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문 돌계단은 왜 오르기 힘들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문은 성에서 방어에 가장 취약한 곳이다. 따라서 곡성인 문은 원성과 다른 형태로 특별하게 만든다. 높이와 두께와 재료가 다르다. 매끈하게 마감한 육중한 돌로 안팎을 쌓았고, 두께가 두껍고 높이도 높다. 이것을 ‘육축’이라 한다. 한가운데는 뚫어 통로로 사용한다. 육축 위에 문루를 세웠으니 인공지반 역할도 한다. 모양은 정확히 등변 사다리꼴이다. 성안에서 보면 위아래가 나란한데 위가 짧고 아래가 길다. 그래서 좌우면은 위에서 아래로 경사가 지어져 있다.
안내문에 보면 이 경사 부분을 “성문 바로 위에 세워진 목조 누각에 올라갈 수 있도록 성문의 양쪽에 긴 돌계단을 설치한 것으로 석제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석제란 돌 사다리를 의미한다. 과연 누각을 오르는 계단으로 만들었을까? 경사가 급하고 계단 1단이 높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 돌계단을 사용할 때면 ‘당시 우리 조상은 거인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왜 불편한 계단을 설치했을까?
장안문과 팔달문 돌계단을 보면 한 단의 높이는 30cm, 너비는 40cm다. 반면에 현재 건축법상 계단 표준은 단 높이 15cm, 단 너비 30cm다. 비교해보면 단 너비는 표준보다 10cm가 더 넓다. 1단 너비 40cm는 한 번에 내딛기에는 넓고 두 번 내딛기에는 좁아 한국인 보폭에는 매우 불편하다. 또한, 단 높이는 표준 높이 15cm의 2배다. 이 높이는 한국인 신체로 보면 1단 높이가 발을 올리기에 너무 불편하다.
장안문 돌계단이 불편한 이유는 외형상 돌계단에 규격이 큰 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속하게 이동해야 하는 군인이 사용하는 돌계단에 왜 너비도 크고, 높이도 크고, 무게도 큰 돌덩이를 사용했을까? 답은 “원래 계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아보자. 육축은 잘 가공된 무사석을 안팎으로 한 층 쌓고, 그 사이에 잡석을 채운 후 다지고, 다시 무사석을 한층 쌓고 잡석을 채워 다지는 반복 작업으로 꼭대기까지 완성했다.
육축 가운데 통로 부분은 안팎으로 홍예를 틀고, 두 홍예 사이에 수직 벽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육축 좌우 부분은 수직이 아니라 경사면이다. 이 경사면을 그대로 둘 수 없고, 무언가 마감을 해야 한다. 마감과 함께 경사면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했다. 요즘 용어로 ‘비탈면 보호’다.
비탈면 보호 대책으로 요즘에는 표층 안정, 식생 녹화, 숏크리트, 블록, 옹벽, 벽돌 등 다양한 공법이 있지만, 당시에는 재료도 장비도 제한이 많았다. 화성에서는 어떤 공법을 채택했을까? 다름 아닌 ‘보석(步石) 쌓기 공법’을 택했다. 보석을 층층이 쌓으니 경사면이 계단 모양이 됐다. 이처럼 육축 돌계단은 원래 육축 경사면 보호를 목적으로 보석을 쌓은 것이다. 그런데 모양을 보고 ‘문루로 오르는 돌계단’이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원래 계단이 아니기 때문“이라 말한 것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에 사용된 대보석 1개 크기는 높이 1척1촌(34cm), 너비 1척5촌(46cm), 길이 5척(1.5m)이다. 무게는 약 0.7t이다. 지면에서 시작해 올라가면서 안으로 한 층씩 들이밀며 보석을 놓은 것이다. 경사면 보호가 목적인데 왜 크고 무거운 돌덩이를 사용했을까? 당시 사용 가능한 경사면 보호 재료는 흙, 벽돌, 돌 세 가지였다. 이중 보석만이 육축 경사면 보호에 적합한 재료였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재료 선택 시 경사면 밑은 잡석이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 흙은 적합하지 않다. 흙은 빗물도, 눈도 쉽게 침투된다. 흙은 유실되는 재료이며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 팽창돼 균열이 가고 떨어진다. 더구나 급경사라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더욱 쉽다. 설혹 표면에 회를 섞거나 잔디를 입혀도 장기간 노출에 마찬가지다. 둘째, 벽돌도 적합하지 않다. 재료 특성상 급경사면에 고정적으로 붙일 방법이 없다. 벽돌 줄눈 사이로 우수가 침투되고, 동결과 팽창으로 균열이 생기고 떨어져 나가게 된다. 벽돌 규격, 벽돌 쌓기 방법, 급경사 바탕이라 붕괴 가능성이 크다.
셋째, 돌은 모양, 즉 판석이냐 보석이냐에 따라 사용 여부가 갈린다. 먼저, 판석을 경사면에 덮는 방식이다. 이 경우 경사진 잡석 위에 돌판을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냥 얹어놔도 흘러내릴 가능성도 크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철물 앵커나 시멘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판석은 두께로 인해 깨지기 쉬운 문제점도 있다.
다음 방법은 통돌 형상의 보석을 계단처럼 쌓는 방식이다. 통돌은 흙, 벽돌, 판석의 결함을 모두 해결해줄 수 있다. 통돌의 물리적 특성상 흙처럼 풍화가 없고, 벽돌처럼 흘러내리지도 않고, 판석처럼 균열도 생기지 않는다. 또한, 사각형으로 긴 모양이므로 계단처럼 딛는 수평면(Tread)과 오르는 수직면(Riser)이 형성된다. 이런 형태와 무거운 자체 무게는 수직 방향과 수직 방향의 외력에 의한 움직임이나 변위를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준다.
정리하면, 흙, 벽돌, 판석은 경사면 보호에 결함이 많았다. 여러 옵션 중 오로지 크고 무거운 통돌인 보석을 계단처럼 설치해 구조적 안전을 확보한 것이다. 화성 사대문 돌계단은 원래 경사면 보호와 마감을 위한 구조다. 다만 이를 문루로 오르는 돌계단으로 겸용했을 뿐이다. 이강웅 고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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