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지정때 고증 더 철저해야” 이순신 칼 국보로

2023. 8. 2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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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고증, 입증 방법 제시 안해
추사 김정희의 난초그림 보물 지정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문화재청은 25일 ‘이순신 장검(李舜臣 長劍)’을 국보로 지정했다.

그간, 이번 이순신 장도(장검)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과학 검증 필요= 기우(杞憂)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과거 국보, 보물 지정 때 정실, 청탁, 부실 고증에 의한 것들이 있었으며, 이번 이순신 장검 역시 보다 철저한 고증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순신 장검. 일본도 논란이 있었다.

국보,보물로서의 가치가 훼손되는 근거가 나올 경우, 승격 심사과정에서 ‘당시 일본 도검기술도 발달해 충무공측이 일부 차용’ 등의 설(說)을 근거로 외부의 지적을 무마했던 일련의 과정 등을 즉시 되돌아보고 정밀한 재검증을 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쟁에서 사용되었느냐, 사용되었다면 왜 흔적이 없느냐, 가문이 소장용으로 보관하던 것일 뿐이었는지 여부 등등 매우 치밀한 확인과정을 거쳐 승격 여부를 토론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일부 재야 학자들은 탄소연대기 측정 등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어쩌면 간단히 해소할 수 있는 문제인데,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칼의 승격을 원하는 쪽의 세세한 주장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방법론에 대한 설명이 전혀없다는 점도 문제 삼고 있다. 철저하지 못한 고증은 영웅의 명예에 흠집을 낼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 속에는 기존에 옥로(玉鷺: 갓 위를 장식하는 옥 공예품), 복숭아 모양 잔과 받침, 요대(腰帶, 허리띠)만 있었으나, 이번에 요대를 보관했던 ‘요대함(腰帶函)’을 추가해 보물로 확대지정했다.

요대함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난초 그림인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 기장 고불사 ‘영산회상도’, 파주 보광사 동종, ‘불조삼경’ 등 4건도 보물로 지정 고시했다.

▶장도와 장검= 2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보로 지정된 이순신 장검은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되었던 칼로, 길이가 약 2m에 달하며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한 쌍(두 자루)이 각각 칼집을 갖추고 있다.

장검1의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구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이, 장검2에는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충무공전서’(1795)의 기록과 일치한다.

나무를 깎아 만든 칼집에는 몸에 찰 수 있도록 가죽 끈을 매달았으며, 칼자루 속 슴베에 새겨진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이라는 글귀로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다.

이순신 장검은 조선시대 군용 도검 형식이다. 나무틀 위에 어피를 감고 주칠(누런색이 조금 섞인 붉은색의 칠)을 한 칼자루,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돌기를 만들어 칼자루 표면에 부착한 금속판, 은입사(청동이나 철, 구리 등 금속에 은실을 이용하여 문양을 넣는 세공 기법) 기법으로 장식한 전통무늬, 칼날에 새긴 명문과 물결무늬, 칼집의 패용 장식과 가죽 끈, 칼집 상단의 테두리와 하단의 마개 등은 모두 조선의 도검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양식들이다.

이 칼에는 일본 도검의 요소도 일부 적용되는 바람에 일본도라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예고 때엔 이순신 장도라 했으나, ‘검’이라는 단어는 권위와 의례와 관련되어 칼의 격을 높일 때 사용한다는 점, 오랜 기간 ‘장검’으로 인식되고 불렸다는 점을 인정하여 ‘이순신 장검’으로 고쳤다.

불이선란도

▶새 보물들=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는 10대 때부터 묵란(墨蘭)을 즐겨 그렸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난초를 서예의 필법으로 그려야 한다는 자신의 이론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달준(達夋)이라는 인물에게 그려준 이 작품은 화면 가운데 난초를 옅은 담묵으로 그리고, 주변에 회화사상 보기 드문 수준의 높은 격조(格調)를 담은 제발(題跋)을 4군데에 썼다. 글씨는 여러 서체를 섞어 썼으며, 글자 모양과 크기에 차이가 있다.

고불사 영산회상도

기장 고불사 영산회상도는 화기에 있는 기록을 통해 1736년(영조 12)에 제작된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이다. 제작한 화승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특색 있는 머리 모양, 여래를 중심으로 짜임새 있고 안정적으로 구성된 구도와 배치, 채도가 낮은 적색과 녹색의 강한 대비 등으로 볼 때 경북지역, 특히 팔공산 일원에서 활약한 의균(義均)화파의 화승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영축산에서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비단 바탕에 색을 칠해 표현하였는데, 꽃잎형 광배를 갖추고 불단 형식 대좌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 8위의 보살과 사천왕, 십대제자 등의 권속들을 위계와 역할에 맞게 좌우로 배치하였다.

석가 신앙과 아미타 신앙의 융합을 보여주는 자료로써 조선 후기 불화의 형식과 신앙 변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라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파주 보광사 동종

파주 보광사 동종은 주성기(鑄成記)를 통해 천보(天寶)가 청동 300근을 들여 1634년(인조 12) 제작하였음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동종이다. 중국종의 형식에 우리 고유의 미감을 반영하는 조선 전기(15~16세기) 동종의 새로운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세 줄로 만든 횡대로 종 몸체가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는데, 상단에는 분할주조방식을 엿볼 수 있는 형틀 분리의 모습이 보이며, 하단에는 반듯한 해서체로 적은 주성기가 보이는데 이를 통해 동종의 제작연대와 목적, 봉안 지역과 사찰, 발원자와 후원자, 장인과 재료 등 중요하고 다양한 내력이 분명하게 확인되어 사료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석왕사 불조삼경

석왕사 소장 ‘불조삼경’은 원나라 판본을 바탕으로 1361년(공민왕 10) 전주의 원암사(圓嵓寺)에서 번각한 목판본이다. 중국 원나라 고승인 몽산(蒙山) 덕이(德異, 1231~1308)가 석가(釋迦)와 조사(祖師)가 설법(說法)한 3가지의 경전을 결집한 불서(佛書)이다. 불교의 교훈적 가르침을 쉽게 설명하고 있어 불교 경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을 주는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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