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당면 만나 흔한 음식 된 잡채, 원래는 왕의 요리였다 [ESC]
고기·채소를 겨자로 버무린 원형
상큼한 레몬소주와 ‘찰떡궁합’
중국당면 ‘펀’, 녹두로 만들어
당신은 뷔페 가서 가장 먼저 집는 음식이 무엇인가. 나는 잡채다. 열량 많고 배부르고, 그리하여 뷔페에서 가장 실속 없는 음식이 잡채가 아닌가. 본전 생각이 나도, 나는 잡채를 수북하게 그것도 여러 번 먹는다. 듬뿍 입에 넣어 목이 메는 그 맛에 잡채를 먹는다. 기름지고, 당 팍팍 오르는 기분이 드는 음식 잡채.
중국에서 왔다지만 한식이 된 묘한 운명의 음식이다. 원래 한국 잡채는 역사가 길다. 중세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기와 여러 채소를 겨자 등의 양념으로 버무린 것이다. 이처럼 전통 한식의 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다. 왕이 먹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고급 요리였다. 중국 당면으로 만들면서 서민들의 음식이 됐다.
당면 없는 고추잡채?
잡채밥 맛있는 집에서는 한 그릇 시켜놓고 안주로 먹을 때도 많다. 잡채에 춘장을 쓱쓱 비벼서 짭짤하게 만들면 안주로도 그만이다. 소주나 값싼 이과두주 한 병을 마신다. 잡채밥은 한때 중국집에서 부의 상징이었다. 잡채밥을 시키다니! 다들 쳐다봤다. 오랫동안 중국집 요리부(보통 중국집 메뉴는 식사부, 요리부로 나눈다. 한국형 중국집의 특징이다)에서 잡채가 수난을 많이 당했다. 고추잡채 때문이다. 이 음식은 유서가 깊다. 이미 일제강점기에 중국인 농민들이 재배했던 피망을 주재료로 하는 요리가 바로 고추잡채다. 우리는 잡채하면 당면 아닌가. 하지만 고추잡채는 피망과 돼지고기를 가늘게 썰어서 볶은 요리다. ‘잡채≠당면’이다. 하지만 우리는 ‘잡채=당면’으로 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한국인 손님들은 고추잡채라면 매운 고추가 들어간 당면 잡채를 연상한다.
하지만 화교인 요리사들은 잡채에 당면을 넣지 않는다. 손님들이 항의한다. 그래서 절충형도 탄생한다. 피망과 고기로 볶되, 당면을 슬쩍 넣는다. 한국식 당면을 넣자니,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져 보이니까 넓적하거나 굵은 ‘중국 당면’을 넣는다.
자, 여기서 ‘면’이라고 했다. 맞다. 당면은 면이다. 당면은 우리가 부르는 이름이고, 그들은 ‘펀(粉)’이라고 한다. 넓게 보면 국수의 일종이다. 가느다란 펀을 ‘펀쓰’라고 한다. 보통 펀쓰는 녹두로 만든다. 고구마 전분으로 만드는 당면보다 덜 쫄깃하다. 당면과 밀가루 국수의 중간 정도의 식감이다. 당면보다 펀쓰가 비싸다. 녹두가 고구마보다 비싸니까.
우리는 당면을 국수처럼 먹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잡채라는 요리의 일종으로 본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당면이든 펀쓰든 국수다. 그래서 볶아먹든 국물에 말아먹든 국수로 대우한다. 식당 메뉴판에도 국수코너에 들어가 있다. 한국에서는? 앞서 썼듯이 당연히 ‘요리부’에 들어간다.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에스레터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한겨레신문을 정기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정기구독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이탈리아 잡채 ’콩 스파게티’
유럽은 중국집이 많다. 이민자들이 타지에 와서 뭘 하고 먹고살겠나. 결국 식당이다. 우리는 여행 중에 현지식이 물리면 한식집이나 중국집에 가게 된다. 중국집에서 내가 즐기는 메뉴가 바로 잡채, 아니 펀쓰다. 중국인들은 현지화를 아주 잘한다. 우리가 미국 이민 가서 소갈비를 ‘테이블 바비큐’라고 해서 팔았듯이, 이탈리아에 온 중국인들은 ‘콩 스파게티’라고 펀쓰를 팔았다. 녹두라고 해봐야 어차피 유럽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콩 스파게티(soy spaghetti)라고 명명해버린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새우를 넣고 간장과 참기름을 뿌려 만든 콩 스파게티, 아니 새우 잡채다. 헌데 이걸 시켜서 먹노라면 한 가지 아쉽다. 한국식 잡채밥이 그리워진다. 주인을 불러 밥과 함께 펀쓰를 볶아서 달라고 했다. 말이 잘 안 통한다. 나는 열심히 조리법(“fried rice with spaghetti”)을 설명했다. 잠시 후 기대하던 잡채밥이 나왔을까. 천만에. 새우 펀쓰 위에 누룽지처럼 생긴 튀긴 쌀밥을 얹어왔다. 하여간 외국의 현지 중국집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잡채밥을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요령을 부린다. 자, 펀쓰를 시킬 때 꼭 쌀밥(steamed rice)을 같이 주문한다. 펀쓰와 함께 싹싹 비빈다. 탁자에 놓인 간장과 매운 소스를 치면 아주 그럴 듯하다. 매운 잡채밥 완성이다. 그럴 때면 주인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도대체 왜 저런 괴식을 먹는담?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밥에 ‘요리’를 얹어 먹는 것이지만, 그들의 눈에는 ‘밥+밥’으로 보이기 때문일 테다.
우리 당면처럼 일본도 화교로부터 잡채, 아니 당면 또는 펀쓰를 받아들였다. 일본어로 ‘하루사메’(春雨)라고 한다. 봄비라니. 이름에서 이미 일본의 당면은 가늘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말로 가늘다. 일본식 샐러드를 만들거나 국수로 만들어 먹는다. 일본도 화교 숫자가 많다. 어쩌면 한국보다 일본에 중국음식은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일본인들이 점심으로 먹는 상당수의 메뉴는 중국식이다. 라멘은 물론이고 돼지고기볶음백반, 탄탄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펀쓰를 한 봉지 샀다. 인터넷에서 주문할 수 있다. 오늘은 밥 없이 안주다. 재료를 준비해서 가볍게 볶았다. 술은 레몬소주다. 토닉을 넣어서 상쾌하게 만들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잡채(뭐라하든 우리에겐 펀쓰든 뭐든 다 잡채다)에 잘 어울린다. 기름진 입을 레몬의 상쾌함과 탄산의 거품이 싹 씻어준다. 그러다가 몇 잔을 다 말아버린다. 소주 한 병이 금세 바닥을…. 가볍게 먹자고 시작한 칵테일인데 결국은 끝까지 달린다.
중국식 새우잡채(2인분) 조리법
재료
펀쓰(200그램)
새우 적당히
깐마늘 3톨
양파와 당근 채썬 것 약간
부추(있으면) 조금
진간장 6큰술, 설탕 3큰술, 참기름 1큰술
식용유 적당히, 후추와 조미료 약간
조리순서
1. 솥에 물을 넣고 펀쓰를 삶는다(보통 3분인데, 2분만 삶는다)
2. 삶은 후 헹궈서 찬물에 담가둔다.
3. 팬에 식용유를 적당히 두르고 마늘을 으깨어 볶는다. 당근과 양파, 새우도 넣어 볶는다.
4. 펀쓰를 건져서 물기를 빼고 3번 단계의 팬에 넣는다. 진간장, 설탕을 넣어 함께 볶는다. 필요하면 식용유를 더 넣는다.
5. 후추를 치고, 원하면 조미료도 넣는다. 마무리로 부추 썬 것과 참기름을 뿌리고 잘 섞는다. 간을 보고 소금으로 보충한다.
레몬소주(2잔분) 제조법
재료
레몬 농축액 1큰술(생 레몬이면 반 개)
토닉워터
소주(소주잔으로 4잔분. 독한 게 좋다)
얼음 많이(집 냉장고에서 만든 얼음보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산 것이 좋다)
소금 녹두알 2개만큼
제조순서
1. 유리잔에 소주-레몬즙-소금 순으로 넣고 잘 섞는다.
2. 얼음을 가득 넣고 토닉워터를 가득 붓는다.
3. 토닉워터를 붓자마자 탄산이 얼굴에 톡톡 튈 때 바로 마신다. 캬.
박찬일 요리사
익명과 혼술의 조합을 실천하며 음주 생활을 한다. 전국 왕대폿집 할매들 얘기를 듣는 중. 사라지는 것들에 매달린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남로당 출신 박정희는? 홍범도 ‘빨갱이 덧칠’에 여야 비판 봇물
- 이종찬 광복회장 “민족 양심 저버린 이종섭, 어느 나라 국방장관이냐”
- 200조 부채 한전 사장에 정치인? ‘윤석열 캠프’ 김동철 유력
- 오염수 방류 사흘 만에 “광어·바닷물 안전”…수십년 방사능 농축은?
- [속보] 러, ‘유전자 검사’ 프리고진 사망 공식 확인
- 대통령실 구내식당에 우럭·장어·전복·…오염수 불안에 소비 촉진
- 윤석열 정부의 독립운동사 지우기, 누가 지시하는 것인가
- [단독] 국방부 ‘홍범도 동상’ 있는데도 “육사에서 철거” 운운
- “오염수 안전하다”는 정부…‘수산물 규제’ 한-일 분쟁, 자가당착 빠져
- “일식 또 먹나 봐라”…중국 ‘오염수 방류’ 일본 보이콧 움직임