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삼중주단 '트리오 반더러'…악보 이상을 들려주는 명연주

강애란 2023. 8. 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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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공연…피아노 트리오 걸작의 향연
피아노 삼중주단 '트리오 반더러'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프랑스 피아노 삼중주단 '트리오 반더러'가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여름 음악 축제에서 악보에 적힌 것 이상의 감동을 주는 명연주를 들려줬다.

트리오 반더러는 파리 고등음악원 동문인 장 마크 필립 바자베디앙(바이올린), 라파엘 피두(첼로), 뱅상 코크(피아노)가 1988년 결성한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노 삼중주단이다. 반더러(Wanderer)는 독일어로 '방랑자'를 뜻한다.

지난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등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피아노 삼중주 걸작들이 연주됐다. 관객들에게는 친숙한 작품을 탄탄한 해석으로 만나는 기회이자, 피아노 삼중주란 장르의 독특한 음향적 매력을 체험할 수 있는 귀중한 무대였다.

1부 첫 곡으로는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5번 '유령'이 연주됐다. '유령'이란 곡의 별명은 2악장 첫머리의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갑작스러운 선율의 이탈과 단절로 충격과 의외성이 드러나는 중기 베토벤의 강렬한 표현력을 잘 드러내는 명작이다.

트리오 반더러의 연주는 그야말로 피아노 삼중주의 표본과도 같았다. 피아노와 두 현악기 사이의 균형은 완벽했다. 그들 사이의 음향적 질감도 잘 어우러졌다. 굵기가 변하는 붓글씨처럼 구불구불하게 변하는 두 현악기의 음색과 둥그렇게 퍼지는 피아노의 울림이 엮이는 것 같았다. 세 사람 간의 호흡은 물론이고 오랜 세월 가꿔 온 그들만의 소리 자체가 관객들을 음악 안으로 몰입시켰다.

1악장은 빠른 템포로 하행하는 음들로 시작하는데 갑자기 조성을 이탈해 듣는 이들에게 충격을 안긴다. 그러다 곧바로 첼로 선율이 부드러운 선율로 노래한다. 이러한 대조 효과는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트리오 반더러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이 대조 효과를 탁월하게 표현했다. 2악장에선 고요한 불안감을 자아내는 현악 부분과 비명을 지르는 듯한 피아노의 포르테시모(매우 세게) 연주법이 날 선 대비를 이뤘다. 대단한 응집력을 들려준 3악장에서도 트리오 반더러는 재치 있는 의외성을 곳곳에 선보이며 빈틈없이 곡을 '완성'했다.

피아노 삼중주단 '트리오 반더러'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다음 연주한 멘델스존의 피아노 삼중주 1번에서는 트리오 반더러의 팔색조 매력이 드러났다. 앞선 베토벤 곡에선 기본 악상에 충실하되 구조적이고 입체적인 연주를 보여줬다면, 멘델스존 곡에서는 각 악장의 개성을 더 풍성하게 재현했다.

1악장의 개시부에서는 베토벤과의 분명한 음향적 차이가 느껴져 놀라울 정도였다. 더 풍성해진 첼로의 저음, 보다 유려하게 빛나는 바이올린 연주에서 낭만성이 물씬 느껴졌다. 2악장은 아름다운 선율로 유명한 악장으로 트리오 반더러는 감정 과잉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듯 다소 빠른 템포를 취했다. 생생한 흐름 속에서도 서정적인 음조(소리의 높낮이와 강약)를 살려내 프랑스의 우아함을 제대로 경험케 했다.

멘델스존 특유의 발랄함이 돋보이는 부분은 그야말로 반짝거리게 연주됐다. 트리오 반더러는 불안정하게 떠도는 화성과 미묘한 표현으로 앞서 들은 베토벤의 '유령'의 음향을 떠올리게 했다. 조성적으로 가까운 곡을 1부에 함께 묶은 노련함을 엿볼 수 있었다. '유령'은 D장조, 멘델스존 1번은 d단조다.

2부에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삼중주 2번이 연주됐다. 슈베르트 최후기 작품으로 장조와 단조 사이를 모호하게 떠돌고, 서정적인 선율과 그로테스크하고 공포스러운 어두움이 교차하는 독특한 개성을 지녔다.

트리오 반더러는 1악장에 나타나는 장조와 단조의 미묘한 색채변화, 2악장의 서정적인 선율과 공포스러운 타격 사이의 대조를 탁월하게 해석해냈다. 전곡을 마무리하는 4악장의 장대한 진행 과정 또한 대단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음향은 경쾌하되 가볍지 않고, 밀도 있되 과장되지 않았으며, 각 성부는 선명하게 귀에 다가왔다.

세 악기의 앙상블은 시종일관 역동적인 입체감을 보여줬다. 소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움직였다. 어느 한 악기가 솔로 선율을 연주할 때면 다른 악기들이 음향적으로 뒤로 물러서고, 현악이 듀오로 어우러지거나 혹은 경쟁하듯이 도드라질 때 피아노는 가만히 화성의 빈틈을 채우는 등 변화무쌍했다.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어디론가 떠나는 나그네처럼 변화 속에 생명력을 담아낸 연주. 그들이 왜 최고인지 알 수 있는 명연주였다.

피아노 삼중주단 '트리오 반더러'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ie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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