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 지분 참여연대에 넘기겠다” 공소장으로 본 ‘형제의 난’ [법조 인싸]

이윤식 기자(leeyunsik@mk.co.kr) 2023. 8. 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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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 차남 조현문, 친형 ‘강요미수’ 재판
“조현준, 계열사간 부당지원 관여” 주장 후
‘배우자 외도 소문’ 효성이 냈다고 의심
본인 주식 고가에 팔러 형 협박한 혐의
‘로비스트’ 박수환 고용...11억원 지급
지난 21일 조현문 전 효성그룹 부사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강요미수 혐의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 지분을 제3자에게 처분할 것을 검토하겠다. 아주 강력한 시민단체 또는 펀드에 넘기겠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 경실련, 뉴스타파 등 이들이 주주가 되어서 비리를 아주 샅샅이 조사하게 할 것이다.” (조현문 공소장 中)

효성그룹 ‘형제의 난’에서 파생된 재판이 진행되면서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의 장남·차남 간의 갈등 상황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위의 발언은 2013년 9월 11일,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조석래의 둘째 아들)의 메시지’라며 조 전 부사장이 고용한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가 조현준 효성 회장(조석래의 첫째 아들)에게 전달한 발언 중 일부입니다.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에 자신이 갖고 있는 효성 지분을 넘겨서 이들에게 그룹 내 비리를 밝히도록 하겠다는 조현문 측의 입장, 듣는 측에서는 협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번주 ‘법조 인싸’에서는 조현문 전 부사장(이하 호칭 생략)의 공소장을 통해 효성 형제의 난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중요범죄조사부(부장검사 조광환)는 지난해 11월 4일 조현문을 강요미수 혐의로, 박수환을 공갈미수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앞으로 서술할 내용은 해당 공소장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2011년 친형 조현준 비리 의혹 제기...갈등의 시작
효성가 형제간 갈등의 시작은 조현문이 형 조현준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습니다. 조현문은 지난 2011년 8월 효성그룹 계열사 감사를 주도한 뒤 최고경영진회의에서 “조현준이 계열사간 부당지원에 관여돼 있다”는 취지로 감사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에 아버지 조석래가 “가족간의 분란을 일으킨다”며 조현문을 질책했고 이후 부자 간, 형제 간 갈등이 깊어졌다고 합니다.

조현문은 당시 그의 가족들 입장으로선 곤란해할 수 있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조현문은 2012년 4월 효성그룹이 경기도 이천에 골프장 사업을 하기 위해 설립한 두미종합개발에 대한 자신의 지분 49.2%를 A교회 등에 기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2013년 2월 아버지 조석래가 맡겨 놓은 (주)효성 경영권 방어용 주식 252만1000주 중 240만주를 시간외 대량매매를 통해 골드만삭스에 약 1300억원에 매각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조석래의 효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에 타격을 가하게 한 행동이라고 검찰은 판단했습니다.

갈등은 이렇게 쌓였습니다. 검찰이 파악한 갈등의 결정적 트리거는 ‘배우자 외도 소문’이었습니다. 2012년 말경 조현문의 배우자가 사내에서 외도를 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조현문은 친형 조현준이 효성그룹 홍보팀에 지시해 이 소문을 유포했다고 의심했다는 겁니다. 다만 공소장에는 이 외도설을 퍼뜨린 주체가 누구인지는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지난 2020년 11월 25일 조현준 효성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특정경제가중처벌법위반(배임 및 횡령) 공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해당 사건은 검찰과 조현준 측의 쌍방 상고로 인해 현재 대법원에서 상고심이 진행중이다. [사진=연합뉴스]
박수환과의 만남...‘효성 축복받으며 떠나기’는 대실패
조현문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박수환을 고용한 것도 이때입니다. ‘박수환 게이트’의 그 박수환 맞습니다(그는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등으로 지난 2018년 6월 징역2년 6개월과 추징금 21억3400만원이 확정됐습니다).

조현문은 2013년 4월경 박수환과 계약을 맺습니다. 박수환이 맡았던 일은 민형사소송, 협상, 언론홍보 등을 통해 형 조현준을 압박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 대가로 박수환은 무려 매달 2200만원씩을 받기로 합니다.

이렇게 뭉친 조현문과 박수환이 벌인 첫 프로젝트는 ‘효성의 축복 받으며 떠나는 조현문 만들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2013년 2월 서울 마포구 효성빌딩에서 조석래 측 노재봉 비서실장(현재 효성 계열사 ‘세빛섬’의 대표이사)을 만나 자신들이 만든 보도자료를 배포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들이 만든 보도자료는 “조현문이 효성그룹에서 근무하면서 중공업 부분의 수익 창출 및 효성에 크게 기여했다. 효성그룹은 조현문의 퇴사를 아타까워하면서 그의 미래에 축복을 기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조현문과 박수환은 단순히 요구 전달에서 그치지 않았다고 검찰은 판단했습니다. 이들이 노재봉에게 “효성에서 이 자료를 배포해주지 않으면 조현준의 비리 자료를 들고 서초동으로 갈 겁니다. 지금 이 가방 5개에 꽉 차는 비리자료를 들고 서초동으로 갈 겁니다”라고 겁을 줬다고 합니다.

노재봉으로부터 이 같은 내용을 전달받은 조석래는 이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박수환은 그 다음날에도 효성빌딩을 찾아가 노재봉에게 같은 취지로 요구를 했지만 조석래는 “보도자료 내용은 사실과 다르므로 효성그룹 차원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들은 ‘조현문 배우자 외도설’을 놓고도 조현준에게 따졌습니다. 박수환은 2013년 7월 16일경 서울 중구 모 호텔에서 조현준을 만나 “조현문의 배우자 관련 지라시는 효성이 조현문을 내쫓기 위해 만든 것이 분명하다”며 “정식으로 사과를 하지 않으면 효성은 무조건 서초동(검찰)에 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허위 소문을 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취지의 요구인 셈인데 조현준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효성 본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조현문 귀국으로 기소까지...10월 공판서 첫 증인신문
서두에서 소개한 ‘효성 지분 참여연대 지급’ 발언은 조현문의 주식을 고가에 팔기 위한 시도였다고 검찰은 파악했습니다.

효성그룹에는 부동산 관리 계열사 TAM(주), 동륭실업(주), (주)신동진이 있는데 이 세 회사 지분은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조석래의 삼남) 등 세 형제가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 조현문의 경우 동륭실업(주) 주식 80%와 TAM(주), (주)신동진 주식 10%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주식은 비상장 상태라 효성그룹이 사주지 않으면 사실상 판매가 어려웠습니다.

박수환은 조현문과 상의한 뒤 2013년 9월 1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조현준을 만나 협박성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박수환은 ‘조현문의 메시지’라며 이같이 전했습니다.

“이제 내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모든 비리를 밝히겠다.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꾸준히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무슨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이번에 똑똑히 밝히겠다.”

“내 지분을 제3자에게 처분할 것을 검토하겠다. 아주 강력한 시민단체 또는 펀드에 넘기겠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 뉴스타파 등 이들이 주주가 되어서 비리를 아주 샅샅이 조사하게 할 것이다.”

박수환은 이렇게 ‘조현문 메시지’를 전하고 “이참에 딱 정리하세요. 지분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외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조현준은 당시 해당 주식을 사주지 않았습니다.

현재 이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 심리로 진행중입니다. 조현문이 2016년 해외로 출국해 검찰이 기소중지 처리했다가 그가 2021년 12월 귀국하면서 수사가 재개돼 지난해 11월 기소가 이뤄져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21일에는 세번째 공판기일이 진행됐습니다.

아직까지는 증인 신문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음 공판기일인 10월 23일에야 첫 증인으로 노재봉이 출석할 예정입니다.

※‘법조 인싸’는 법조계의 ‘인싸’(를 꿈꾸는) 기자들이 법조계 인사들의 ‘인사이트’와 기자들의 관점을 전합니다. 주중 기사에서 팩트 전달에 집중했다면, 주말 코너에서는 법조계를 출입하며 쌓은 나름의 시각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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