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공주의 군사교육이 보여주는 스페인 왕실의 악전고투
왕실에 부정적인 여론 여전히 높아 국민 시선에 민감
(시사저널=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의 장녀인 레오노르 공주(17)가 영국 웨일스에서 고교 과정을 마친 후 3년간의 군사교육에 들어가면서 그가 다음 왕위를 물려받을 거란 관측이 유력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페인 왕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014년 부왕인 후안 카를로스 국왕(85)의 양위로 왕위에 오른 펠리페 6세(55)의 두 딸 중 맏딸인 레오노르 공주는 8월17일 스페인 동부 사라고사의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1년간의 교육에 들어갔다. 레오노르는 내년엔 해군사관학교에, 내후년엔 공군사관학교에 각각 입교해 1년씩 군사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이는 입헌군주 국가인 스페인에서 왕위 계승권자가 군사 경험을 쌓는 왕실 전통에 따른 것이다. 군주는 국가원수이자 형식적인 군 최고사령관이기 때문이다.
'남성 우선, 출산 순' 왕위 계승 원칙 고수
레오노르는 어려서부터 영국인 유모와 할머니인 소피아 왕비(현재 대비)로부터 영어를 익혀 스페인어와 영어를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며 중국어도 배웠다. 소피아 왕비는 그리스·덴마크 왕실 출신이다. 영국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인 필립공이 그리스·덴마크 왕실 출신이므로 스페인 왕가와 영국 왕가는 멀지 않은 친척이다.
레오노르는 왕실의 오랜 전통을 이으면서 현대적 전통도 새롭게 만들어나가고 있다. 2014년 아버지가 국왕으로 즉위하자 스페인 왕위 계승 순위 1위에게 부여되는 '아스투리아'라는 호칭을 받았다. 스페인은 모나코·영국처럼 '남성 우선, 출산 순' 왕위 계승 원칙을 고수한다. 남성 후계자가 있으면 남성이 우선적으로, 없으면 여성 후계자 중 태어난 순으로 왕위를 잇는 방식이다. 스웨덴 왕실 등은 남녀 구분 없이 태어난 순으로 왕위를 잇는다.
레오노르는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전통의 주인공도 됐다. 할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첫 손주이자 당시 왕세자였던 아버지 펠리페의 첫 딸인 레오노르의 탄생 소식이 단문메시지(SMS)를 통해 대중에 공표됐기 때문이다. 스페인 왕가의 출산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알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어 2007년 동생인 소피가 태어났다. 소피 공주는 2014년 왕위 계승 순위 2위에게 부여되는 '인판타'라는 칭호를 받았다. 1978년 스페인 헌법은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직계자손만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펠리페 6세 이후에는 스페인에서 여왕이 탄생할 전망이다.
부르본(프랑스어로 부르봉) 왕실에 속하는 스페인 왕가는 유럽에서 가장 고난을 많이 겪은 가문으로 평가된다. 19~20세기 전쟁·혁명·공화제·내전·독재 등으로 왕위를 잃고 왕실이 해외를 전전하는 고통을 당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시절 나라가 일시 프랑스군에 점령되면서 왕위에서 밀려났다. 1873~74년에는 제1차 스페인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일시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군사 쿠데타 끝에 복위했다. 20세기 들어서도 스페인 왕실은 1931년 제2공화정 수립으로 다시 해외로 쫓겨났다. 당시 폐위된 알폰소 13세가 로마에 망명하고 있을 때 태어난 왕자가 바로 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이다. 1936~39년 스페인 내란을 거쳐 집권한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은 후안 카를로스를 스페인으로 귀국시켜 육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에 위탁 교육을 시켰다.
후안 카를로스는 1969년 프랑코에 의해 명목상 국가원수로 지명됐으며, 1975년 프랑코가 숨지자 국왕에 즉위했다. 41년 만인 1977년 총선을 치르고 민주국가로 복귀한 스페인은 이듬해 입헌군주국임을 명시한 새 헌법을 반포했다. 왕실로서는 1931년 이후 47년 만에 안정적인 헌법상 지위를 회복한 셈이다.
스페인 부르본 왕실은 탄생부터 고난이었다. 1516~1700년 스페인은 물론 네덜란드·오스트리아·이탈리아 남부·중남미 제국까지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로스 2세가 후손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분란이 벌어졌다.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스페인 공주인 마리아 테레사와 결혼한 '스페인의 사위' 루이 14세(프랑스 왕)는 자신의 후손에게 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를 막기 위해 영국 등 다른 열강이 나서면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4년)이 벌어졌다. 이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영국 장군 존 처칠은 승진을 거듭해 말버러 공작까지 올랐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조상이다.
스페인 국민 절반 이상이 왕정 폐지에 찬성
온 유럽을 전란으로 뒤덮은 이 전쟁의 결과,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가 스페인 국왕에 오르되, 그와 그의 후손은 프랑스 왕위를 포기하기로 열강과 약속해야 했다. 국가 통합을 우려해서다. 유럽 지도도 크게 바뀌었다. 스페인 남부의 지브롤터가 영국령이 된 것도 이 전쟁의 결과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스페인령 네덜란드·밀라노 공국·나폴리 왕국을 합병했으며, 이탈리아의 사보이 공국이 시칠리아 왕국을 점령했다.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는 스페인 부르본 왕실로서는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2014년 심장 발작으로 입원하자 즉시 아들에게 양위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제대로 국왕으로서 공식 업무도 하지 못하면서 자리만 유지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을 피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다. 당시에는 왕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국민의 시위가 거셌다. 왕실의 부패와 도덕적 해이 때문이었다. 여론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지난해 스페인 여론조사에서도 왕정 폐지에 찬성하는 여론이 51.7%로 반수를 넘겼다.
주목할 점은 스페인의 국가문장에 카스티야·레온·아라곤·나바르 등 중세 기독교 왕국과 1492년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되찾은 그라나다 등 다섯 지역의 상징이 모두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왕실의 혈통을 상징하는 부르본 가문의 문장과 함께 합스부르크 가문이 오랫동안 차지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관도 함께 그려져 있다. 내부적으로는 지역주의가 강하고 대외적으로는 국제 정세에 따라 왕실의 운명이 오락가락했던 역사를 상징한다.
이는 스페인의 역사, 국가 정체성과 함께 왕실이 맡아야 할 국민 통합이라는 숙명적인 과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실 스페인은 복잡한 나라다. 단순한 지역주의 수준을 넘어선다. 아예 서로 다른 다섯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으로 이뤄졌다. 결국 좌우가 심각하게 대립하고 지역주의까지 강한 스페인에서 왕실은 정치적으로 한 편을 들지 않으면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로 존재 가치를 높일 수밖에 없다. 4800만 국민 통합의 상징 역할에 주력하며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게 위태로운 군주제를 유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전략인 셈이다. 아무리 왕실의 전통이라지만 17세 공주가 군사교육을 받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중세에 시작된 왕조를 21세기에 유지하는 일은 어떤 왕가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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