다 보니 졸속·부실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탁제가 거론된다. 사업자는 비용만 댈 뿐 조사에서 손을 떼고, 환경영향평가 발주는 독립성이 있는 제3자가 맡는 구조다. 캐나다의 경우 환경영향평가청을 두고 있고, 미국은 인허가 권한을 가진 행정청이 환경영향평가의 책임을 부담한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환경영향평가는 현황을 조사하는 것과 그 현황에 따른 문제를 저감하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둘 다 개발자가 하다 보니 영향 저감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현황을 엉터리로 조사하게 된다. 현황 조사가 객관성을 가지려면 반드시 제3자가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영향평가 완화는 적극행정”

환경영향평가의 실효성을 높여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적극행정’이라는 이름으로 완화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8월 7일 환경부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축소, 전략영향평가 변경협의·재협의 대상자 축소, 멸종위기 야생동물 서식지 허가 전 이전을 골자로 한 3가지 안건을 적극행정위원회에서 심의·의결했다. 시행령 개정 사안이지만 적극행정 심의를 거쳐 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환경부 관계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개선안이 형평성과 명확성을 높이는 조치였다고 말한다. 기존에는 개발 면적이 동일함에도 추가로 승인받는 면적이 30% 이상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따라 평가대상이 달라졌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사업이 평가대상이 되는 등 형평성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고 봤다. 이에 따라 현재 소규모환경영향평가 대상은 개발사업 규모를 30% 이상 증가시킬 경우 재협의 대상이지만, 그 증가 규모를 누적 규모가 아니라 해당 추가 개발건에 한해 적용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예를 들어 생산관리지역의 경우 최소 평가대상 면적은 7500㎡이고, 그것의 30%는 2250㎡이다. 기존에는 최초 6000㎡로 승인받은 후 1차로 1450㎡, 2차로 1550㎡를 승인받았다고 하면 추가된 면적이 누적해 3000㎡로 2250㎡보다 크기 때문에 평가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제는 2차에서 1550㎡로 늘어나도, 추가 면적이 최소 평가대상 면적의 30%인 2250㎡보다 작아 평가대상이 아니다. 생산관리지역에서 평가대상이 되는 면적을 7500㎡에서 9750㎡까지 30% 확대한 효과를 본 셈이다.

소규모환경영향평가는 소규모로 조사한다는 뜻이 아니라 환경적 중요성이 큰 지역이라 작은 개발을 하더라도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했다는 의미다. 홍 교수는 “중요 지역이라 바로 옆에 멸종위기종이 서식할 수도 있는데 그 지역만 빼고 허가를 받고, 그후 30%를 확대하면 (그 서식처는) 그냥 내주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가령 사업자가 9000㎡를 개발하려고 조사하는데 특정 지역에서 멸종위기종 서식처가 있거나 문제 되는 지역이 있다면 그 지역을 빼고 작은 면적만 허가를 받는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다. 홍 교수는 “사업자에게는 쪼개기 개발의 특혜뿐만 아니라 조금 개발해놓고, 잘 안 되면 계속 현상 유지만 하다가 잘 되면 아무 제재 없이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4월 한화진 후보자를 환경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한국의 산업 및 사회 환경과의 융합과 조화까지 고려해 새로운 시각에서 다양한 환경정책을 수립”하라고 말했다. 돌려 말했지만, 환경규제 완화를 역할로 부여한 것이다. 실제 환경부는 환경규제 완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환경영향이 적은 사업의 경우 간이평가로 분류해 평가서 작성이나 의견수렴, 협의 절차 등을 생략하는 ‘개발사업 맞춤형 평가체계’ 도입을 추진 중이다. 환경영향이 큰지 적은지 조사도 하지 않고 누가 어떻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강원특별법 개정안으로 강원도지사에게 환경영향평가 권한을 넘겼듯이, 환경영향평가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이자희 한국환경회의 정책팀장은 “지역의 토건·토호 세력이 개발을 원하고, 지자체가 스스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수요 증대를 위해 사업자가 되는 상황에서 지자체에 환경영향평가 권한을 넘길 경우 사업자가 사업자를 평가하는 모양새가 된다”면서 “평가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지금 제도를 더 견고하게 해야 하는 시점에 고개를 들고 있는 간이평가 도입이나 평가 권한 이양 움직임은 심각한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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