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가치 470억 달러에서 5억 달러로…위워크, ‘무너진 공유 경제 신화’
텅 빈 사무실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비어 있는 이 공간을 1인 사업자들의 커뮤니티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그의 야망이다. 그는 사무실 바닥에 초록색 테이프로 구역을 나누고 사람들을 초대한다.
“저기엔 모두 모여 커피를 마시고 토론하는 공간을 만들 거예요. 저곳은 당신이 치열하게 일하는 도중에 잠시 창 밖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히는 곳이 될 겁니다. 여기는 그냥 사무실이 아니에요. 당신과 같은 창의적인 사업가들이 함께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죠. 당신은 이곳에서 사업 파트너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게 될 겁니다. 누가 알아요. 이곳에서 운명의 사랑을 만나게 될지.”
애플TV플러스의 ‘우린 폭망했다(We Crashed)’의 한 장면이다. 한때는 ‘공유 경제의 신화’였던 세계 최대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의 성공과 실패를 담아낸 TV 시리즈다. 3화 오프닝에 등장한 유니콘과 부러진 유니콘의 뿔이 이 TV 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 시장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도전에 열광하며 ‘유니콘(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 열풍’에 휩싸였다. 그 중심에 위워크가 있었다. 기업 가치 470억 달러. 유니콘을 찾던 투자자들이 위워크에 매긴 값어치였다.
하지만 위워크의 현재는 초라하다. 위워크의 주식은 지난 3월 중순부터 1달러 이하에 거래되고 있다. 이 와중에 8월 8일 위워크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영업 손실과 현금 부족으로 인해 기업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상당한 의구심이 제기된다”고 보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위워크는 2022년 23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 올해 상반기에만 7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주가는 15센트까지 폭락했다. 현재 시가 총액은 5억 달러 미만이다.
470억 달러 가치의 회사가 5억 달러 가치로 무너지기까지 위워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공유 경제 신화’의 몰락 과정을 따라가 봤다.
1. “모두 유니콘을 놓칠까 두려워하던 시기”…버블에 올라탄 유니콘
위워크의 성공 스토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은 이스라엘 출신의 창업자인 애덤 노이먼이다. 위워크는 2010년 뉴욕에서 탄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혼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당시 뉴욕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열기로 가득했다. 금융 위기에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의 선택지는 적었다. 갈 곳을 잃은 젊은이들은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로 가득한 세상의 해결책을 찾겠다고 뛰어들었다. 공유 경제 붐이 일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2008년 공유 숙박 업체인 에어비앤비가 탄생했고 2009년에는 승차 공유 서비스인 우버가 달리기 시작했다.
위워크 또한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했다. ‘긱 이코노미’ 시대의 주역이 될 1인 사업자들을 위한 공유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오래된 ‘부동산 임대업’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겠다는 것이 그들의 야망이었다. 혁신을 위해 그들이 차별화로 내세우는 것은 바로 ‘커뮤니티’였다. 그냥 사무실을 임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창업가들이 함께 모여 일하고 토론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과 문화를 판매하겠다는 것이었다.
위워크는 사업 초기부터 빠르게 성장했다. 미국·유럽·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공유 오피스를 열었다. 공유 오피스 열풍에 힘입어 젊은 창업가들이 앞다퉈 회원에 가입했다. 현재 위워크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20여개 국가에 600여 개 지점을 운영했다. 회원 수만 약 51만2000명, 작업 공간은 71만5000여 개에 달한다.
거침없는 위워크의 행보에 지갑을 연 투자자들도 줄을 섰다. 대표적인 인물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다. 손 회장은 2017년 비전펀드를 통해 위워크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다. 당시 손 회장은 위워크 외에도 우버·도어대시 등의 공유 경제 스타트 업체에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하던 때였다. 이들 회사에 대한 투자금만 1400억 달러가 넘는다.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현재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 가치’였다. 공유 경제로 세상을 혁신하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매혹적이었다. 위워크의 기업 가치가 470억 달러로 뛰어오른 것도 이때였다.
2021년 훌루(Hulu)는 ‘위워크 : 470억 달러 유니콘의 탄생과 붕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한 바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위워크의 기업 가치가 470억 달러에 달했을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한다. “당시 글로벌 시장과 투자자들은 쏟아지는 유니콘들을 놓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 불안함이 피 몇 방울로 250여 개의 질병을 진단해 준다는 테라노스의 성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테라노스의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는 지금 체포됐다. 공유 경제의 대표 주자들 또한 이 불안함이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유니콘에 대한 기대와 불안에 기대 투자자들이 매기는 기업 가치는 부풀려졌고 ‘470억 달러 유니콘’이라는 위워크 신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2. 본질은 부동산 임대업…테크 없는 ‘테크 기업’의 결말
위워크의 위기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2019년 IPO가 무산되면서 위워크를 중심으로 한 ‘공유 경제의 신화’에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공유 경제를 앞세운 다른 스타트업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위워크 또한 혁신을 강조했다. 이 혁신을 위해 중요한 것이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이었다. 위워크의 창업자인 애덤 노이먼이 위워크를 ‘테크 기업’이라고 주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위워크의 비즈니스 모델을 뜯어보면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위워크는 건물주와 장기 계약한다. 이렇게 빌린 공간을 누구나 일하고 싶은 사무실로 꾸민다. 그리고 그 공간을 1인 사업자들에게 단기로 임대료를 받아 수익을 얻는 구조다. 이 과정만 놓고 보면 위워크는 ‘부동산 임대업’인 셈이다. 부동산 시장의 혁신을 위한 ‘새로운 기술’은 위워크에 없었다.
위워크는 전 세계에 빠르게 지점을 늘리며 공격적으로 규모를 키워 나갔다. 노이먼 창업자는 전 세계의 공유 오피스를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 아무리 많은 공유 오피스를 운영한다고 해도 그것 만으로는 ‘새로운 부가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그저 규모가 큰 부동산 임대 사업자였을 뿐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테크 기업이라고 강조했지만 기술력이 없었다. 기술력이 바탕이 되지 않은 위워크의 비즈니스 모델은 경쟁자들이 따라 하기 쉬웠다. 미국은 물론 한국 등 다른 지역에서도 위워크와 비슷한 공유 오피스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위워크는 더 싼값에 사무실을 임대하길 원하는 젊은 사업가들에게 ‘굳이 위워크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공해 주지 못했다.
3. “술 취한 선원처럼 돈 쓴다”…지나친 공격 투자가 발목 잡아
이 와중에도 위워크는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 갔다. 그리고 이것이 위워크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공유 오피스 사업은 고가의 부동산 임대가 필수다. 사업이 확장될수록 더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 위워크가 점점 더 많은 국가들에 진출하고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매출도 늘어 갔다. 하지만 그만큼 비용이 늘었고 적자도 커졌다. 2019년 위워크가 IPO를 추진했던 것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IPO를 통해 더 많은 현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IPO를 위한 실사 과정에서 드러난 위워크의 실상은 위워크의 성공에 대한 찬사를 순식간에 우려로 바꿔 놓았다. 2018년 위워크의 매출은 18억 달러였는데 영업 손실은 무려 17억 달러 규모였다.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부동산과 벤처캐피털을 강의하는 노리 제랄도 리에츠 교수는 “위워크가 성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술 취한 선원들처럼 돈을 지출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노이먼의 방만 경영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2017년 자신의 지분을 몰래 팔아 7억 달러 상당의 부를 축적하고 개인 제트기와 주택 등을 구입했다. ‘위컴퍼니’라는 이름으로 기업명을 변경하면서 저작권료 명목으로 600만 달러를 수령하고 자신이 소유한 빌딩의 공간을 위워크에 고가에 임대하면서 이익을 챙겼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잡음이 계속되며 470억 달러로 기대되던 기업 가치는 100억 달러 미만까지 추락했다. 끝내 노이먼 창업자는 IPO 무산의 책임을 지고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4. 코로나19 사태로 일상화된 ‘재택근무’…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위기 심화
노이먼 창업자가 해임된 이후 위워크의 경영 정상화를 책임진 이는 산디프 매스라이 전 CEO였다. 그는 위워크의 비용 구조를 바로잡고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2020년 9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뉴욕 증권거래소(NYSE) 상장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공유 경제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의 시작이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대신 재택근무가 일상화됐다. 위워크로서는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했다.
물론 업무 방식의 변화가 위워크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더 많은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 근무로 전환함에 따라 위워크처럼 ‘유연한 근무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CNN은 당시 “기존에 8~10년간 장기 임대 계약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위워크와 같은 회사와 1~2년 단기 임대 계약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부동산 임대업’의 구조를 갖고 있는 위워크는 이 기회를 잡지 못했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를 허용한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기록적인 양의 사무실이 부동산 시장에 쏟아졌고 임대료는 급락했다. 임대료의 급락은 이미 부동산 시장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위워크로서는 향후 수익성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재택근무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위워크의 임대율 또한 낮아졌다. 2021년 3분기 위워크의 임대율은 60% 정도였다. 2019년 중반 85%였던 것과 비교하면 꽤 낮아진 수치다.
위워크의 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매스라니의 CEO 사임 소식이 알려졌다. 이후 위워크의 주가는 다시 한 번 폭락하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급기야 8월 8일 위워크가 파산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언급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위워크는 이후 8월 20일 기업 파산 처리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지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5. 위워크 파산의 후폭풍…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위기, 얼마나 심각하기에
본질적으로 부동산 임대업인 위워크의 위기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직격탄이 됐다. 팬데믹으로 인해 재택근무가 늘어난 데다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 조정이 많아지며 사무실 임대 수요가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등 도심 오피스 빌딩의 공실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캐나다 부동산 업체인 코리아스 집계에 따르면 미국 뉴욕 맨해튼은 2022년 4분기부터 2023년 2분기까지 3분기 연속으로 공실률이 17.8%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0.6%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위워크의 파산 소식에 미국은 물론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국·영국과 같은 지역들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위워크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영국 종합 부동산 그룹 세빌스가 올해 1분기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위워크는 현재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680만 평방피트(약 19만1101평) 이상의 부동산을 차지하고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면적의 2배가 넘는 규모다. 미국 전체로는 약 1680만 평방피트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영국 런던도 초긴장 상태다. 위워크는 런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최대 임차인이다. 위워크는 런던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맺은 임대 약정은 약 30억 파운드(약 5조1200억원)가 넘는다. 임대한 부동산만 50여 개에 달한다. 전체 임대 면적은 약 28만㎡ 규모다.
위워크가 사업을 정리하면 위워크가 임대했던 부동산이 한꺼번에 매물로 쏟아져 나오면서 오피스 빌딩의 공실률이 치솟을 수 있다. 지금도 위기를 맞고 있는 뉴욕 부동산 시장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규모와 파급력은 다르겠지만 위워크의 파산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타격은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금융 시장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며 임대인들의 대출금·이자 상환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은행 신용도가 하락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이미 미국 신용 평가사들은 최근 미국 주요 은행과 지방 은행에 ‘신용 강등’ 경고를 내린 상태다. 글로벌 투자 은행(IB) 바클레이즈는 위워크가 파산하면 미국 전역에서 75억 달러, 뉴욕시에서만 29억 달러의 대출금이 연체나 불이행될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위워크는 8월 9일 향후 사무실 임대 조건을 갱신해 비용을 줄여 회원 이탈을 막고 매출을 올리는 동시에 추가 주식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12개월 동안 해당 계획의 성공적인 집행 여부에 따라 사업 지속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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