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 유치원' 자폐 아동 '별이' 준비만 1년…갈길 멀어"

황재하 2023. 8.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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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이지현 PD 인터뷰…"장애 아이 부모들에게 응원 되길"
'딩동댕 유치원'을 연출하는 EBS 이지현 PD [E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양=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작년 가을부터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별이'가 탄생하기까지 정확히 1년이 걸린 셈이죠."

EBS의 유아 교육용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에는 지난 18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별이가 딩동댕 유치원의 친구들과 처음 만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전학을 온 별이는 친구들의 인사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바람개비만 들여다봤다. 자동차 경적에 깜짝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모습도 보였다.

'딩동댕 유치원'을 연출하는 이지현 PD는 자폐 스펙트럼 어린이를 등장시키기 위해 1년 동안 공부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회고했다.

최근 EBS 본사에서 만난 이 PD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장애가 굉장히 범위가 넓기 때문에 별이를 어떤 아이로 설정할지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 PD는 "사실 아직도 많이 어렵다"며 "정신의학과 교수 자문을 거쳐 일단 아이템을 정하고, 촬영 1∼2개월 전 특수학교 교장인 자문 선생님에게 대본을 검수받는다"고 설명했다.

별이의 행동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비하해서도, 미화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이 PD는 "무엇보다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저러지 않는데'라고 생각하게 될까 가장 걱정이었다"며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딩동댕 유치원' 별이 [E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에서 유아 교육 프로그램에 발달장애인 어린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딩동댕 유치원'이 처음이다. 그만큼 부담도 크고 어려움도 많았을 일을 시도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두 아이의 엄마인 이 PD는 초등학생인 아들과 대화하던 중 장애를 대하는 올바른 인식을 교육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이 PD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경계성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는데, 하루는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그 애가 이유 없이 나를 때린다'며 그 이유를 물어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아이들이 휠체어 타는 사람을 보면 '나도 저거 타고 싶어'라고 말하는 일이 있다"며 "아이들한테 잘못이 있는 게 아니고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PD의 경력도 별이가 탄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 PD는 '딩동댕 유치원'을 맡기 전 '선생님이 달라졌어요'(2012), '교실이 달라졌어요'(2013), '다큐프라임-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2014) 등 여러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왔다.

그는 "교육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현장을 취재하면서 다양한 가정과 배경의 아이들과 그들이 겪는 문제들을 보면서 쌓인 경험이 '딩동댕 유치원'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PD는 또 "제게는 방송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는 '병'이 있는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딩동댕 유치원' [E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장기간의 공부와 고민을 거쳐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탄생한 덕분인지 별이가 처음 등장한 회차는 많은 시청자에게 호평받았다.

방송 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스스로를 자폐 아이를 둔 부모라고 소개한 시청자들이 제작진에 감사의 뜻을 드러내는 글을 잇달아 올렸다.

이들은 '소중한 발걸음을 떼어주셔서 감사하다', '아이와 함께 별이가 나오는 방송을 보면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소감을 남겼다.

이 PD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지인이 있는데 '내가 죽을 때 아이도 같이 죽어야 하나' 생각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사명감과 소명 의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또 "별이의 등장이 자폐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돼 드린 것 같아서 같은 부모로서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딩동댕 유치원'을 연출하는 EBS 이지현 PD [E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PD가 연출을 맡은 뒤 '딩동댕 유치원'에는 별이뿐 아니라 다양한 어린이 캐릭터가 등장해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지체 장애 어린이 '하늘이', 다문화 가정의 혼혈 어린이 '마리' 등이다.

지난 24일 방송에는 무릎 아래로 두 다리가 없는 '로봇 다리'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김세진 씨가 출연해 지체 장애 어린이들에게 용기를 줬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 PD는 "일단은 제작진이 별이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PD는 "지체 장애가 있는 하늘이 캐릭터를 제작진이 충분히 이해하기까지 반년 정도가 걸렸다"며 "별이는 더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별이의 등장으로 첫발을 뗐을 뿐, 장애에 대한 아이들의 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직 멀었어요. 한번 방송으로 바뀌는 건 새 발의 피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교육하려면 적어도 한 학기, 길게는 몇 년 동안 계속 방송해야 할 것 같아요."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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