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현의 재난백서] 도시의 덫이 된 하천
수직 제방이 대피 어렵게 해
비 오면 곧바로 대피해야
부산 학장천은 전형적인 도시 하천이었습니다.
하천은 주택과 음식점, 직장이 모여 있는 도심을 따라 이어졌고 하천 옆으론 범람에 대비한 제방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계단을 따라 제방 아래로 내려가면 천변을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나왔죠.
7월 11일 부산 학장천엔 여느 때처럼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오전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고 하천의 수위도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후 3시가 되자 갑자기 시간당 20mm가 넘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상류부터 내려온 물이 하천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만조와 겹쳐 불어난 낙동강의 물도 하천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오후 3시 20분쯤, 60대 여성 A씨는 학장천 산책로에 있었습니다. 물이 불어나자 대피하려 했지만 걷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함께 있던 2명은 가까스로 생존했지만 A씨는 불어난 하천에 떠내려가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도시가 발달하며 마을에 흐르던 하천은 중요한 관리 대상이 됐습니다. 하천이 범람하면 생활 터전에 큰 피해를 줬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대대적으로 하천 정비 사업에 나섰습니다. 아예 하천을 덮어버리기도 했지만, 환경 문제가 대두됐습니다. 또 하천이 도시에 얼마 안 되는 자연 친화적 휴식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하천 옆으로 산책로와 운동 시설을 설치했고 주민의 소중한 여가 공간이 됐습니다.
하지만 하천이 일상 깊숙이 들어오자 재난은 그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하천의 수위가 높아져도 주변에 피해가 없도록 하천을 따라 높은 수직 제방을 쌓았습니다. 이 제방은 범람을 막는 벽이 된 동시에 하천에 고립된 시민의 대피를 막는 벽이 됐습니다. 하천을 걷다 물이 갑자기 차올라 도망치려고 해도 수직으로 높게 쌓은 제방 때문에 위로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이런 구조적 특징 때문에 매년 도시 하천에선 시민들이 고립되는 사고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도시 하천이 한 번 고립되면 나오기 힘든 덫이 된 겁니다.
한강은 폭이 1km나 되는 커다란 강입니다. 폭이 큰 만큼 담을 수 있는 물의 양도 많고 비가 내릴 때도 수위가 서서히 올라가죠.
하지만 도시 하천은 폭이 10~20m 정도입니다. 한강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죠. 이렇게 폭이 작으면 비가 조금만 내려도 수위가 빠르게 상승합니다. 비가 내릴 때 빠르게 불어난 흙탕물이 하천을 따라 무겁게 흘러가는 모습을 다들 보셨을 겁니다.
사고가 난 학장천의 학장교 수위 상승을 살펴보겠습니다. 7월 11일 오후 3시, 수위는 0.18m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분이 지났을 때 수위는 0.4m로 늘어났고 오후 3시 30분, 1.14m까지 올라갑니다. 불과 30분 만에 1m가 높아진 겁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자 수위는 2.15m까지 올라갑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수위가 말그대로 수직 상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고립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도림천 역시 수위가 빠르게 상승하는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림3교는 비가 왔을 때 수위가 1분에 2.62cm씩 상승한다고 말했습니다. 10분이면 26cm가 높아지고 1시간에 157cm나 증가하는 거죠. (도림천에서 발생한 고립 및 실족사고의 원인분석을 통한 개선방안 도출에 관한 연구)
하천 고립 사고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비가 내릴 때 하천에 가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비가 내리고 하천이 통제돼도 산책로에 들어가는 주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MBN이 도림천을 취재한 기사를 보면 물이 잠긴 산책로에서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요.
앞서 말한 것처럼 하천 수위는 순식간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수위가 무릎까지만 차도 제대로 걷기 힘들고 실족을 하면 순식간에 수심이 깊은 곳으로 떠밀려 갑니다. 비가 오면 하천에 들어가선 안 됩니다.
대피 통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천엔 출입구 말고도 위급 상황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대피 사다리가 설치돼 있습니다. 평소 산책을 하다 이 사다리의 위치를 파악해 두고 활용해야 합니다. 다만 이미 물이 높게 찬 경우 무리해서 사다리를 찾아가지 말고 119에 신고를 한 뒤 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구조물을 붙잡고 구조를 기다리는 게 생존 확률을 높입니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시스템 정비를 해야 합니다. 이번 장마철에도 대피 안내방송이 골든타임을 놓친 사례가 지적됐습니다. 대피 안내방송 송출과 하천 통제 기준을 보다 강도 높게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또 시민들이 통제 상황을 잘 알 수 있도록 안내 전광판을 추가로 배치하고 사다리 등 대피 시설 확충도 필요합니다.
올해 장마는 끝났지만 태풍이 몇 차례 더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방심하지 말고 도심의 덫에 걸려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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