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김용훈 감독, 이중성의 고찰
[Dispatch=이명주기자] 쿠키를 구웠다. 굽고, 또 구웠다.
미모를 거꾸로한 모미, 그의 삶도 밤낮이 거꾸로다. 모미를 애모하는 주오남. 현실에 (숨어) 있을 법한 문제적 외톨이다.
"자세히 보면, 모미만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아니에요. 모두 하나 같이 시꺼먼 속내를 감추고 있어요.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새로운 가면을 쓰고 벗죠."
김용훈 감독은 문득, 궁금했다. 마스크를 벗은 모미, 마스크를 쓴 모미, 무엇이 진짜일까. 주오남은, 김경자는?
그의 시선에서 '마걸'을 보고 싶었다. 아니, 보여주고 싶었다. '디스패치'가 김용훈 감독을 만났다.
◆ '마스크걸'의 시작
'마스크걸'은 블랙 코미디를 가미한 스릴러물이다. 직장인 김모미가 마스크를 쓴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총 3부로 공개된 웹툰 130화 중에 1부와 3부를 중심으로 시리즈를 완성했다.
"원작이 동시대 문제들을 많이 담고 있어요. 외모지상주의, 종교적인 문제, 삐뚤어진 모성 등 사회 문제가 곳곳에 있더라고요. 지금 이 시기에 드라마로 보여줘도 되겠다 싶었죠."
김용훈 감독은 원작을 접한 뒤 (본인 표현에 따르면) '후루룩' 시나리오를 썼다. "양면성과 이중성을 지닌 등장 인물들에 매력을 많이 느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겐 비호감이고 불편할 수 있죠. 그런데 이들이 왜 여기까지 왔을까,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 고민할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까지 걸린 시간은 한 달 남짓. 말 그대로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넷플릭스 측이 호감을 보이면서 7회 규모의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을 확정했다.
이제 남은 건 캐스팅. 김용훈 감독은 각본 집필 단계에서부터 3인 1역(김모미 역)을 염두에 뒀다. 쇼걸 아름은 나나가, 죄수번호 1047은 고현정이 맡았다.
마지막으로 BJ 모미, 신예 이한별이 '운명'처럼 찾아왔다.
"폭넓게 찾아보고 싶었어요. 모델 에이전시도 수소문했죠. 조감독이 캐릭터 설명하고 나오는데 리셉션 데스크 모니터에서 이한별 사진을 발견했어요."
이때 이한별은 기로에 서 있었다. 배우의 꿈을 포기하려고 했던 것.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게 모델 에이전시 프로필 사진 접수였다.
"진짜 운명적이었어요. 이한별과 만나서 대화를 나눴는데 배우가 가진 생각이나 태도, 그 자체의 인간적인 매력이 크게 느껴졌어요. 캐스팅에 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박수 터진 호연
'마스크걸'은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아역 연기자부터 중견 배우까지 혼신의 열연을 펼쳤다. 일각에선 '연기 차력쇼'라는 평도 나왔다.
특히 안재홍은 웹툰을 집어삼킨 수준이다. 정수리 탈모, 얼굴에 난 여드름, 배만 볼록 나온 체형 등 주오남의 신체적 특징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주오남은 불편한 요소들을 한 데 모아놓은 캐릭터잖아요. 시청자가 조금이나마 이 인물에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호감도 높은 배우가 맡아줬으면 했어요."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일례로, 안재홍은 시나리오에 없던 일본어 대사들을 추가했다. 극중 생일파티 신은 전부 안재홍이 생각해 낸 멘트다.
예상 못한 애드리브도 있었다. 일명 '고백 공격' 장면에서 나온 '아이시떼루'(あい-する)는 안재홍의 즉흥적인 대사였다.
"갑자기 '사랑합니다. 아이시떼루'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옆에 있던 스태프들이 웃더군요. 처음엔 당황했는데 다시 (촬영 신을) 보니 '주오남 같다' 생각이 들었어요."
고현정은 '마스크걸'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묵직한 존재감으로 죄수번호 1047을 그렸다. 삶의 의지를 잃은 모습부터 딸을 향한 모정까지 눈빛 하나로 표현해냈다.
"안해줄 거라 생각하는데 빠르게 답해주셔서 놀랐어요. 머리도 (제안했던 것보다) 더 짧게 자르시고 역할을 위해 살을 많이 빼셨죠. '그만 빼도 될 것 같다' 할 정도로요."
김용훈 감독이 꼽은 최고의 신은 독방에서 돌아온 김모미가 남다른 신앙심을 드러낸 장면이다.
"새롭게 태어났다는 식으로 홀리한 게 있잖아요. 그때 고현정의 말투와 표정이 너무 놀라웠어요. 약간 아리송한 거죠. 저게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정말 어려운 표현인데 완벽하게 해주셔서 저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습니다."
◆ 의도적인 변주
원작이 있지만, 없다. 그만큼 많은 부분을 덜어냈다. 캐릭터의 성격을 바꾸고 결말까지 완전 다른 방향으로 각색했다.
무엇보다 대립 관계였던 김모미와 김춘애(미애)를 조력자로 그렸다. 비슷한 아픔을 지닌 여성들이 함께 연대하며 우정을 쌓는 플롯으로 변경한 것.
"원작자도 애초 모미와 주오남의 로맨틱 코미디로 기획했다가 스릴러가 됐다고 하잖아요. 춘애 이야기를 하려는데 도저히 두 사람이 악의 싸움을 하는 걸 못 보겠더라고요. 모미가 춘애의 죽음으로 심경 변화를 느끼고 자수하는 걸로 바꾸게 됐어요."
드라마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사체까지 훼손한 김모미를 작품 전면에 내세울 순 없었다.
김용훈 감독은 "원작은 그 힘으로 가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실사화했을 때 2번 살인한 인물을 계속 따라가기엔 힘겨울 수 있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시청자와 원작 팬 모두를 갸우뚱하게 만든 설정도 있었다. 김모미는 김춘애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면서 친부 정체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주오남이 딸 모미와 혈연 관계였다.
"친부는 주오남이 맞아요. 근데 모미가 크게 신경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냥 본인 아이인 거죠. 정확하게 누구 아이라는 걸 밝히지 않았으면 했어요."
김경자는 자신의 아들(주오남)을 죽인 김모미를 끝까지 추적, 복수를 감행한다. 심지어 그의 딸(김미모)을 쫓아다니며 '살인자의 아이'라고 소문을 낸다.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려고 했어요. 비뚤어진 모성을 지닌, 종교적 신념이 있는 인물에게 가장 비극적인 건 뭘까 고민했죠. 눈앞에 있는 손녀가 효도하겠다고 하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려고 하는 게 가장 비극적이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차기작 계획을 물었다. 김용훈 감독은 "다음 작품도 조금 불편할까" 하는 질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불편한 장르를 추구하냐고요?(웃음) 이런 인물들을 좋아하나 봐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도 인물들한테 끌렸고, 마스크걸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또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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