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신화’ 재현할 초고교급 유망주 탄생
“오타니와 대결해 보고 싶다” 포부 밝혀
(시사저널=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2012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2명은 후지나미 신타로와 오타니 쇼헤이였다. 특히 봄 고시엔(일본 고교야구대회)과 여름 고시엔을 모두 제패한 후지나미의 인기는 실로 엄청났다. 4팀이나 후지나미를 1순위로 지명했고, 추첨을 통해 한신 타이거즈가 데려갔다.
완성도는 후지나미에 비해 부족했지만 시속 160km의 고교 신기록을 세운 오타니의 인기도 못지않았다. 하지만 선배 노모 히데오처럼 8팀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는 것이 고교 시절의 목표였던 오타니는 입장을 바꿔 자기를 지명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대신 그의 입단이 유력한 팀은 미국의 LA 다저스였다. 그럼에도 오타니를 포기하지 않은 일본의 유일한 팀이 있었다. 에이스 다르빗슈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닛폰햄 파이터스였다.
닛폰햄은 한국 선수들의 사례를 들며 오타니를 설득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미국 프로야구에 도전한 한국 선수들의 경우 2006년까지는 4명이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한 반면, 이후 도전한 21명 중에서는 아무도 데뷔하지 못했다는 30페이지짜리 자료를 만들어 건넸다. 그러면서 자국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고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을 모범 사례로 들었다. 닛폰햄은 오타니에게 류현진의 길을 제시했고, 결국 오타니는 미국 대신 닛폰햄을 선택했다.
장현석 영입 위해 기존 유망주 2명 내준 다저스
당시 닛폰햄의 자료는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투수의 경우 아마추어 신분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10승 이상 거둔 6명의 한국 투수는 2002년에 데뷔한 서재응이 마지막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메이저리그는 오랫동안 중남미 시장에 공을 들였고, 2000년대가 되자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등의 유망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마이너리그에서 주류를 이루자 아마추어 신분으로 도전한 아시아 선수들은 경쟁을 뚫기가 더 어려워졌다. 덕수정보고 류제국, 광주일고 정영일 등 큰 기대를 모았던 고교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하면서 고교 최대어들은 메이저리그 도전을 포기했고, 좋은 선수들이 진출하지 않으면서 성공률은 더 낮아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KBO 드래프트 1순위 선수로 여겨졌던 덕수고 심준석이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입단한 데 이어, 올해 드래프트 최대어였던 마산용마고 장현석이 LA 다저스에 입단한 것이다. 최고의 명문 구단인 다저스가 한국에서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를 직접 데려간 건 한양대 박찬호와 계약한 1994년 이후 29년 만이다.
8월14일 서울에서 있었던 입단식은 다저스가 장현석에게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확인시켜주는 행사였다. 이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무제한이었던 예전과 달리 국제 유망주에게 쓸 수 있는 계약금 총액이 정해져 있다. 성적이 좋거나 연봉총액 상한선을 넘기면 그 규모가 줄어드는데, 트레이드를 통해 다른 팀에서 가져오는 것도 가능하다. 이 계약금이 바닥나 있었던 다저스는 장현석이 결심을 굳히자, 계약금이 남아있는 구단에 유망주 2명을 내주고 장현석에게 줄 돈을 마련할 정도였다. 이미 좋은 유망주가 충분히 많은 다저스로서는 이례적인 행보였다.
다저스의 이례적인 모습은 입단식에서도 이어졌다. 다저스를 최고의 강팀으로 만든 앤드루 프리드먼 사장이 직접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장현석의 감사 인사 또한 다저스타디움 전광판을 통해 팬들에게 전달됐다. 이 계약을 주도한 다저스의 존 디블 아시안-퍼시픽 디렉터는 입단식에서 장현석에게 등번호 18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혀줬다. 보스턴 스카우트 시절 당시 일본 최고의 투수였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보스턴에 입단시킨 디블은 마쓰자카가 보스턴에서 달고, 구로다와 마에다가 다저스에서 달았던 18번으로 장현석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그리고 플로리다 스카우트 시절에 함께했던 투수인 조시 베켓이 돼달라고 주문했다. 베켓은 2003년 23세의 나이로 뉴욕 양키스를 무너뜨리는 월드시리즈 완봉승을 달성하고, 2007년에도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최고의 빅게임 투수였다.
최고의 투수 육성 시스템 가진 다저스에 매료돼
장현석은 왜 미국 무대를 선택했을까. 이 계약을 이끈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이예랑 에이전트에 따르면 마이너리그의 환경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메이저리그는 최대한 많은 선수를 마이너리그에 모아놓고 스스로 뚫고 나오는 선수를 골라 기용했다. 성공하면 돈벼락을 맞을 수 있으니 참고 견디라는 이유를 대며 마이너 선수들의 처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야구가 열리는 달에만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을 받았고, 야구가 없는 시즌에는 다른 돈벌이를 찾아야 했다. 봄 캠프에 초청받으면 그 비용도 자신이 충당해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인권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고,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전략을 수정했다. 과거 50라운드까지 진행됐던 드래프트를 20라운드로 축소한 메이저리그는 메이저리거들과 마찬가지로 마이너리거들과도 노사협약을 맺고 월급을 두 배로 올렸으며, 마이너리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소수 정예로 가는 만큼 구단이 더 철저하게 선수를 관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새로운 문화에서 시작해야 하는 우리 선수들에게는 전보다 훨씬 유리한 환경이 됐다.
장현석이 많은 팀 중 다저스를 선택한 궁금증도 풀렸다. 2015년부터 다저스를 이끌고 있는 앤드루 프리드먼 사장은 유망주를 보물처럼 다루는 걸로 유명하다. 샌디에이고 AJ 프렐러 단장은 단지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유망주를 키우고, 뉴욕 양키스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베테랑 선수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프리드먼은 유망주를 정성껏 키우고 유망주 손실을 극도로 꺼린다. 덕분에 다저스는 10년 가까이 매년 좋은 신인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준비된 유망주를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올려 적극적으로 기회를 주고 있다. 또한 투수 왕국의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다저스는 최고의 투수 육성 시스템을 가진 팀으로 유명하다. 다저스가 자신들이 분석한 장현석의 투구폼을 장현석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한 것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장현석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마산구장을 찾았다가 후진하던 NC 다이노스 이호준 선수(현 LG 타격코치)의 차에 발이 살짝 밟힌 적이 있었다. 이때 장현석은 "넌 체격이 좋으니 꼭 야구를 하라"는 이호준의 말을 듣고 부모님을 졸라 곧바로 리틀 야구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최고의 고교 에이스가 됐다.
다르빗슈를 가장 좋아하며 오타니와 대결해 보고 싶다는 장현석은 다저스의 박찬호 신화, 류현진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고교 선수로는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유일하게 출전하는 장현석은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할 수 있는 에이스로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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