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스토킹 살인' 피해자 유족 "가해자 처벌만 기다리며 산다"
스토킹 시달리다 집 앞서 흉기 찔려
어머니 중상·6세 딸은 아빠 집에
"가해자 가족 사과 한마디 없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선고돼야"
가해자 살인 기소...내달 19일 공판
"동생이 살해당하고 우리 가족은 완전히 해체됐어요. 그런데 가해자 가족은 여행도 다니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의 사촌언니
지난달 17일 발생한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 유족인 김이선(가명)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김씨는 피해자의 사촌언니다. 사건 이후 유족의 삶은 산산이 부서졌다. 또 다른 삶이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족들이 목소리를 냈다. 김씨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계속되는 스토킹 살인을 막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킹 범죄 신고건수는 2만9,565건이다. 경찰에 붙잡힌 스토킹 피의자는 1만37명이다. 매일 80여 건의 스토킹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뿔뿔이 흩어진 유족..."가해자 가족 사과 한마디 없었다"
비극은 지난달 17일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났다. 인천 남동구의 한 아파트에 어머니와 딸(6)과 살던 30대 여성 A씨는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마자 A씨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전 남자친구 B(30대)씨가 휘두른 칼에 찔려 숨졌다. "살려달라"는 딸의 외마디 비명에 뛰쳐나가 이를 막았던 A씨의 어머니도 양팔과 손을 심하게 다쳤다. B씨는 범행 후 자해했다.
사건 이후 남은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A씨 어머니는 딸을 잃은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엄마를 잃은 아이는 따로 살던 아빠와 살게 됐다. 원통한 죽음에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김씨는 "동생 장례식장이 있던 병원에 자해한 가해자가 입원해 있었는데, 가해자 가족은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며 "아직도 사과 한마디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가해자 가족 중 한 명은 여행을 다니며 사건 전과 똑같은 편안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며 "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이렇게까지 속상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도움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씨는 "작은어머니(A씨 어머니)가 거주할 곳을 찾기 위해 10곳이 넘는 정부 기관에 문의해 겨우 한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여전히 대기 상태다. A씨의 어머니는 친척 집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이 약속한 심리치료도 받지 못했다. 김씨는 "심리치료는 한 곳에서 장기간 받아야 하는데 임시거주지에 있어 치료를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리 가족은 집도 잃고, 아무것도 못한 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을지 그것 하나만 기다리며 힘들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동생 지키지 못한 법... 가해자만 보호"
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A씨와 B씨는 지난해 연인이 됐지만 B씨의 지나친 집착에 A씨가 지속적으로 이별을 요구했다. 하지만 B씨는 지난 2월 헤어지자는 말에 A씨를 폭행했고, 이후에도 집 앞에서 기다리다 출근길 내내 뒤따라 오는 등 주변을 맴돌며 A씨를 스토킹했다. B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A씨의 사진을 계속 올리기도 했다. 김씨는 "동생은 스토킹을 당하는 동안 밥도 잘 못 먹어서 살이 10㎏이나 빠졌었다"고 전했다.
경찰 신고 후에도 B씨가 A씨 집 주변을 배회하자 인천지법은 지난 6월 B씨에게 접근금지와 휴대전화 등 연락 금지를 명령했다. 법원 명령 후 B씨는 한 달간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의 감시가 느슨해졌다. 경찰은 A씨에게 비상호출용 스마트워치를 반납하라고 했다. A씨는 스마트워치 반납 나흘 후 살해됐다. 법원의 접근 금지 명령도, 경찰의 신변 보호도 그를 지키지 못했다.
법은 오히려 가해자 편이었다. 김씨는 "B씨는 철저히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사건 초기 경찰에 B씨의 범행 직전 한 달간의 잠적 기간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었다. B씨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메시지 등에서 보복살인을 계획한 단서 등 형량을 늘릴 수 있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찰은 "범행 전 행적 조사는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김씨는 전했다.
잔혹한 범행에도 B의 신상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김씨는 "동생과 B씨는 같은 직장 동료였는데, 경찰은 동료들에 대한 탐문 수사도 하지 않았고, B씨의 범죄가 잔인했음에도 신상공개 여부를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 측은 계속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가해자만 보호받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낮은 형량"
B씨가 제대로 죗값을 치를지도 알 수 없다. 유족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B씨가 낮은 형량을 선고받는 것이다. 피해자의 딸이 받을 충격이 걱정돼 언론에 사건을 공개하지 않으려던 당초 생각을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동생 사망 후 그간의 스토킹 범죄를 샅샅이 조사했다는 김씨는 "지난해 이전에는 스토킹 살인범 형량이 최대 15년이었다"며 "지난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저희가 자문한 한 변호사는 B씨가 20년 정도 선고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그러면 B씨는 50대에 출소하는 것이고 조카는 스물여섯 살밖에 안 된다"며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그 정도 형량만 받고 나오게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B씨가 초범이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형량이 낮춰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올해 6월까지 스토킹 범죄 피고인이 1심에서 징역이나 금고를 선고받은 비율은 18%로 전체 범죄(27%)보다 훨씬 낮았다. 김씨는 “제발 초범이라고, 반성하고 있다고 형량을 낮추지 않기를 바란다"며 “무조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앞으로 이런 범죄를 막기위해서도 법원은 스토킹 살인에 엄중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살인과 스토킹 범죄 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B씨에 대한 첫 공판은 다음 달 19일 인천지법에서 열린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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