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학무대 이 선수 주목하라, 연세대 강지훈

이재범 2023. 8. 27. 06: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점프볼=이재범 기자] 남녀 프로농구는 오프시즌이다. 이 기간에는 아마추어 팀들이 열전을 펼친다. 그 가운데 프로 진출을 바라보며 온 힘을 쏟는 대학 선수들에게 관심이 더 쏠린다. 대학무대에서 눈에 띄는 선수들을 소개한다. 이 자리에서는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현장을 방문한 스카우트의 시선을 사로잡은 연세대 강지훈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자.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보완했으며 인터뷰는 7월 중순 진행됐습니다.

어릴 때 신장 2m
중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어릴 때 우지원 농구교실에서 클럽농구를 했다. 중학교 때 동네 아이들과 야구를 했다. 학교에서 동아리 농구만 했다. 거기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예전부터 농구를 좋아했지만, 다른 걸 하려고 했는데 동아리 농구를 하면서 재미를 느꼈다. 밤에 길거리에서도 농구를 했었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키가 많이 컸다. 그것도 (농구를 시작한) 없지 않은 요인이었다. 유급하기 전에 193~4cm였는데 유급 후 196~7cm였고, 삼일상고 1학년 때 200m였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181~2cm에서 193cm가 되었다. 키가 크면 무릎이 아프고 그렇다는데 그런 건 없었다. 성장통은 있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주위에서 볼 때마다 키가 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 농구를 해도 친구들이 함부로 골밑에 들어오지 못했고, 슛을 던지는 걸 좋아해서 공격할 때 슛을 많이 던졌다.

농구를 안 한다고 했었다. 힘들어서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와 같이 우지원 농구교실에서 농구를 했던 우상현(경희대)이 있는데 농구선수의 길로 들어서면서 삼일중에 진학했다. 나는 일반중으로 진학했다. 학교 동아리 반 대항전 대회를 했는데 대회를 준비하면서 친구들과 우애도 쌓고, 친한 친구들은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서 (나에게도) 농구선수 하면 어떠냐고 제안도 했다.

초등학교 때 높이뛰기를 했었는데 용인시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지금도 연락하는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 농구를 좋아하시고, 부모님도 아신다. 키가 크니 농구를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실패를 하더라도 해보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선택해도 된다고 하셨다. 공군사관학교를 5년 재수 끝에 갔지만 너무 힘들어서 교육대에 진학한 선생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주셨다.

양손과 스텝 훈련
(농구를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선수 생활을 해 본 적도 없고, 길거리 농구만 하다가 선수들이 하는 체계적인 농구를 배우니까 아는 것도, 기본기도 없었다. 많이 힘들었다. 체력도 안 되었다. 1년 유급하면서 아버지와 훈련도 하고, 몸이 엄청 말라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잠시 했었다. 아버지는 슛 폼부터 잡아주시고, 기본적인 발 빼는 피벗, 골밑에서 잡는 스텝, 언더슛 등을 같은 포지션이라서 알려주셨다. 오충렬 코치님께는 스크린을 거는 것부터 빠지는 방법 등 2대2 플레이를 많이 배웠다.

왼손잡이신 어머니께서 왼손을 잘 써야 한다고 하셨다. 골밑슛도 두 손으로 쐈는데 한 손으로 던지게 되더라. 처음에는 안 되었는데 왼손으로 쏘면 더 장점이 되고, 더 좋다고 하셔서 왼손 연습도 더 했다. 그러니까 감도 생기고, 왼쪽에서는 왼쪽, 오른쪽에서 오른손을 쓰게 된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원투 스텝, 레이업의 러닝 스텝을 위주로 훈련했고, 농구를 많이 본다. 일본 B리그도 찾아본다. 농구는 계속 바뀌니까 스텝을 많이 보게 된다. 빅맨뿐 아니라 앞선 가드의 스텝을 봤다. 아버지도 스텝을 많이 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라고 하셔서 다양한 스텝을 연습했다. 빅맨이 외곽에서 볼을 잡을 때 동시에 잡는 스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으로든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도 농구를 엄청 많이 봤다. 국가대표 평가전도 많이 찾아보고, NBA도, 국내리그도, B리그도 본다.

삼일상고 진학 이유
(호계중의) 연계학교는 안양고인데 삼일상고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부모님과 상의를 했는데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장래성을 봤을 때 삼일상고를 가는 게 맞다고 하셨다.

코로나19
고등학교 1학년 때 코로나19가 발생했다. 대만으로 동계훈련을 갔는데 대만 대학과 연습경기도 했다. 대만은 고등학교가 엄청 많아서 디비전1과 2도 있다. 우리가 잘 하고 왔다. 디비전1 우승권 팀에게도 이겼다. 대학과도 좋은 경기를 했다. 그 해 대회를 하면 엄청 기대가 컸다. 중학교 때 우승을 못 했다. 한 번 해볼 수 있을 거 같았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코로나가 터졌다. 운동도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망연자실했다.

첫 대회가 취소되었을 때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 앞 헬스장 같은 곳에 가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체육관에서 시간을 잘 맞춰서 개인운동을 했다. 어머님께서 슛도 잡아주시는 등 개인운동을 많이 했다. 센터였는데 팀 내에서 빅맨이 나와 임동언(중앙대) 형 밖에 없어서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골밑슛 스텝을 많이 연습했다.

이중원 코치님도 삼일상고에 계실 때 정말 많이 알려주셨다. 이중원 선생님께 많이 혼났다. 엄청 사람이 좋으신 분이셔서 잘 풀어주셨다. 강조하시는 게 메이드 능력이었다. 슛을 쏠 때 (상대 선수가) 손을 들고 있으면 못 넣는 경향이 있었다. 따로 개인운동을 할 때 직접 몸싸움이나 수비 등으로 1대1로 해주셔서 내가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코치님께서 자발적으로 해주셔서 감사하다.

종별 대회 MVP
많이 뜻 깊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종별 대회 우승 사실을 몰랐다. (용산고와) 결승전 전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연맹회장기에서 용산고에게 크게 지고(70-89), 나는 다쳤었다. 아버지께 결승에서 하던 대로 하면 잘 할 수 있겠지라고 말씀 드리니까 잘 할 거라며 고등학교 때 부산서 열린 종별 대회에서 MVP를 받았다고 하셨다. 그렇구나 했는데 (용산고와) 결승에서 (82-80으로) 이기고 우승해서 인터뷰 때 그 이야기를 기자분에게 했더니 부자동반 MVP라고 기사가 났다.

별명 갱
성이 강인데 힙합에서 갱갱 그런 게 있었다. 삼일상고 시절 성이 강이니까 누가 갱으로 부르니까 모두 괜찮다며 갱으로 불렀다. (삼일상고 동기인) 이주영이 함께 연세대로 올라와서 갱이라고 부르고, 형들도 괜찮다며 역시 갱으로 불러 그렇게 별명이 되었다. 주영이와 같이 연세대에 안 왔으면 갱이 아닌 다른 별명이 생겼을 거 같다. 1학년 때부터 있던 삼일상고 선수들은 갱이라고 부른다.

등 번호 13번
중학교 때 13번을 하고 싶었는데 12번을 하고, 고등학교부터 13번을 썼다. 13번이 의미가 있다. 아버지처럼 어머니(이유진)도 농구 선수를 하셨다. 어머니는 9번, 아버지가 자주 쓰신 번호는 4번이었다. 두 번호를 더한 거다. 부모님보다 더 잘 하는 선수가 되자는 의미도 담았다. 그래서 그 번호를 하고 싶었다. 예전에 좋아하던 롤 모델인 전희철 SK 감독님도 13번이었다. 예전 영상을 찾아보는데 전희철 감독님의 페이드웨이가 다 들어가고 너무 멋졌다.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하면서 13번으로 정했다.

출전 시간 적었던 2021년 U19 대표팀
키가 큰 선수(여준석, 김보배, 이규태, 신주영, 이도윤)끼리 운동을 한다는 게 정말 큰 경험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많이 있어도 1,2명이다. 그런 선수들과 높이 싸움을 할 수 있었다. 라트비아에 가서 여준석 형과 방을 썼다. 그 형의 플레이를 보면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다. 내 미래의 방향도 봤다. 세계가 아니라 국내나 아시아로 봐도 되는데 빅맨이 치고 와서 코스트 투 코스트나 미드레인지 게임을 하거나 3점슛을 던지는데 준석이 형의 플레이를 보고 통하는구나 생각했다.

그 당시 대회가 끝난 뒤 욕심도 났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지 모르지만, 솔직히 출전시간(5경기 5.7분 2.2점 1.4리바운드 83.3%(5/6))도 적어서 많이 못 뛰었다. 세계나 아시아 무대에서 더 성장해서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들었다. 준석이 형이 아시아권에서 분명 통할 거라고 해줘서 자신감을 얻었다. 상대로 만난 팀들이 강했는데 현 NBA리거가 있는 팀도 있어서 많이 보고 배웠다. 외곽슛에 관한 것도 생각을 많이 해서 외곽 능력을 장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상 선수 많았던 첫 대학농구리그
대회 방식이 고등학교 때와 달라서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다. 관중이 많은 것도 적응이 안 되었다. 관중이 많아서 압박감도 있었다. 고등학교는 한 경기를 하면 길어야 하루 쉬는데 대학은 한 경기 후 많이 쉬니까 적응이 안 되었다. MBC배는 방식이 또 달라서 MBC배가 좋지 않았나 싶다. (고교와 대학에서) 힘과 기술의 차이를 느꼈다. 앞선은 아니라서 앞선의 마음보다 뒷선의 마음이다.

팀마다 빅맨이 많아서 나오는 팀의 스타일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분석도 해야 한다. 이 선수는 뭘 좋아하는지 분석하는 것도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는 빅맨 1~2명이라서 그들만 상대하면 된다. 특히 동국대가 빅맨이 많아서 동국대와 경기 영상을 많이 봤다. 신입생은 모르지만, 이대균 형, 지용현 형은 뭘 좋아하는지 영상을 많이 봤다.

골밑에서 안일한 플레이 지적
골밑 플레이가 부족한 건 인정한다. 고등학교 때 포스트업보다 2대2 플레이로 득점을 하는 경향이 짙었다. 안 해봤던 플레이라서 안일했던 거 같다. 포스트업을 안 해봐서 그랬던 거 같다. 고3때 포스트업을 조금 했었다. 픽 플레이 비중이 더 높았다. 김민구 선생님이 고3때 오셔서 포스트 플레이를 알려주신 게 있다. 어떻게 밀고 들어가고, 자리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등 나에게는 앞으로 더 필요한 부분이었다.

빅맨들이 많아서 MBC배에서는 3명이 돌아가면서 뛰었다. 세 명이 1대1을 붙여서 하라고 하셨다. 포스트업을 시키셨다. 훅슛 등을 연습하다가, 페이스업 후 포스트업을 하라고 하셨다. 콘을 놓고 연습을 많이 시키셨다.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다. 김건우 형도 높이가 있고, 홍상민은 힘이 있어서 두 선수를 막으면서 어떻게 힘 좋은 형들을 막을 수 있는지 배우기도 했다. 그걸 하면서 기술도 익혔다. 공격을 하는 건 나중이고, 자리를 잡는 게 먼저라서 자리 잡는 걸 우선 연습해야 한다.

3점슛
3점슛은 대학리그 때 몇 번 던졌다. 이중원 선생님께서 3점슛이 100%면 좋지만 100%일 수 없고, 미드레인지에서 성공률이 나오면 3점슛을 던질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때부터 미드레인지 뱅크슛 연습을 많이 했다. 스크린을 걸고 고등학교처럼 쭉 (골밑으로) 들어가도 대학에서는 슛 기회가 나지 않아서 미드레인지 슛 연습을 많이 했다. 윤호진 감독님께서 3점슛 연습도 시켜주셨다. 미드레인지 슈팅 연습 후 3점슛을 5군데서 연습했다. 45도에서는 뱅크슛은 꼭지점만 맞추면 다 들어간다고 하셨다. 탑에서는 통으로 쏜다. 경기 때는 45도에서 뱅크슛을 쏴서 뱅크슛으로 쏘게 되었다.

아버지 강을준
요즘도 가끔 아버지랑 같이 나가서 농구를 배울 때가 있다. 농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금도 매 경기가 끝나면 피드백을 해주신다. 같은 포지션이어서 그런 부분은 되게 좋은 것 같다

아버지께서 농구로 말씀하시는 건 틀린 게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같은 포지션이고, 또 선수도 선수지만, 프로에서 감독까지 하셨다. 나보다 농구를 더 많이 하셨고, 더 많이 보셨기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걸 귀 기울인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도,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도 다 맞추려고 한다. 같은 부분도 분명 있고, 팀으로 안 맞는 건 혼자 하면 안 되니까, 팀이 있어서 선수가 있기 때문에 안 하려고 하고, 나중에 연습을 통해 하면 된다고 여긴다.

(이름이 알려진 아버지라서 안 좋았던 건) U19 대표팀에 농구인 2세가 많이 뽑혔는데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편애하는 게 아닌가라는 부분과 개인적으로 내가 못하면 어쩌지 걱정했다. 아버지의 명성에 먹칠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아버지께서 하신 명언 중) 제일 유명한 승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난다고 말씀을 하신다. 나에게는 맞는 어록이다. 경기를 하기 전에, 고등학교 때 4강이나 올라가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흐름대로 기본적인 걸 하면 된다고 하신 말씀이 그 어록과 연관이 된다고 느꼈다.

두 차례 고려대와 맞대결
솔직히 고려대나 연세대에서 뛰고 있다는 게, 코트를 밟은 게 영광이었다. 결과는 아쉽다. 우리가 더 부족한 걸 보완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 가짐이 달랐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고려대에는 정통 센터가 없고, 기동력이 좋은 포워드가 많다. 1대1 포스트업을 하면서 파울을 얻을 필요가 있다.

농구하길 잘 했다 싶었던 순간
첫 우승(종별 대회)했을 때다. 그 때 농구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구를 하면서 우승을 해보고 싶었다. 우승을 하니까 그 맛이 달랐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우승하고 끝나니까 역시 달랐다. 엄청 우승이 간절했다. 그런 마음이 컸다. U19 대표팀으로 나라를 대표해서 나간다는 것도 뿌듯했다. 농구를 통해서 연세대에 입학해 잘 되었다.

블록과 수비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는데 블록을 하기 위해서는 앞선이 치고 들어올 때 일찍 나가면 패스를 주기에 그런 걸 자르는 플레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말로 설명하기는 애매한데 치고 들어올 때 (블록) 타이밍이 있다. 스텝을 밟을 때 타이밍이 있는데 그게 맞으면 어느 정도 걸리는 거 같다. 사이드 스텝과 크로스 스텝이 있는데 처음에 사이드로 따라갈 때 사이드 스텝을, 뚫리면 크로스 스텝을 쓴다. 삼일상고 때 스텝 연습도 많이 했다.

강지훈이 꿈꾸는 농구
지금처럼 이런 플레이를 하면서 부상 없이, 농구 스타일도 포스트업도 하지만, 외곽 플레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까지 배운다면 한층 더 무서운 선수가 될 수 있다. 내외곽 모두 가능한 선수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BONUS ONE SHOT
스카우트들의 강지훈 평가

신장도 있고, 주력도 있어서 좋았는데 MBC배에서는 내외곽 적극성까지 보여줬다. 고등학교 때부터 봤는데 대학에서 이 정도 할 줄은 몰랐다. 신장 대비 3점슛 능력을 갖춰 크게 성장할 거 같다. 미드레인지에서 던지는 백보드 슛은 거의 다 들어가는 느낌이다. 로우에서 막혔을 때 타이밍 좋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잘 뛰고, 블록 타이밍도 좋다. 웨이트와 풋워크를 보강하면 내외곽 플레이가 모두 가능할 거다. 1대1만 따지면 많이 약하다. 수비 리바운드는 많이 잡는 듯 한데 공격 리바운드를 잡는 타이밍은 눈에 띄지 않았다.
강지훈
연세대 1학년 / 202cm / 센터 / 독정초-호계중-삼일상고
MBC배 5G 평균 13.0Pts 8.0Reb 1.4Ast 2.4BS FG% 56.8% 3P% 55.6%

 

#사진- 점프볼 DB(문복주, 박상혁 기자)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