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무균·고립…엄마와 폐쇄병동 문턱을 넘었다
골수이식
골수 뽑아내 치료한 뒤 다시 주입
병실 크기 따라 보호자 동반 가능
엄마는 ‘환자 1인 무균실’ 배정
전단계 ‘준무균실’에서 2주 간병
드디어 엄마의 입원 날짜가 결정됐다. 10일 뒤다.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은 것처럼 결정돼도 되나. “네? 10일 뒤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달 말께 엄마가 입원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미리 듣긴 했지만, 적어도 2주 이상의 준비 시간은 있을 줄 알았다.
그마저도 입원 ‘예정’이지, ‘확정’은 아니었다. 담당 간호사는 입원 당일 2~3일 전에야 정확한 입원 날짜와 시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무균실에서 자가 조혈모세포(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 무균실에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입원 날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른 환자의 상태가 좋아서 빨리 퇴원하면 엄마의 입원이 당겨지고, 그렇지 않으면 미뤄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입원 예정일에 마감해야 할 회사 업무가 있던 터라, 상사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입원 가능성을 미리 말해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몸이 가벼운’ 내가 간병
입원 전 마지막 골수 검사에서 엄마의 상태를 추정하는 암세포 수치는 0.3%로 나왔다. 골수에서 골수종 세포가 차지하는 비율이 0.3%라는 뜻이다. 다발골수종은 면역세포가 어떤 이유로 변형돼 종양(암)으로 자라는 병인데, 이 변형된 암세포는 엠(M)단백이라는 비정상 항체를 만들어내 신장·골수 등을 공격한다.
담당 주치의는 항암치료 뒤 골수종 세포 수치가 5% 미만이면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할 수 있고, 10% 미만이라도 때에 따라서 이식하기도 한다고 했다. 엄마의 경우엔 초기 골수 검사에서 이 수치가 90%를 넘었는데, 4차 항암 만에 0%대라니,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알라”, 온갖 종교의 감사 언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혈액·소변에서 엠단백 수치도 낮아 기대했는데 예상 밖으로 훨씬 좋네요.”
“예상보다 더 좋다”는 주치의의 말은 엄마의 어깨를 토닥였다.
앞으로 엄마는 5주가량 폐쇄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된다. 치료 전반부엔 준무균실에서 10여일 동안 조혈모세포를 채집한다. 중반부는 무균실에서 2주 동안 강력한 항암제를 투입한 다음 몸속의 암세포를 최대한 없애고, 채집한 골수를 다시 혈액에 주입한다. 후반부는 다시 준무균실로 나와 10여일간 회복하는 과정이다.
준무균실은 보호자나 간병인이 함께 들어갈 수 있고, 무균실은 병실 크기에 따라 환자 혼자 입실하거나 보호자·간병인과 함께 한다. 준무균실 입원 시 병실 밖 복도까지 오갈 수 있지만, 무균실은 치료 기간 동안 환자·보호자 모두 병실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무균실 치료 과정 동안 환자의 면역력이 0에 가깝게 떨어지기 때문에 의료진도 대면 진료를 최소화한다. 환자는 동료 환자도 없이 혼자 혹은 보호자와 함께 고립된 시간을 버텨야 한다. 물론, 준무균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출입할 수 있는 복도라고 해봐야 일직선으로 20~3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간병할 수 있는 사람은 몸이 가벼운 나밖에 없었다. 여동생들은 어린 자녀가 있었고, 남동생은 휴가 내기 쉽지 않은 일을 할뿐더러 엄마 소변까지 받아내야 하는 일을 맡기는 게 껄끄러웠다. 내가 여름휴가와 연차를 더해 2주 휴가를 내기로 했다. 입원 예정 기간 5주 중 엄마가 원하는 기간에 내가 함께 병원에 들어가고, 나머지 기간엔 간병인을 고용할 계획이었다. 2주 휴가를 낼 수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더 긴 시간 간병인과 함께하거나, 보호자 중 누군가는 회사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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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은 내게, 나는 남편에게 “미안해”
“준무균실 입원 기간엔 환자 체력이 상대적으로 좋지만, 보호자가 환자를 도울 일이 많을 거예요. 무균실 입원 기간엔 보호자가 환자를 도울 일은 적지만, 이식으로 환자의 몸 상태가 일시적으로 나빠지는데다 고립감 때문에 환자가 힘들어할 수도 있어요.”
보호자 입실 기간을 고민하는 내게 간호사가 입원 시 마주할 상황을 설명했다. 엄마는 고민 끝에 무균실에 내가 함께 들어가길 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확정된 건 아니었다. 먼저 치료를 받고 있는 무균실 입원 환자의 상태에 따라 엄마가 입원할 수 있는 무균실 크기도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환자 혼자 입실하는 1인 무균실에 배정되면 나는 무균실 입실 전인 전반부를 함께하고, 보호자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2인 무균실에 배정되면 입원 중반부를 함께하기로 했다. 당장 간병하러 들어가야 하는 나로서는 휴가를 언제부터 내야 하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병원은 입원 5일 정도를 남기고서 1인 무균실에 배정됐다고 알려왔다. 무균실에서 혼자 싸워야 한다는 얘기에 엄마가 불안해했다. 그렇다고 2인 무균실 자리가 날 때까지 치료를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드디어 입원 당일, 입원 시 필요한 물품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골수 이식 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피부가 예민해지기 때문에 준비 물품이 까다롭다. 음료도 착즙 음료는 안 되고 멸균 음료만 가능했다. 생수도 여러차례 나눠 마시지 않도록 200~300㎖ 저용량으로 대량 구입해야 했다. 부드러운 칫솔, 멸균 장갑, 뽑아 쓰는 키친타월, 칫솔 소독기구, 상표를 제거한 면 손수건, 일회용 멸균 팬티 등을 캐리어에 담았다. 간병 기간 마음을 넉넉하게 먹으려, 몸을 이완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옷으로 골랐다. 엄마 짐과 내 짐을 합쳤더니 캐리어 2개, 큰 쇼핑 가방 하나가 나왔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 이상하게 두렵거나 무섭진 않았다. 엄마의 파르스름한 두상도 자꾸 보니 낯설지 않고 예뻤다. 엄마의 머리를 쓸어내리면서 “나는 뒤통수가 납작한데, 엄마는 동그랗네. 서양인 두상이네”라고 마음을 달랬다. 엄마가 “그래?” 하고 조금 안도하며, 모자를 썼다.
이윽고 오후 4시, 입원 시각이 다가왔다. 폐쇄병동이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10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걸음 앞에 유리문이 있었다. 무균, 고립, 폐쇄…. 그동안 막연히 생각해왔던 낱말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호출벨을 눌러 엄마 이름을 말하자 유리문이 열렸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적외선 소독기에서 보호자용 가운과 실내화를 꺼내 착용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남편과 여동생, 조카와 인사를 나눴다. 여동생이 내게 “언니, 고맙고 미안해”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서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인사를 나누고, 주먹을 쥔 채 파이팅 자세를 했다.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왔다.
소소
갑작스레 ‘엄마 돌봄’을 하게 된 케이(K)-장녀가 고령화사회에서 청년이 겪는 부모 돌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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