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벤처 1세대 변대규 “기업인은 혁신으로 인간 욕망 실현시켜야”
투자 혹한기, 기업가치보다 자금 조달이 먼저”
“기업인의 본질은 혁신으로 사회의 부(副)를 창출해 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이전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도 실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결국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대표적인 1세대 벤처 창업가로 꼽히는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인은 끊임없이 기업인의 본질과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변 회장은 34년째 휴맥스를 이끌며 시대 흐름에 따라 과감히 사업 모델을 바꿔 왔다. 그가 창업한 휴맥스는 1989년 건인시스템으로 시작해 영상 자막 서비스를 하다 1990년대 초 디지털 가전으로 사업 분야를 정하고 셋톱박스 사업에 뛰어 들었다. 글로벌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휴맥스는 모빌리티를 신사업으로 점찍고 주차장 사업, 차량 공유, 차량 관제시스템, 전기차 충전기 개발 등에 힘쓰고 있다.
그는 신사업 발굴 과정에서 혁신 스타트업 투자에도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3일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제21회 벤처썸머포럼을 찾은 변 회장을 만나 벤처업계 전망과 사업 철학 등을 물었다.
―지난해 벤처투자 시장이 얼어붙었다. 해빙기가 오고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진단하나.
“워낙 유동적이다. 매주 상황이 달라진다. 미국 금리에 대한 여러 전망이 나올 때마다 한국 투자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아직은 벤처투자 시장이 안정적으로 회복세에 올라탔다고 보기 어렵다. 보수적으로 보면 내년 하반기는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금리 문제가 있고 중국이나 한국 경제도 침체돼 있는 상황인데, 이런 것들이 내년 상반기가 된다고 해서 눈에 보이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개선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창업가들은 어떤 투자 유치 전략을 취해야 하나.
“요즘 스타트업 창업가들을 보면 기업가치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처럼 어려울 땐 기업가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업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업가치를 두고 (투자자와) 밀고 당기다가 조달 기회를 놓치는 건 대형 사고다. 지금은 필요한 자금 규모를 정하고 그 자금을 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업모델이 확실한 스타트업은 기업가치를 조정해서라도 투자를 유치할 수 있겠지만, 사업모델이 분명하지 않은 스타트업은 자금 조달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시기를 사업모델을 검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투자기관이 투자를 거절한다면 시장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정도 기업가치로는 투자받지 못할 만큼의 약한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휴맥스도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 집중하는 분야가 있나.
“셋톱박스 이후의 신사업을 찾는 과정에서 여러 기업에 투자했다. 모빌리티 사업과 곧바로 연결되는 사업은 인수하기도 했다. 지금은 신사업의 방향이 잡혀있으니 예전만큼 투자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투자할 기업을 선정하는 데 큰 방향이 있었다면 ‘서비스 산업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분야’에 집중했다. 이 분야에는 앞으로 수십년간 엄청난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소개할 만한 투자 사례가 있나.
“휴맥스모빌리티의 주차장 사업을 준비하면서 발견한 것이, 가장 디지털 전환이 안 돼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건물이라는 것이다. 만약 건물이 디지털로 전환돼 생산성이 높아지면 단위 면적당 수익이 높아져 건물의 가치가 오르게 된다.
과거에 자영업 식당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설루션을 개발한 ‘먼슬리키친’에 투자한 적이 있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면 작은 면적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고, 입주한 식당이 잘 되면 건물의 가치도 높아진다. 먼슬리키친이 국내 100만개에 이르는 자영업 식당을 얼마나 빠르게 전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형 혁신이라고 보고 있다.
휴맥스모빌리티가 하는 주차장 사업은 IT를 활용해 똑같은 주차 면적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차를 주차할 수 있도록 해 건물의 가치를 높인다. 먼슬리키친과 주차장 사업은 동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건물을 디지털 전환해 생산성을 높이는 공통점이 있다.
건물에 설루션을 판매할 때, 우리는 주차장을 디지털 전환해 차량 공유와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넣고 입주 식당에는 먼슬리키친 설루션을 넣어 건물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할 수 있다.”
―국내 창업 생태계를 진단하자면.
“지금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제법 괜찮다고 본다. 이 정도 생태계를 갖춘 곳이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일단 스타트업을 할 수 있는 IT 전문가가 많고, 창업을 꿈꾸는 청년이 많다. 사업만 괜찮다면 투자할 수 있는 기관도 많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이런 생태계를 갖추는 데엔 세월이 한참 걸린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규제 문제다. 창업했을 때 성공 확률이 높다고 느낄수록 창업을 더 많이 하고 벤처투자도 활발해지고 코스닥 시장도 강해지는데,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관련 부처와 일부 국회의원이 노력하고 있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규제 문제를 큰 의제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규제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좀 더 폭넓게 형성돼야 한다고 본다.”
―선배로서 젊은 창업가에게 조언한다면.
“창업자뿐만 아니라 누가 됐든 자기 직업에 충실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잘 치료하고 선생님은 아이를 잘 가르쳐야 하듯이 창업자들은 기업인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인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본다. 다만 그 답을 찾는 게 만만치는 않다.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답할 수 있고 누군가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기업인의 본질은 무엇인가.
“기업은 결국 혁신을 통해서 사회의 부를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창출된 부를 나누는 건 정치권이 할 일이다. 기업인은 부가 무엇이며 부를 어떻게 창출할지 고민해야 한다.”
―부는 무엇인가.
“단순히 재화가 많은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욕망을 더 낮은 가격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부의 창출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쌀 열 가마니가 나오는 논에서 혁신을 일으켜 열다섯 가마니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은 쌀을 더 싸게 살 수 있게 된다. 또 음악을 들으려면 예전엔 음반과 장비가 있어야 했는데, 지금은 한 달에 몇천원만 내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런 혁신이 바로 기업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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