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S스토리-역대 메이저리그 도전장 내민 선수들]
정필재 2023. 8. 26. 14:11
1994년 박찬호 다저스 계약 포문
조진호·김병현 등 줄줄이 미국행
유망주 한정… KBO 선수엔 싸늘
‘레전드’ 이승엽마저 ML 꿈 좌절
국제대회 호성적 거둔 후에 관심
류현진 프로선수 진출에 길 닦아
김하성 등 포스팅 전성시대 열어
조진호·김병현 등 줄줄이 미국행
유망주 한정… KBO 선수엔 싸늘
‘레전드’ 이승엽마저 ML 꿈 좌절
국제대회 호성적 거둔 후에 관심
류현진 프로선수 진출에 길 닦아
김하성 등 포스팅 전성시대 열어
클레이튼 커쇼처럼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에서 오래 활약하는 메이저리그(MLB) 1선발이 되고 싶다.”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혔지만, 메이저리그 진출을 택한 마산용마고 장현석(19)이 지난 14일 다저스 입단식에서 밝힌 당찬 포부다. 18번이 적힌 다저스 유니폼을 착용한 장현석은 “제가 좋아하는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영상을 보고 배우려고 한다”며 “MLB에서 최고로 불릴 만한 선수인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와 맞대결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 꿈은 메이저리거”라며 “좋은 시설에서 과학적인 야구를 하면 더 완벽한 선수로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심준석(19)이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선택한 데 이어 올해 역시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혔던 장현석이 태평양을 건너가게 되면서 다시 ‘미국 메이저리그 직행’ 트렌드가 자리 잡는 분위기다.
◆한국 프로야구 진출 대신 미국행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보여준 건 박찬호였다. 박찬호는 한양대 재학 시절인 1994년 1월 다저스와 계약을 맺고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빅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박찬호의 공 하나하나는 모두의 관심사였다.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박찬호는 1994년 4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 이어 6일 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두 경기에서 박찬호는 4이닝 4안타 5볼넷 3실점으로 부진하며 마이너리그행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삼진을 6개나 잡아낼 정도로 구위는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한국 유망주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5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 LA에인절스)가 10만달러에 최경환을 데려갔고, 조진호가 계약금 85만달러, 김병현이 225만달러에 각각 보스턴 레드삭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했다.
1997년 박찬호가 192이닝 14승8패 평균자책점 3.38로 정상급 선발투수로 거듭난 이후 유망주들의 미국 러시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봉중근이 애틀랜타에 진출했고, 김선우가 130만달러에 보스턴을 선택했다. 서재응은 뉴욕 메츠로부터 135만달러를 받았다. 최희섭도 시카고 컵스에 진출하게 됐고, 김재영과 서재환도 각각 보스턴과 메츠에 입단했다.
다만 메이저리그는 고교나 대학에서 뛰던 유망주에 관심을 둘 뿐 한국 프로야구에는 차가웠다. 당대 최고라고 평가받는 선수들을 향한 러브콜은 나오지 않았고,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만 꾸준히 빅리그 도전을 선언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한국 프로야구에 야박했던 메이저리그
‘야생마’ 이상훈이 1995년 LG에서 228.1이닝을 던지며 20승5패 평균자책점 2.01의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고 1997년에는 37세이브를 거뒀지만 빅리그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상훈은 공개테스트 후 60만달러의 제안을 받고 결국 일본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상훈은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두 시즌 동안 128이닝 7승5패 평균자책점 3.30으로 활약하며 기량을 검증받고 나서야 미국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코리안 메이저리거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랬다. 박찬호가 2001년 12월 5년 6500만달러에 자유계약선수(FA)로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했을 때도, 김병현이 그해 애리조나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큰 공을 세우고 반지까지 가져왔어도 KBO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지 않았다.
두산 특급 마무리 진필중은 2002년 시즌을 앞두고 미국 진출 첫 도전에 나섰지만 어느 팀도 포스팅에 참여하지 않았고, 2002시즌이 끝난 뒤 재도전에서도 2만5000달러의 헐값 제안을 받았다. 임창용 역시 2003시즌을 위한 포스팅에 나서지만 65만달러 제안에 일본 검증을 마친 뒤 미국 무대를 밟았다. 구대성 역시 일본을 거치고 나서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국민타자’ 이승엽에게도 메이저의 문턱은 높았다. 이승엽이 2003년에 한 시즌 아시아 최다홈런(56개)을 친 뒤 빅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을 받고 역시 일본 무대로 진출해 리그를 호령했다.
◆포스팅 진출 전성시대
수많은 선수가 빅리그에 도전했지만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동안 특급재능이라고 평가받은 선수들은 차가운 경쟁 속에서 서러운 마이너리거 생활을 거쳐야 했다. 미국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선수들도 많았지만 일부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기도 했다. 이후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이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 등 국제대회 성적까지 나온 이후에야 한국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박찬호가 유망주에게 빅리그 길을 열어줬다면 류현진은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MLB로 가는 방법을 제시했다. 2013년 포스팅 금액으로 2573만7737달러를 받고 다저스에 입단했고 처음으로 KBO에서 빅리그 직행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강정호와 박병호가 포스팅을 통해 빅리그로 떠났다. 일본에서 성공을 발판으로 빅리그에 나서는 사례도 늘어났다. 오승환과 이대호는 2016년 각각 세인트루이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에 진출했다. 김현수와 황재균 역시 한국에서 곧바로 미국 진출에 성공했지만 김하성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쓸쓸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 야구인은 “한국 스타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해 성공해야겠다는 마음보다 국내 복귀 후 빅리그 경험을 연봉 협상 조건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간절하지 않은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MLB 구단들 역시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에 어린 선수를 발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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