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2023] (20) 울산대 권예준 "항상 간절함을 갖고 농구해왔다"

조형호 2023. 8. 2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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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들의 美생을 위해’ 2023 KBL 신인드래프트를 빛낼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 보자.
[점프볼=조형호 인터넷기자] 스무 번째 미생은 울산대 권예준(G, 178cm)이다. 한 번의 실패를 딛고 프로 진출을 꿈꾸는 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농구부 형들이 멋있었던 어린이, 농구선수의 꿈을 키우다
부산에서 태어난 권예준은 3형제 중 막내다. 둘째 형은 함께 드래프트에 도전하는 쌍둥이 권예찬. 권예준은 어릴 적 김해로 이사간 뒤 태권도를 시작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태권도를 그만둔 후 방과 후 농구교실에서 농구를 접하게 됐다.

취미반을 통해 농구에 흥미를 느낀 그는 같은 반 농구부 친구의 권유로 엘리트 농구부에 가입했다. 당시 권예준의 부모는 큰 형이 엘리트 축구선수로 활약하고 있어 반대했지만 권예준과 그의 쌍둥이 형 권예찬의 간절함에 끝내 농구부 가입을 허락했다.

“큰형의 힘든 부분을 아셔서 그런지 부모님께서 처음엔 농구부 가입을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작은형(권예찬)과 제 의지를 보시곤 마음을 바꾸셨죠. 이후에는 적극적인 지원과 응원을 보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농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죠.”

간단한 테스트를 치른 뒤 5학년 하반기쯤 농구부에 가입한 권예준이었지만 곧바로 팀 훈련에 합류하지 않았다. 형들의 경기를 보며 농구의 감을 익혔고, 형들을 응원하며 농구에 대한 열정을 더욱 키웠다.

“농구부에 들어가고 형들 대회를 처음 따라다녔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형들이 4관왕 정도 했는데 양준우 형을 필두로 정말 잘했거든요. 그때 형들을 보면서 농구선수의 꿈을 키웠어요.”

#형과 함께 선택한 고등학교 진학, 독으로 작용하다
6학년 때부터 농구공을 잡고 정식으로 농구를 시작한 권예준은 임호중으로 진학을 택했다. 하지만 불운이 따랐다. 초등학교 때만 3명의 지도자를 겪은 그는 임호중에서도 코치가 계속 바뀌며 혼란을 겪었다. 체격도 크지 않아 주전 경쟁에서도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1학년 때는 신체 조건이 너무 약해서 기회를 받지 못했고, 2학년 때부터 출전 기회가 조금씩 늘어났던 것 같아요. 경기를 자주 못 뛰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새벽 운동과 야간 운동을 쉬지 않고 했던 기억이 나요. 기본기 훈련에 치중하다 보니 기량이 조금씩 좋아졌죠(웃음). 중학교 3학년 때 소년체전에서 대전중을 만난 적이 있어요. 모두가 저희의 열세를 예상했지만 이겼거든요. 그 경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중학교 여정을 마친 권예준은 고등학교 진학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권예준과 권예찬이 각각 다른 학교로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김해가야고의 코치의 지도력이 그들의 결정을 바꿨다. 더불어 중학교 코치도 김해가야고로 진학을 추천했다.

“코치님 영향도 있었고, 부모님도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을 걱정하셨어요. 김해가야고가 인원이 부족해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듣기도 해서 형과 함께 진학하게 됐습니다.”

#2부 대학 결정을 되돌아본 권예준
“김해가야고의 코치님을 보고 갔지만 저희가 진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코치님이 바뀌셨어요. 이후에도 6번 정도 바뀐 것 같아요. 코치님의 스타일에 적응할 만하면 바뀌시고 또 적응할 만 하면 다른 분이 오시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기술적인 부분이나 기본기는 개인 운동에 의존해야 했고, 팀 훈련의 거의 체력 훈련만 했던 것 같아요.”

그가 2학년이 되고 김해가야고가 최초로 전국체전 대표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신입생 후배들이 훈련에 적응하지 못하며 팀을 이탈했다. 권예준과 권예찬, 그리고 한 명의 동료만이 훈련에 참가했다. 잦은 지도자 교체와 팀의 어려운 상황에 권예준은 농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 때 안 좋은 일들이 겹치니 혼란스럽더라고요. 농구를 그만둘 생각에 1부 대학 면접을 보러 가지 않았어요. 2부 대학에 진학해 취미로만 농구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농구를 다시 안 하겠다는 생각으로 2부 대학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농구에 대한 간절함이 다시 생길 줄 알았으면 1부 대학 면접을 보러 갈 걸 그랬나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기서(울산대)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고, 학업적인 부분도 많이 느꼈어요. 농구에 대한 생각도 다시 정리할 수 있게 된 곳이라 후회는 없어요.”

#“항상 간절함을 가지고 농구를 했습니다”
2부 대학인 울산대로 진학한 권예준은 지난 19년도 KBL 신인드래프트에 도전했지만 쓴맛을 봤다. 이후 군에 입대했고, 전역한 후 다시 한 번 도전을 꿈꾸고 있다. 작년에도 군 전역 후 드래프트 도전을 위해 몸을 만들었지만 현실적으로 군 생활동안 떨어진 감각을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피드는 1부 대학 선수들에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안정적인 볼 핸들링과 강한 멘탈도 제 장점이에요. 2부 대학 선수로서 항상 간절함을 가지고 농구했기 때문에 궂은 일에도 적극성을 가지고 임할 수 있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군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 또한 장점이고요.”

“여태까지 농구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신 김해 아저씨, 윤용근 담임 목사님, 공경식 선배님, 이한준 교수님 등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아요. 꼭 결실을 맺을 수 있게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결과 얻겠습니다.”

KBL의 변준형과 NBA 카이리 어빙을 롤모델로 삼은 권예준. 2부 대학이라는 장애물을 딛고 드래프트에서 이름을 호명받을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사진_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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