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흉악범죄 속 무분별한 ‘살인예고’… 속속 재판행 [사사건건]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살해하겠다고 글을 쓰거나 허위 신고한 이들이 속속 재판에 넘겨지고 있다. ‘살인예고’ 글이 올라오거나 신고가 접수될 때마다 경찰은 현장을 탐문하고 IP(인터넷주소)를 추적하며 강경 대응하고 있지만, 검거된 피의자들은 장난이었다며 처벌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흉악범죄가 연달아 이어지며 사회적 불안이 커진 가운데, 법원에서는 이들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 북부지검은 강력범죄전담부(부장검사 이영화)는 지난 24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를 구속기소했다. A씨는 지난 8일 오후 9시10분쯤 112에 전화를 걸어 “칼로 찌를래요, 사람들”이라며 “청량리역이에요. 칼로 다 찔러 죽이려고요”라는 내용의 허위 신고를 한 혐의를 받는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 및 소방대원 59명은 청량리역 일대를 수색한 끝에 경동시장에서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검거 당시 A씨는 별다른 흉기를 소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외로워서 관심받고 싶었다”며 “경찰관이 얼마나 빨리 출동하는지 실험해 봤다”고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A씨는 과거에도 경찰에 허위 신고를 해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A씨가 도주 우려와 불특정 위해 가능성 등이 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튿날인 지난 10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 관계자는 “A씨에게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유사 사례 발생 시 경찰과 긴밀히 협력해 엄정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블라인드 조치 마음에 안 들어”…경찰 사칭 살인예고 30대 구속심사
최근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경찰청 소속 직원 계정으로 ‘살인예고’ 글을 올렸다 긴급체포된 30대 회사원도 구속됐다.
서울동부지법 신현일 부장판사는 지난 24일 오후 2시30분부터 협박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B씨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 후 “도망할 염려(범죄 혐의 중대성)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B씨는 구속심사에 출석하기 전 글을 작성한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 “죄송하다”며 “실제로 흉기 난동을 계획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다. 경찰청 직원 블라인드 계정을 어떻게 얻었는지 등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경찰은 다음 날 오전 8시32분쯤 B씨를 서울 소재 주거지 인근에서 체포했다. 경찰이 신분을 확인한 결과 그는 경찰관이 아닌 일반 회사원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블라인드 측에 불만을 갖고 문제의 글을 게시했다고 진술했다.
B씨는 “과거 자신의 블라인드 글에 욕설 댓글이 달리자 업체 측에 삭제를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만을 가졌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유사한 일이 또 발생하자 “블라인드에 큰 사회적 논란을 발생시킬 수 있도록 살인예고글을 게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경찰은 B씨가 ‘경찰청’으로 직장이 표시될 줄 알면서도 살인예고 글을 올린 데 대해 형법상 공무원 자격사칭이나 경범죄처벌법상 공무원사칭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 중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계정을 만들었을 경우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다만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살해하겠다고 예고한 글을 인터넷에 올린 행위가 협박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25일 ‘흉기난동이 벌어진 서울 신림동에서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글을 올리고 실제로 흉기를 주문한 혐의(살인예비, 협박, 정보통신망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이모(26)씨의 첫 공판이 열렸다.
판결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3단독 양진호 판사는 “협박성 표현이 도달하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데 글을 직접 보지 않은 신림역 인근 상인 등은 게시글보다 기사로 알게 됐을 것 같다”며 협박죄의 성립 여부와 관련해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검찰은 “스포츠경기 중계 사이트에 (협박성) 글을 반복해 올린 사람에게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유죄가 선고된 사례가 있다”며 “피고인이 게시한 글을 직접 본 여성 이용자들은 피고인이 동일 IP 주소로 계속 글을 올려 공포심이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반론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달 21일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이후 지난 24일까지 한달여간 온라인에 게시된 살인 예고글 총 462건을 수사해 글 207건, 작성자 216명을 검거했다. 이 가운데 21명은 구속된 상태다.
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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