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건강] 만사가 귀찮다는 부모님…가면성 우울증·치매 의심해야

강승지 기자 2023. 8.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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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10명 중 2~3명은 경험하는 노년기 우울증
치매로의 진행가능성 때문에 적기 진단·치료 중요해
ⓒ News1 DB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당연하게 여겼던 신체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적 관계도 끊어지며 우울증을 느끼는 노인이 많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조언이 제기됐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치매, 극단적 선택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가족과 사회의 세심한 관심이 요구된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우울증은 의욕 저하, 우울감, 그리고 다양한 정신 및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10명 중 2~3명은 경험한다고 알려진 흔한 정신건강 문제다.

신철민 고려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은퇴, 가까운 사람과의 사별, 자식과의 불화, 대인관계 단절, 빈곤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 '노년기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며 "초기에는 특별한 감정변화 없이 잠이 오지 않고, 입맛이 없어 밥도 먹기 싫다. 특히 만사가 귀찮아진다"고 말했다.

몸 이곳저곳이 아픈데 막상 병원에 가서 검사하면 아무 이상이 없다. 집중력 감퇴와 함께 기억도 흐릿해지며 치매가 아닌지 의심한다. 두통, 복통, 소화불량 등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내과 질환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주위 이목을 끌기 위해 꾀병을 부린다는 가족의 오해도 산다.

노년기 우울증은 노인에게 흔하게 나타지만, 치료받는 비율은 매우 낮다. 우울증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삶의 질이 낮아지고 신체질환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망률을 높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News1 DB

박지은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이 있는 노년층에게 요즘 기분에 관해 물어보면 대부분 '잘 모르겠다' 혹은 '그냥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들이 본인 감정 상태에 대해 직접 표현해 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노년층이 우울한 기분을 분명하게 호소하지 않더라도 그 이면에 우울증이 숨어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우울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면성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다.

신철민 교수는 "가면성 우울증은 스스로 우울하지 않다고 말할 뿐 아니라 표정에서도 우울한 느낌을 파악하기 어렵다. 멀쩡한 겉모습과 달리 식욕부진, 소화불량, 두통, 근육통, 불면증 등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게 특징"이라고 전했다.

노년기 우울증은 항우울제 등의 약물을 사용하면 충분히 치료 가능하고 좋아질 수 있다. 항우울제는 수면제나 안정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다른 약물과 함께 사용해도 안전하다. 경도의 우울증부터 약물치료를 권하는 추세고 환자도 대부분 불편함 없이 복용할 수 있다.

박지은 교수는 "앓고 있는 신체 질환이나 복용하는 약물, 최근의 스트레스 사건, 불안정한 환경요인 등도 노년기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원인에 대해 포괄적으로 평가하고 개입하는 것 또한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소개했다.

노년기 우울증을 잘 진단, 치료해야 하는 주요 이유로는 '치매로의 진행 가능성'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별문제가 없다가 중년 이후 우울증이 발생하는 경우 뇌의 퇴행성 변화가 동반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의 깊게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우울증 초기부터 인지 기능 문제가 동반되거나 치료 중 우울 증상은 좋아졌지만, 기억에 호전이 없는 경우, 우울증 약물치료에 반응이 좋지 않은 경우 역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신경퇴행성 질환이 동반됐을 가능성을 고려해 봐야 한다.

우울증과 치매는 '인지 기능이 어떻게 나빠져 왔는가'로 구분된다. 우울증 환자는 기억력이 갑자기 나빠졌다거나 기분 상태에 따라 기억력이 좋았다, 나빴다 한다고 보고할 수 있지만 퇴행성 치매 환자는 기억력이 조금씩 점차 더 나빠진다고 보고한다.

노년기 우울증은 예방과 치료 모두 중요하다. 규칙적 생활과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고,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한다. 부정적 생각은 없애고 즐거운 생각을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가족들의 관심도 필요한데 환자가 자살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반드시 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박 교수는 "우울증이나 치매에 의해 일상적 활동이 줄어들 수 있다. 이때 우울증으로 인해 의욕이 없고 귀찮아서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어서 실수가 생기고 못 하는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치매는 예방이 중요한데 예방법 중 하나는 우울증을 잘 치료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검증되지 않은 약물은 우울증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증상이 악화되기 전 치료받는 것"이라며 "증상이 호전됐다고 해서 환자가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가족들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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