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광기 사이…LK99·맥신·양자컴 덮은 과학 투자 열풍 괜찮나
"투자시장 연결 의도 순수하지 않아" 걱정…연구진 피해 등 후폭풍 우려도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상온 초전도체 'LK-99', 신소재 나노물질 '맥신', '상온 양자컴퓨터'. 현재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테마주들의 아이템들이다. 공통점은 과학기술 성과물이라는 점.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실제 실용화 가능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묻지마' 투자 열풍에 연구 본질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상존한다.
기초 과학의 특성상 연구 결과를 '100%' 확신하기 어렵고, 실험적 입증에 성공하더라도 상용화까지는 수년 이상 장기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 과열이 반복되면 애꿎은 연구자들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학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 김재욱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연구팀이 상온에서도 대규모 양자 얽힘 현상을 구현할 수 있는 양자 소재 후보 물질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이후 관련 테마주가 혼조를 보이고 있다.
당초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의 특성을 이용해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수백만배 이상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안정적 양자상태 구현을 위해서는 절대영도(-273.15도) 수준의 극저온 환경이 필요했다.
원자력연구원 연구팀은 터븀인듐산화물(TbInO3)이 양자컴퓨터 소자 등에 쓰이는 양자스핀액상(QSL) 물질이 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상온 양자컴퓨터 구현 가능성을 제기했다. 원자력연은 이같은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에 게재됐다고 지난 23일 발표했다.
원자력연의 발표 이후 코스닥 시장에서는 우리로, 엑스게이트 등 양자컴퓨터 관련 주들이 대규모 상한가(전일 대비 30% 상승)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양자컴 관련 주는 혼조세를 보이다 지난 25일 대부분 하락세로 전환하며 장을 마감했다.
LK-99부터 불붙은 과학기술 테마주 열풍…상·하한가 반복하며 출렁이는 그래프
기초 과학, 성과 있더라도 상용화 요원…"황우석 트라우마 떠올라, 가이드라인 필요"
최근 '과학 테마주' 광풍 현상은 지난 7월 상온 초전도체 'LK-99'부터 불이 붙었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팀이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LK-99 관련 논문 2편을 게재한 것이 발단이다.
상온 초전도체가 자기부상열차, 에너지 손실 없는 전선, 초고속 컴퓨터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LK-99 논문 발표 이후 서남, 모비스, 고려제강 등 관련 주는 이달 초 연속 상한가 행진을 이어갔다. 이후 국내외 연구진이 LK-99에 대한 검증이 진행되면서 긍정·부정 전망에 따라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혼조를 보였다.
LK-99의 뒤를 이은 것은 꿈의 신소재로 불린 나노물질 '맥신'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이승철 한·인도협력센터 책임연구원 연구팀이 지난 17일 맥신 대량생산의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또 다시 눈길을 끌었다.
금속층과 탄소층이 교대로 쌓인 구조로 이뤄진 맥신은 전기전도성도 높고 여러 금속화합물과의 조합이 가능해 반도체·전자기기 등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표면 두께가 1nm(나노미터·10억분의 1m)로 상당히 작고, 분자 분석 등에도 장시간이 걸려 지난 2011년 처음 개발된 이후 대량생산이 사실상 불가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KIST 연구팀의 발표 이후 휴비스, 나인테크, 태경산업 등 관련 주는 LK-99와 판박이로 21일까지 급등세와 함께 연속 상한가를 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2일부터는 다시금 주가가 급락하며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는 양상이다.
이처럼 LK-99, 맥신 등 테마주의 주가가 출렁이자 아예 관련 기업들은 이같은 연구 결과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학계에서는 이같은 투자 광풍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는 것은 좋지만, 무분별한 투자로 인해 개미들의 피해가 커지면 과학 멸시 풍조와 함께 연구자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최근 많은 관심을 얻은 LK-99, 맥신, 상온 양자컴퓨터 등은 기초과학의 특성상 장기간에 걸쳐 수많은 연구와 실험, 검증이 필요하다. 이같은 과정을 모두 거치더라도 과학계는 결코 '100%'라는 확신을 섣불리 내놓지 않는다.
기초연구 단계에서 확신을 얻더라도 이같은 기술이 실제 산업계에 적용돼 상용화되기까지는 수년 이상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의 연구 성과 발표가 관련 기업의 실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과거 '황우석 쇼크'라는 선례가 있는 만큼 학계에서는 연구 성과와 자본 시장의 연결을 더욱 경계하는 추세다.
지난 2004년 황우석 박사가 복제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하며 당시 산성피앤씨, 마크로젠 등 줄기세포 테마주들은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하지만 이후 황박사의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관련주들이 무더기 하한가를 기록했다.
최근 국내 연구진들의 성과 발표 이후 관련 주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과거 줄기세포 테마주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최근 일련의 발표들 덕분에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이런 성과 발표가 과학기술로 끝나는게 아니라 투자시장과 연결되는 건 과학계 입장에서도 또 다른 영역이다. 연구 성과와 주식투자를 연결 짓는 집단의 의도가 결코 순수하지 않을텐데 자칫 잘못해서 연구자들이 휩쓸리거나 해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학계에는 황우석 사태라는 안 좋은 트라우마가 뿌리 깊게 남아있다"며 "최근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몰려있을 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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