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의 소리[PADO]
[편집자주] 인류 지성의 역사는 '시각' 중심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지성의 각성을 'en·light·ment'(계몽)이라고 했고, 동양에서는 '광화'(光化,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의 그 '광화'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두 단어 모두 지성을 '빛'에 비유했습니다. 시각적 비유입니다. 플라톤은 동굴의 우화에서 빛과 어둠으로 지성과 무지를 구분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시각이 외부세계의 다채로움을 가장 잘 전달한다고 했습니다. 안그래도 이렇게 시각 중심이었는데, 근대 초기 광학의 발달은 더욱 시각 중심의 지성사를 가져왔습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의 발달로 인간의 감각은 마이크로 세계와 우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것이 세계관 자체를 바꿔냈습니다.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니 우주에서 우리 자신을 보게 되었고, 이것이 지동설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세포같은 마이크로 세계를 보니 거기에서도 삶이 보이고 움직임이 보이면서 인간의 주체가 안팎으로 열려있고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스피노자처럼 우주의 총체성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미디어의 이해'를 쓴 마셜 매클루언은 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인간 신체, 특히 인간 감각의 확대를 이야기합니다. 더는 새롭게 밝혀질 게 없지 않을까 했는데 최근에는 음향공학의 발전이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세계를 들춰내고 있습니다. 우주의 소리, 세포의 소리를 듣게 되는 인류는 또 어떤 세계관적('관'도 시각적 용어입니다만) 변화를 겪게 될까요? 2023년 6월 20일자 노에마 기사는 음향공학이 가져오는 인간 감각의 확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시각만 발달해온 인류가 이제 다시 청각을 키울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얀센 부자는 수익성 높은 신흥 사업이던 독서용 안경 제작의 선두주자였다. 그들은 아주 인기 있는 사치품이었던 완벽한 안경을 만들려고 고심하다가 원통형 관에 두 개의 렌즈를 정렬하면 물체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두 개의 렌즈를 결합하면 한 개의 렌즈만을 통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시야가 너무 흐릿했고, 그들의 고객에겐 너무 거추장스러운 장비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발한 발견을 제쳐두었다.
얀센 부자의 확대경 기계는 다른 누군가 그것을 사용하기 전까지 근 백 년 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네덜란드의 직물 상인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이 몇 개의 현미경을 수제작했는데, 원래는 해외에서 구매한 값비싼 직물의 품질을 점검하겠다는 세속적인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판 레이우엔훅은 이내 주변 세계로 주의를 돌려, 현미경으로 우물물, 곰팡이, 꿀벌, 이(蝨), 효모, 혈구, 모유(아내의 것)와 정자(자신의 것)를 들여다봤다. 그의 현미경들은 그가 보려 한 모든 곳에서, 우리 세계의 구석과 틈에 살고 있지만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이상하고 새로운 세계의 존재들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판 레이우엔훅은 처음에는 (현명하게도) 조롱당할까 두려워 자신의 발견을 비밀로 했다. 그러다 그가 마침내 자신이 본 것을 드러냈을 때, 점잖은 네덜란드 사회는 육체적 물질을 확대하는 그의 이상한 성향에 경멸을 드러냈다. 또 많은 사람이 '극미 동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고 그저 거부해버렸다. 그럼에도 판 레이우엔훅은 런던 왕립학회에 수백 통의 편지를 썼고, 그의 발견은 최초의 의혹이 지나가고 회의적인 과학위원단의 방문이 있고 나서야 결국 받아들여졌다. 이 소박한 상인의 연구 논문은 왕립학회의 학술지에 아이작 뉴턴 경의 논문과 나란히 게재되었다.
현미경을 통해 관찰한 신세계는 곧 과학자와 철학자 모두를 매료시켰다. 현미경은 인류가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인공 눈, 시각적 보철물의 한 형태로 확산되었다. 미시적 세계에 대한 연구는 원자론―세계가 작은 기본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고대 이론―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나중에는 전염병과 질병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또한 제공하게 될 터였다.
과학사가 캐서린 윌슨은 저서 '보이지 않는 세계'(The Invisible World)에서 현미경이 과학 혁명을 촉진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순한 장치는 복잡한 관념을 내포하고 있었다. 과학이 맨몸의 인간이 지닌 지각으로는 볼 수 없는 자연계의 양상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안경은 쓰인 단어에 집중하게 도와줬을 뿐이지만 현미경은 인간이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지각할 수 있게 해주었고, 시력과 상상력 모두를 확장했다.
과학 분야로서 생물음향학은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한 새로운 창을 연다. 지구상에서 소리는 복잡한 생태 정보를 전달하는 원시적 형식이다. 광범위한 종들, 심지어 귀가 없는 종들까지도 놀랍도록 소리에 민감하다.
지난 이십여 년간, 과학자들과 아마추어들은 디지털 녹음기를 이용해 북극에서 아마존까지 곳곳에서 생명의 소리를 녹음해왔다. 그들이 녹음하는 소리 대부분은 우리의 가청 범위 위나 아래에 있어서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 생물음향학은 광학의 초창기 시절과 비교될 수 있다. 즉 디지털 녹음기는 현미경이나 망원경이 시각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청각을 우리 신체의 인지적 한계 너머로 확장한다.
생물음향학자들의 고된 작업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생물 종이 실제로 소리를 낸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우리는 음성을 활발히 사용하는 많은 종이 음향 소통을 통해 복잡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가고 있다.
코끼리의 초저주파는 좋은 예다. 코끼리는 강력하고 (인간의 가청 범위보다 한참 아래인) 몹시 낮은 음파를 방출한다. 이 음파는 숲과 사바나를 통과해 멀리까지 나아가며, 방대한 영역을 가로질러 무리와 가족의 협동에 기여한다. 코끼리가 어떤 상황에서 전달하는 특정한 신호와 소리는 더 놀랍다. 과학자들은 이 수천 개의 소리를 모아 사전으로 편찬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코끼리는 꿀벌을 위한 특정한 신호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코끼리는 영리한 청자이기도 해서 단지 사람들의 목소리와 방언을 듣는 것만으로 그들을 사냥하는 부족과 그렇지 않은 부족을 구별할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음성이 없는 생명체들조차도 소리에 절묘하게 적응한 것으로 밝혀졌다. 엑서터대학교의 생물학자 스티브 심슨은 산호 유생이 건강한 산호초와 품질이 떨어지는 산호초의 소리(그들은 전자를 선호한다)를, 또한 평범한 환초와 그들이 거주하는 산호초의 소리(그들은 후자를 선호한다)를 구별하는 능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텔아비브대학교의 신경생태학자 요시 요벨은 꽃들이 윙윙거리는 벌들의 소리에 응답하여 몇 분 안에 더 많고 더 달콤한 꿀을 흘러넘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땅 속의 동물들도 소리를 낸다. 일종의 지하 트위터인 셈이다.
세계는 살아 있는 자연의 소리로 가득 차 있는데 그 대부분은 사람의 맨 귀로는 감지할 수 없다. 그러나 디지털 생물음향학과 인공지능의 결합을 통해, 과학자들은 생명의 나무를 가로지르는 이종간(異種間) 의사소통의 범위를 밝혀내기 시작했다. 요벨의 팀은 식물들이 방출하는 높은 초음파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AI 알고리즘을 훈련했다. 담배 식물을 이용한 실험에서 알고리즘은 단지 듣는 것만으로 식물이 탈수 상태인지, 건강한지, 상처를 입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처럼 높은 초음파 주파수는 사람의 가청 범위를 훨씬 넘어서지만 곤충에게는 들린다.
자연이 이종간의 소통으로 가득차 있다는 깨달음은 컴퓨터 과학자, 생물학자, 언어학자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 연구팀이 AI와 디지털 생물음향학을 활용한 번역 도구를 개발하도록 이끌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심오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언제 우리가 비인간들의 음향 데이터를 수집할 권리를 갖게 되는가? 누가 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가? 사냥꾼? 어부? 또 AI 알고리즘에 불가피하게 내재하는 편향이 야기할 위험이나 잠재적인 피해는 무엇인가?
이것은 철학적으로도 마찬가지로 심오한 질문을 제기한다. 다른 종들도 복잡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만의 능력으로 여겨졌던 언어의 고유성에 대한 도전인가? 그리고 이런 발견들이 환경 거버넌스, 혹은 더 넓게는 인간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인간의 정치적 목소리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계속)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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