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사건' 진상 규명 방해하는 '음모론'의 특징[이승환의 노캡]
음모론은 병리 현상…'서이초' 경찰 수사 '촉각'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21년 봄 대학생인 20대 남성이 실종됐다. 그는 직전까지 반포 한강공원에서 또래 친구 A씨와 술을 마셨다. 대학생은 실종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온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타살설'이 무서운 기세로 퍼져 나갔다. A씨가 범인이라는 확증 편향이 여론을 주도했다.
누리꾼과 유튜버들이 그의 행적을 분 단위로 추적할 정도였다. A씨의 가족이 '경찰 고위 간부'고 이 간부가 사건 수사에 관여한다는 음모론이 활개를 쳤다. 경찰이 이 허위 글을 '입건 전 조사'(내사)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A씨의 타살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진술도 확보했다. 대학생의 사고 발생 과정에서 '타인'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목격자 여러 명의 진술이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혐의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A씨와 그의 가족 개인정보가 털리고 온갖 음모론과 가짜뉴스로 온라인이 도배된 뒤였다.
◇왜 음모론에 끌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타살설을 믿는 누리꾼 200명 이상이 모바일 메신저 단체 방에 모인 상태였다. 이들은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는 유튜브 영상을 공유했다. 내사 종결 후에도 A씨는 폭행치사 및 유기치사 혐의로 고소됐다. 4개월 뒤인 10월 경찰은 증거불충분으로 A씨를 불송치했다. 재차 '타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창창한 미래가 기대됐던 대학생의 허무한 죽음이었다. 우리 사회가 그의 죽음에 애통해하고 감정 이입하는 것은 아직 각박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와 별도로 '음모론'은 되짚어야 할 사회 현상이다. '한강 대학생 사건 음모론' '천안함 음모론' '세월호 음모론' '광우병 음모론' '황우석 사태 음모론'이 그간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고 갈등을 조장했다.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2015년 9월 국내 출간)의 저자 톄거는 음모론의 특징을 10가지로 정리했다. '반증이 불가능하다' '배후 세력을 찾아내 악마화한다' '두 가지 잘못된 선택지를 제시하고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의심이 제기될 때마다 또 다른 논리를 갖다 붙인다' '편집증적이다' 등이다.
이중 '의심이 제기될 때마다 또 다른 논리를 갖다 붙인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A씨의 가족이 '경찰'이 아니라는 증거를 앞세운 보도로 음모론을 반박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경찰이 언론을 이미 포섭했다는 음모론이 고개를 든다. A씨의 가족이 실제 경찰인데도 회유된 기자들이 그것을 부정하는 보도를 했다는 '또 다른 논리'다.
저자 톄거에 따르면 불안이 일상화한 사회일수록 음모론이 기지개를 켠다. 사람들이 음모론에 쉽게 현혹되는 것은 사회 병리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과 '믿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른 층위에 있다. 한강 대학생 사건 이후 약 2년 4개월이 지났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드러나지 않은 진상
이른바 '서이초 사건'을 두고 갖가지 의혹이 증폭된 상태다. 이 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B교사가 7월18일 극단선택으로 숨진 사건이다.
경찰 수사만 놓고 보면 사건 핵심은 학생들 간 다툼인 '연필 사건' 당사자의 학부모들이 B교사에게 갑질을 했는지다. 좀더 구체적으로 '협박' '강요' '모욕' '공무집행 방해' 등 범죄 혐의로 특정할 만한 갑질 행위가 있었는지가 규명돼야 한다.
학부모가 "너 같은 것이 무슨 교사냐" "너를 잘라버릴 것이다" "죽여버리겠다" 같은 발언을 했거나 문자를 보냈다면 '협박' 등 범죄 혐의로 입건됐을 것이다. 학부모들은 현재까지 피의자로 입건되지 않았다. 그러한 발언이나 메시지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사건 당시 B교사의 업무 부담이 가중했던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갑질 정황이 새로 나올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까지 갑질 여부가 결론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업무 부담을 느낄 만한 상황'과 '범죄 혐의를 적용한 만한 갑질이었는가'는 다른 문제다.
그런데도 온라인 공간에선 학부모의 갑질로 B교사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확증 편향' 글이 확산했다. 학부모의 신상도 유포돼 명예훼손 우려가 크다.
연필 사건 학부모가 고위 공직자라거나 경찰이 유서를 삭제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의혹'이다. '가짜뉴스' 또는 '음모론'일 가능성이 크다. 가해 학생 학부모의 경찰 직급은 '경위'로 간부가 아닌 '실무자' 계급이다. 이 학부모가 '경찰'임을 앞세워 교사를 압박해 업무를 방해하거나, 이득을 취하려 했다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황과 증거 모두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학부모가 언론을 포섭해 진상 규명을 방해한다는 의혹도 있다. 물론 다른 학부모가 고위 공직자일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 그런데 학부모가 고위 공직자인 데다 수사에 '외압'까지 행사한 정황이 있다면 오히려 언론이 더 집요하게 달라붙을 것이다. 보도 가치가 매우 높은, 파급력 있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권력이나 이념보다 '이슈와 단독 보도'를 우선시하는 기자는 여전히 많다.
◇사실관계의 영역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붕괴 같은 교육 현장의 불합리한 구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것을 개선하지 않으면 B교사의 죽음은 더욱 허망하게 느껴질 것이다.
다만 경찰 수사는 제도 개선이 아닌 '사실관계의 영역'이다. 범죄 혐의가 있느냐, 없느냐를 치밀하게 가려내는 과정이다.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 만큼 수사 방향이 뒤집힐 가능성은 있다. 중요한 것은 수사는 '사실'에 기반해야 하고 수사 결과에 대한 판단도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생 실종 사건 당시 얼마나 많은 음모론자가 무고한 이들을 '2차 가해'했는가. 그러나 제대로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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