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의 시급, 어딜 가도 1만 원이더군요”…어느 대기업 임원의 퇴직일기[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2023. 8.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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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아 전 신세계그룹 상무
“올라가는 데 30년, 내려올 땐 3초”
“회사는 언젠가 떠나야 할 곳”
“퇴직 후 내 모습, 상상이라도 해보세요”
직장인 이력, 사회에선 일회용 소모품
퇴직자 시급은 1만 원이 상식
퇴직자들의 롤모델 아쉬워

대기업 임원 인사는 대체로 금요일 오후에 있다. ‘임원=임시직원’이란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파리 목숨 신세인 임원들. 이들에게 퇴직 통보를 할 때는 더욱 금요일이 유용하다. 주말 새 그들의 흔적을 지워내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정경아 전 신세계그룹 상무(54)가 30년 직장생활을 끝낸 2019년 10월 그날도 금요일 오후였다.

그날, 한 회의실에 불러모아진 10여 명의 임원들을 둘러보며 대표가 무거운 입을 뗐다. “여기 계신 분들은 올해가 마지막인 분들입니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그리고는 한 명 한 명 악수를 청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던가요. 30년간 아등바등 일하며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딱 3초 걸리더군요.”

퇴직 4년차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정경아 전 상무. 준비되지 못한 퇴직 이후 힘들었던 과정을 돌이켜보며 옛 동료와 후배들에게 회사보다 자신을 삶의 중심에 놓으라고 강조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마트 시절 야유회에서. 회사 없는 인생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에 올인하는 나날이었다. 정경아 씨 제공
사내 체육대회에서 팔씨름에 도전했다. 후배들이 촬영해 사내 소식지에 올린 사진을 재촬영했다. 정경아 씨 제공

● 만 50세,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다

유튜브 알고리즘 덕에 정경아 전 상무를 알게 됐다. 앳돼 보이는 여성이 퇴직 체험을 얘기하길래 아나운서인 줄 알았는데, 듣다 보니 본인 얘기였다. 그가 최근 낸 책 ‘어느 대기업 임원의 퇴직일기’(RHK)도 언급됐다. 퇴직 4년차로 접어들었다는 정 씨를 17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금요일 퇴직 통보를 받고도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려 했다면서요.

“사실 아무도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명시적으로 얘기해 주지 않았어요. 분위기로 제가 알아들었어야 했는데, 꿈을 꾼 것 같았거든요. ‘이제 출근할 필요 없잖아’라는 남편의 말에 들었던 핸드백을 놓고 주저앉았지요.”

책은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 그가 써온 퇴직 관련 글들이 기반이 됐다. 퇴직의 당혹감과 이후 겪은 심경 변화, 우여곡절을 거치며 사회에서 홀로서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들이 담겼다.

너무 솔직한 묘사에 “명색이 대기업 임원이었는데 이미지 생각은 안 하느냐”는 반응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말 듣고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체면 따지며 쉬쉬하다 보니 퇴직자들의 삶은 세상에 없는 것처럼 여겨지잖아요. 퇴직의 실상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해요.”

-50대 초반쯤 대기업 임원이 됐다가 2년 만에 나온(잘린) 분들을 여럿 만나봤는데 다들 충격을 삭이지 못해 힘들어하시더군요.

“멘털이 털린다고 할까. 평생을 바쳐온 회사에 버려진 느낌? 배신감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짝사랑하다가 잘린 느낌 같은 거죠. 회사는 무심한데. 그게 회사의 속성이에요.”

2017년 말 48세에 상무보로 승진했을 때만 해도 그해 신세계그룹 수십명 승진인사에서 유일한 여성임원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임원 생활은 만 2년으로 끝났다.

임원 1년차의 실적부진이 치명적이었는데, 때마침 환경 이슈가 터져 그가 맡은 상품 분야가 직격탄을 맞았다. 2년차는 소위 ‘퇴직 전 마지막 관문’이라 불리던 자리에 발령받았다.

회사에 올인하다시피 살아온 그에게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찾아왔다.

● “최대 복수는 퇴직 전보다 더 잘사는 것”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 대부분이 정 씨처럼 ‘현타’가 오는 순간을 만난다. 회사와 자신의 관계가 어느덧 변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회사는 좋은 신입사원을 뽑고 이들을 잘 키워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엔 이들을 부담스러워한다. 잘나가던 직장인이 순식간에 퇴물 취급받게 되는 때다.

-덕분에 퇴직준비할 시간을 얻은 셈이네요. 그런데 ‘퇴직의 관문’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대외 영업인데, 회사의 신규 수입원을 찾는 일이에요. 돈 되는 건 뭐든지 찾아서 하는 거죠. 그 1년 간은 사람들을 거의 안 만났어요. 사실 만나자는 사람도 없었지요. 명색은 임원이지만 사내 모든 관계에서 배제되는 느낌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주말이나 밤 시간을 풀로 활용해 사이버 대학 강의도 듣고 민간 자격증도 5개쯤 땄습니다.

그 대신 회사 일은 더 열심히 했어요.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고 혹시나 여기서 성과를 내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을까라는 미련도 없지 않았지요.”

-그동안 쌓은 공이 있는데, 1년 삐끗했다고 내치는 건 회사가 너무한 것 아닌가요.

“시대적 상황도 제 몫이니까, 회사에 대한 서운함은 전혀 없습니다. 부단히 새로워져야 하는 게 회사의 생리죠. 온라인에 밀리고 있는 유통 분야는 특히 그렇습니다.”

공기처럼 자신을 감싸주던 회사를 떠난다는 것,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구멍이 뻥뻥 뚫리는 경험이었다.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 대출 연장이 안 된다는 통보가 왔고 건강검진, 보험 등 생활 전반에 문제가 생겼다.

“가볍게 떠나는 주말여행도 사전조사를 하고 계획을 세우는데, 퇴직 후 수 십 년 남은 인생 여정을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씨는 첫 직장 이랜드에서 10년간 의상디자인을 했다. 신세계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이마트에서 20년간 일했다. 중도입사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악착같이 일했다고 회고한다. 사진은 1993년 이랜드 시절 사원연수회에서. 정경아 씨 제공

● 회사 안은 정글, 회사 밖은 전쟁터

퇴직 뒤 많은 일이 있었다. 2021년 첫 책 ‘독한 언니의 직장생활백서’를 냈고 지난 6월 두번째 책인 ‘어느 대기업 임원의 퇴직일기’를 펴냈다. 놀라운 것은 퇴직한 뒤에 첫 책을 썼지만 책 내용에 퇴직 얘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본인은 직장생활 가이드 개념이라 그렇다고 설명하지만, 그만큼 퇴직의 충격이 컸기 때문은 아닐까.

5개월 정도 서울 강남의 면접학원에 상담실장으로 취직해 비품관리, 화장실 청소를 도맡기도 했다. 대가는 시급 1만 원에 점심으로는 김밥 한줄이 제공됐다.

-상담실장이 왜 청소하고 쓰레기 버리는 일까지 하지요?

“회사 나오면 어디나 그래요.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를 선택할 뿐, 다른 여지는 없어요. 이게 세상이에요. 급여도 무조건 시간당 1만 원이에요. 어딜 가도 1만 원. 희한한 일이죠. 퇴직자들은 다 알아요. 회사 나갔을 때 나의 가치는 시간당 1만 원이라는 것을. 직장 문을 딱 나오면 정말 무엇이든지 상상 그 이상이더라구요.”

그 와중에 힘든 사람을 등치는 자들은 꼭 있다.

어느날 헤드헌팅 업체에서 00기업 00자리에 유력 후보로 올랐다며 연락하더니 이력서를 넘겨주자 소식을 끊었다. 클라이언트에게 섭외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용됐다는 걸 깨달았다. 한때 의류유통업 관련 스타트업에 오픈 멤버로 참여해 땀을 흘렸지만 경영이 어려워지자 순식간에 해고되기도 했다.

“사회에서는 이력이 있는 직장인을 일회용 소모품으로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유통업계에 있던 사람은 납품처를 찾는 분들이 판로를 뚫는 역할을 기대하며 접근하죠. 대부분 단물만 빨리고 버려집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재취업한 퇴직자도 1,2년이면 회사를 떠나야 하죠.”

● “회사 없이도 내가 성장할 수 있구나”

이런 그에게 보람을 안겨준 것은 구청에서 주관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취약계층 청소년에게 1대 1로 진로지도를 해주는 멘토링 사업이었는데 처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던 중학생 민준이가 점차 마음을 열며 성장하는 모습이 큰 위로가 됐다.

멘토링 기간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민준에게서 문자 하나가 왔다. ‘선생님 저예요. 감사합니다!’ 달력을 보니 스승의 날.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전까지 저를 성장시키는 동력은 회사가 유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욱 회사에 매달렸고요. 이런 생각이 민준이를 통해 깨졌어요.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이 제게 뿌듯함과 위로를 줬고 저 스스로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느끼게 됐어요.”

정씨는 한 달 여 전부터 유튜브 채널 운영에 빠졌다. 주로 집이나 남산도서관에서 혼자 작업한다고 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우리 모두에게 세상의 중심은 자신

-드디어 회사없는 생활에 적응하는 거군요.

“퇴직후 제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회사가 아니라 내 인생이 삶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점이에요. 지금도 후배나 동료들, 회사에 미친 듯이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요. 회사 일은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지만 회사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고. 회사를 나온 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세상의 중심은 바로 당신이란 걸 잊지 말라고.”

그래서 그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직장 생활과 퇴직 관련 전문가로서 관계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글쓰기, 강의, 콘텐츠 만들기 등 방식은 여러 가지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책을 내고 관련 강의를 준비하는 데 이어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2개 개설했다. 이 중 퇴직 경험자들의 직접 인터뷰를 담은 채널 ‘퇴직학교’는 개설 한 달여 만에 구독자가 4000명을 넘어섰다.

2005 년경 이마트 분당점에서 팀장으로 일하던 시절. 그 뒤 2011년 목동점 점장, 2014년 양재점 점장을 맡아 좋은 성과를 이뤄냈다. 정경아 씨 제공

● ‘잘려서’, ‘잘릴 예정이라서’… 공장서 마주치는 대기업 임원들

그는 요즘 유튜브 촬영을 위해 많은 퇴직자를 만나고 있다.

-회사 밖에서 만난 퇴직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던가요.

“임원을 했던 분이건 아닌 분이건 제대로 자리잡은 분을 만나기 쉽지 않아요. 모두 힘들죠. 쿠팡같은 배달일, 공사판, 단순 아르바이트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분들이 오히려 깨어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인터뷰한 대기업 임원 출신 퇴직자 얘기가 재미있었어요. 잘리자마자 어느 기업 공장에 일하러 갔는데 거기서 다른 기업의 현직 임원을 마주쳤대요. ‘왜 왔느냐’고 물으니 ‘곧 잘릴 예정이라 어떤 직종이 있는지 연습삼아 다니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퇴직자건 재직자건 이런 현실 얘기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각자 뿔뿔이 흩어져 아무 정보도 없이 퇴직해 시간만 흘려보내며 회한을 쌓는 것보다 말이죠.”

퇴직한 지 3년 넘었지만 회사다닐 때의 루틴을 유지하려 애쓴다. 오전 8시부터는 어디에 있건 업무를 시작한다. 노트북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건 그의 일터가 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유튜브 채널을 위해 맨처음 인터뷰했던 중견기업 전 대표 얘기는 여러모로 가슴아팠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꽤 알려진 백화점체인을 만들고 10년간 사장을 맡았던 그는 파견근로법 위반으로 회사가 곤경에 처하자 그 책임을 지고 사직했다.

하지만 이 사건탓에 3년간 송사를 거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으면서 도합 5년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는데 이런 현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의 인터뷰 중에는 이런 씁쓸한 에피소드도 나온다.

“현역시절 유난히 잘 따르던 후배가 부친상을 당했다. 도리라고 생각해 부산까지 아내와 함께 내려갔는데, 문상을 한 뒤 1시간을 앉아있어도 후배가 나와보지를 않더라. 사장 시절 현장 순시가면 ‘그만 들어가서 볼 일 보라’고 아무리 권해도 끝까지 남아 수행하던 친구였는데…. 그대로 장례식장을 나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아내에게 ‘이제 조문같은 건 가지 말아야겠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런 얘기가 계속 알려져야 퇴직자들은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재직자들은 정신차릴 수 있다’고 말한다.

● 퇴직자 세계에도 롤 모델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 사회가 시니어세대나 나이에 대해 굉장히 박한 대우를 하지요.

“그래도 늘어나는 머릿수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요즘 시니어들은 신인류라고 생각해요. 이들이 ‘같이 살자, 내 삶도 가치가 있다. 너희도 늙는다’ 정도는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죠.”

그는 3년 후에 ‘대기업 임원의 퇴직 일기 3년 후’를 쓸 예정이다. 지금까지 직장물을 빼는 데 3년 걸렸고 다시 3년 뒤엔 어디쯤 가 있을지, 그걸 확인해야 이 퇴직 장정이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될 거라는 생각이다.

“퇴직자 세계에도 롤모델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도 그랬지만 퇴직자들에게 가장 절망적인 게 보고 따라갈 이정표가 없다는 거예요.

퇴직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많은 퇴직자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 텐데, 그게 참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길은 없지만,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그냥 뚜벅뚜벅 가보려 합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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