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섣부른 공표'가 초래하는 권력 자원의 침식
어제(25일) 국회에서는 해외 토픽을 방불케 하는 진위 논쟁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금융 감독의 수장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술이 덜 깬 채 소관 상임위원장인 백혜련 정무위원장을 방문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논란이 인 것입니다. 금감원은 곧바로 "방문 당시 취한 상태였다는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냈지만, 정무위원장실에서는 명확히 부인하지 않으면서 종일 여의도가 술렁였습니다.
사실 금감원장과 정무위원장의 면담은 드물지 않게 있는 일이고, 둘 사이에 있었던 상황이나 대화가 기사화되는 건 극히 드문 일입니다. 그럼에도 만남이 이렇게 화제가 된 건 바로 전날 금감원이 정치권에 파문을 던지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금감원은 전 정부 시절 파문을 낳았던 '3대 펀드 (라임ㆍ옵티머스ㆍ디스커버리) 비리' 추가 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민주당 다선 국회의원이 2억 원의 특혜성 환매를 받아갔다고 공개했는데, 곧 언론보도를 통해 이 인물이 민주당 4선 김상희 의원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섣부른 공표가 초래하는 권력 자원의 침식
김상희 의원은 곧바로 항의성 기자회견을 열고 금감원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직접 투자가 아닌 증권사 미래에셋을 통해 라임 펀드에 투자했으며, 미래에셋의 환매 권유를 받고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환매했는데, 무슨 근거로 '특혜'라고 발표했느냐는 것입니다. 잇따른 검찰 수사로 독이 오른 민주당도 공세에 나섰습니다. '이제는 검찰을 넘어 행정기관에서까지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공표하느냐'는 게 공세의 요지였습니다. 한정애ㆍ최강욱ㆍ박주민 의원 등이 농성에 동참한 것을 넘어 민주당은 정무위 차원의 반격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정무위에서는 '이복현 원장의 매제가 미래에셋의 준법감시 책임자인데, 만약 미래에셋을 통해 투자한 김상희 의원 환매가 '특혜'라면 매제부터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저는 SBS 법조팀의 일원으로서 지난 2019년 라임 펀드 권력형 비리 사태를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만났던 펀드 사기 피해자들과 당시 알게 됐던 라임 사건의 구조를 생각해 보면, 다선 국회의원이 펀드 붕괴 직전 어떻게 일찍 환매를 받았는지에 대해서 분명 살펴봐야 할 점들이 있어 보입니다. 더욱이 김 의원이 환매받은 돈은 라임 펀드의 구조상, 다른 투자자들의 투자 손실금으로 충당됐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면밀한 수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번 소동을 보면서 '꼭 이런 방식으로 일이 추진되어야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얼마 전 서울 남부지검 금융범죄합수부로 넘겨져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금융범죄합수단을 폐지하면서 금감원과 검찰의 유기적인 협력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현 정부 들어 금감원과 검찰이 공조의 강도를 높여나가는 맥락에서 이뤄진 조치입니다. 문제는 금감원 발표로 이 발맞춤이 지나치게 빠르고 자세히 드러나면서, 양 기관의 부담이 가중되고 공조의 효과가 반감될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실종되는 '위험분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권력집단이 다원성을 확보하기보다는 일사불란한 협업을 택하는 건 하나의 정치적 선택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매번 즉각적이고 즉자적으로 가시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잼버리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국회 상임위가 열릴 때, 여당 의원들은 장관 출석이 불필요하다고 발언하고 행정부의 장관은 보조를 맞춥니다. 야당 의원들은 출석하지 않은 장관을 찾겠다며 화장실까지 뒤지는 촌극이 잇따릅니다. 잼버리 사태의 또다른 책임 당사자인 전북지사 출석에 민주당이 어깃장을 놓았다는 게 명분이지만, 장관이 일단 출석 한 뒤 야당에 협조하지 않는 방식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민주당이 이화영 전 부지사 입을 막으려 조직적 사법방해를 하고 있다'고 일갈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은 민주당 소속 의원에게 사법방해 참고인 출석을 통보하고, 이는 곧바로 기사화됩니다. 지난 정부 법무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이 SNS에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내며 시끄럽게 벌였던 권력 운용 방식은 정권 교체 후에도 조금 다른 조성으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거대 야당 방해를 뚫고 전 정권의 '신적폐'를 빠르게 일소하기 위해서는 연합 작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러한 발맞춤이 지나치게 명시적으로 가시화될 때 생기는 부작용도 분명합니다. 그중 하나로 실패에 따른 부담을 구성원 모두가 동시에 져야 하는 '위험(리스크)의 집중화'를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원 사격은 말 그대로 '지원' 사격입니다. 역할분담과 강도 조절이 필요합니다. 아직 구속영장이 청구되지도 않은 상황 속, '이재명은 구속영장을 받아라'는 말의 포화가 쏟아지면서, 어느새 수사의 상수는 '영장 청구'가 되어버렸습니다. 구속 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범죄라고 해서 혐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구속 영장이 기각되더라도 유죄가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수사 기관의 영장 청구가 기각되거나, 기소가 무죄로 판단된다고 해서 정치적 비판이 의미 없어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정치 탄압' 프레임 홍보와 함께 정부-여당의 일사불란한 '영장청구 여론전'이 진행되면서 기형적인 형국이 만들어졌습니다. 총선을 앞둔 야당 대표의 정치적 유무죄는 물론, 수사기관과 집권 세력의 신뢰와 권위가 영장판사의 한 명의 손에서 결정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형사 합의 재판부도 아닌 영장전담판사 개인이 이 엄청난 핵실험의 스위치를 쥐게 된 상황은 사법부에게도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 '위험 집중화'의 또 다른 실패 사례로는 검찰총장을 잡는데 전체 집권 세력이 뛰어들었다가 공격 대상을 대선 후보로 만들어버린 지난 정부와 여당을 들 수 있겠습니다.
역풍을 부르는 '공표'와 역풍을 뚫는 '공표', 그리고 시스템의 부담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리스크가 우리 사회 '시스템'의 권위를 직격해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내는 일입니다. 지난 정부 시절 집권 여당의 '검찰 개혁', '검수완박' 광풍이 불어 닥쳤지만 검찰이 형사사법 시스템의 한 축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준사법기관으로서의 검찰권이 완전히 사라져선 안된다'는 여론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식된 권위가 채 회복되기도 전에,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몇몇 수사들, 심지어 그 수사의 한 부분인 '영장청구 행위'는 정치 세력들이 벌이는 사생결단의 결정패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검찰이라는 중요한 기관의 운명도 이 정치적 사생결단의 결과와 점점 동기화되고 있습니다. '검찰'이 어느 정파에 치우치지 않는 준사법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만 기관의 권위와 존립 근거를 장기적으로 공고화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분명 좋지 않은 일입니다.
이처럼 권력 시스템의 각 분야들이 압착된 상태로 리스크를 한데 짊어지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권력 기관과 집단들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협응 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서로 간의 발맞춤을 바로바로 가시화하며 일사불란함을 과시하는 건, 판의 규모와 함께 판의 구조적 리스크까지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정치 세력인 정당은 지지의 돌파구를 '수사'가 아닌 '정치'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좀 더 보여야 합니다. 정당이 정치 영역에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할수록, 행정부 소속의 수사기관이 정치 영역의 부담을 대신 짊어져야 하는 상황은 심화됩니다. 행정 기관 또한 본연의 적정 온도를 '여론'과 '정치'의 뜨거움 보다는, '수사'나 '감사'의 서늘함에서 찾고자 하려는 '모습'을 좀 더 보여줘야 합니다. 교체되는 정치 세력과 달리 지속되어야 할 기관의 신뢰는, 정치의 뜨거움 속에서 변질되기보다는 본연의 서늘함 아래 보존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이뤄지고 있는 여러 '판단성 공표'들과 '발맞춤의 가시화'에 대해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적절한 시점에 이뤄지는 '공표'는 부정한 강자를 제압하는 '다윗의 돌멩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금융감독원장이나 법무장관이 관여했던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수사나 지난 정부 시절 삼성 수사에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부정한 강자'들은 여론과 언론을 통해 이뤄지는 '공표' 앞에 휘청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설익은 '판단성 공표'는 불러일으키지 않아도 될 역풍을 부르는 전략적 실책이 되기도 합니다. 수면 아래 이뤄지는 발맞춤은 결과물을 낳지만, 요란하게 드러나는 발맞춤은 불필요한 공격을 불러일으키고 복잡계의 세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를 낳곤 합니다.
선거가 다가오고 양 진영의 동원령이 노골화될수록 '판단성 공표'와 가시적인 충성 경쟁은 뚜렷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부담이 정치 세력의 권력 배분장을 넘어, 우리 생활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을 근본부터 흔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권력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모두 노력해야 할 일이지만, 무엇보다 현재 권력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노력해야만 가능할 일입니다.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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