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재명’ 대안이 중도 확장 리더십이라면… [유창선의 시시비비]
민주당 강경파들이 온건 노선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아
(시사저널=유창선 시사평론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하면서 정국의 셈법이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8월17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해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등에 대해 조사받았다. 대개는 소환조사 후 일주일 내에 구속영장 청구 여부가 결론 난다. 하지만 이 대표는 아직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에 관한 수사도 받고 있어 검찰이 9월초에나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런데 9월부터는 정기국회 회기라 영장이 청구되면 체포동의안에 대한 본회의 표결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는 다수당인 민주당이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지만,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마당인지라 그때와는 입장이 달라졌다. 민주당이 체포동의안을 또다시 부결시키면 '불체포특권 포기'를 번복한 것으로 비칠 것이니, 총선 정국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민주당이 8월 임시국회를 끝내고 8월말에 비회기 일정을 갖자고 국민의힘에 요구하고 있다.
이 대표가 "회기 중 영장을 청구해 분열과 갈등을 노리는 꼼수를 포기하고 당당하게 비회기 때 청구하라"고 요구하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치 식당 예약하듯이 요구하는 건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반박한 것도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현재로서는 검찰이 민주당과 이 대표의 요구에 일정을 맞춰줄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의 본회의 표결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민주당으로선 위험한 폭탄이다. 벌써부터 "체포동의안 표결에 불참해 거부해야 한다"는 친명계의 입장, "표결에 참여해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비명계의 입장이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만약 민주당이 표결에 참여할 경우 이번에는 비명계의 '찬성' 투표로 체포동의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대표 자신이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마당에 반대표를 던질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서 이재명 대신 총선 이끌 인물 거론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있게 되면, 가결되든 부결되든, 이 대표가 총선 정국에서 정상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친명계에서는 이 대표가 구속되더라도 대표직을 사퇴하지 말고 '옥중 대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굳이 당내 비명계의 반발이 아니더라도, 이 대표가 '옥중 대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정치적 상식에 맞지 않는다. 특히 이 대표의 혐의가 정치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라 개발 비리 관련 내용들이라 법원의 결정에 따른 구속의 의미를 무시하면서까지 대표직을 수행하는 것은 부담이 큰 선택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여론이 악화되어 민주당 전체가 또 다른 '사법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친명계에서는 이 대표의 사퇴를 상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지 않고 버티다가 만약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는 경우, '이재명 책임론'에 갇혀 차기 대선 재도전의 꿈이 무산될 가능성마저 있다. 이 대표로서도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에 따른 사퇴의 모양새가 갖추어진다면, 결국은 대표직을 일단 내려놓는 것이 대권가도에 안전한 길이 될 것이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친명-비명을 불문하고 민주당 의원 대다수가 결국에는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총선에 출마하는 의원들의 최우선 관심은 이재명 대표의 앞길이 아니라 자신의 국회의원 당선이다. 구속되든 불구속 기소되든, 이 대표가 계속 자리를 지키는 상황이 자신들의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이 대표를 향한 사퇴 요구는 당내에서 확산될 것이다. 결국 이 대표의 사퇴는 시점이 문제이지 민주당은 새 인물을 얼굴로 세워 22대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전망은 매우 상식적인 것이기에, 벌써부터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 대신 총선을 이끌어나갈 인물들이 거명되고 있다. 일단 현실적으로 당내 기반이 없는 외부 인사를 영입해 총선 사령탑을 맡기는 것은 무리다. 지금같이 복잡한 민주당의 내부 상황을 조정하며 쇄신할 정치력을 외부 인사가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016년의 김종인'을 민주당이 다시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종인' 같은 인물을 또 찾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민주당의 내부 상황이 '차르의 통치'가 먹히던 2016년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 '친문' 그룹에서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이름도 나온다고 한다. '복권 없는 형면제'를 받았지만, 당에서의 정치적 역할은 가능하기에 친명-비명의 화해를 이끌 수 있다는 기대일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지사의 경우 당내 정치 경험은 많지 않은 편이라 지금의 민주당 안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부겸 오면 가장 겁내야 할 쪽은 국민의힘
현실성이나 방향성에서 힘이 실리는 것은 김부겸 전 국무총리다. 22대 총선도 중도층이라는 캐스팅보트의 지지를 어느 쪽이 더 받느냐에 승부가 달려 있다. 지금은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모두 강성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크지만, 결국 총선이 다가오면 중도 경쟁으로 가게 돼있다. 김부겸은 총리직을 마치면서도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은 무조건 나쁘다고 해야 설 자리가 있는 게 지금의 정치다. 이런 정치를 계속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던 정치인이다.
무엇보다 합리와 균형의 미덕을 알기에 우리 정치가 극단주의의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지켜왔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 안에서 강성 당원들의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고, 정치적 능력이 있음에도 당 대표직을 한 번도 맡지 못했다. 그래서 당내에서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없다는 약점은 있지만, 민주당에서 극단주의적 팬덤정치가 극복되기를 원하는 국민의 눈높이에는 적절한 리더십일 수 있다.
다만 아무리 김 전 총리라 해도 민주당의 내부가 그의 리더십을 받아들일 토양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민주당을 쥐락펴락해온 강경파 의원들과 권리당원들이 과연 김부겸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노선을 받아들이며 따라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2016년 총선 정국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친문 공천학살'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문재인 대표가 전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당에 그런 결단을 내릴 리더십이 없다. 만약 '친명 공천학살' 조짐이라도 있으면 이재명 대표는 그것을 저지하는 입장에 설 가능성이 크다.
김 전 총리가 보유하고 있는 중도 확장성은 민주당에는 총선 승리를 위해 최적화된 방향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해서 정답대로만 가지는 않는 것이 정치이니 민주당이 그런 선택을 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천기를 하나 누설하자면, 앞으로 민주당에서 이재명 대표가 물러나고 김부겸 전 총리가 당을 이끄는 상황이 온다면 가장 겁내야 할 쪽은 사실은 국민의힘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그런 상황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 같으니, 진짜 하늘의 기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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